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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금지법 5년, 당신 일터는 안녕하신가요?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래 한국 사회 직장갑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법이 생긴 덕에 상사의 명백한 갑질은 줄었지만 괴롭힘 정도는 더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기에 법을 악용하는 후배들의 을질과 허위 신고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상에서 주의해야 할, 옛날과 달라진, 지금 필요한 직장 문화를 소개합니다.

📝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 갑질에서 살아남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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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 등장 후 달라진 점

    오는 7월 16일은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3)이 시행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2014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을 필두로 봇물 터지듯 연달아 터져 나온 한국 사회의 갑질(Gapjil)은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될 만큼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세계적 수치’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만들었고, 2019년 7월 16일 시행됐다.
    그렇다면 5년 동안 한국 사회 직장갑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이 2019년 6월 44.5%에서 2024년 3월 30.5%로 14% 줄어들었다. 올 3월 조사에서 직장인 68.4%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61.1%는 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 통계에서도 법이 시행된 2019년에는 폭언이 50%를 넘었는데, 2023년은 33%로 줄어들었다. 평소 쌍욕을 일삼던 상사가 ‘법’ 때문에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직장인 설문조사를 응답자 특성별로 살펴보면 대기업,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소·민간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어들었다는 응답이 10% 이상 높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좋은 일터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법이 도움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직장인 10명 중 3명이 법을 모르고 있고, 4명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들에게 괴롭힘의 정도를 물어본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이 2019년 6월 조사에서는 38.2%였는데 2024년 3월 조사에서는 46.6%로 도리어 높게 나타났다.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은 자살로 이어진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노동자가 2022년 404명으로 하루에 한 명 이상이 직장갑질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직장갑질로 인한 자살 사건이 뉴스를 장식하는 이유다.

‘을질’과 허위 신고

이번엔 ‘을질’ 이야기이다. 직장갑질119에는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통해 매일 50건 이상의 상담이 들어온다. 상담 중에는 부하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을질’ 제보도 있다. 일부 사용자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악용하는 ‘허위 신고’ 사례로 인해 경영이 어렵다며,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으로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최근 언론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괴롭히는 이른바 ‘직장 내 을질’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3대 요건인 ①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 ②업무상 적정 범위 초과 ③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 악화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요건인 ‘지위’의 우위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경우고, ‘관계’의 우위는 인원수, 연령·학벌, 근속연수, 직장 내 영향력 등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다수의 후배가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선배를 괴롭힌 행위이다. 부하직원 한 명이 직급이 높은 상사를 괴롭히는 행위는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허위 신고도 있다. 중대한 잘못을 한 직원이 징계를 피하려고 거짓 신고를 하기도 하고,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신고당하기 직전에 먼저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올 3월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었더니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57.7%였고, ‘신고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 제보자는 상사를 신고했다가 ‘고발녀’로 낙인찍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닐까? 용기를 내 어렵게 신고했을 때 “어디 감히 상사를 신고해?”라며 보복하는 회사가 아니라, 설령 괴롭힘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직원의 건강한 문제 제기를 조직문화 개선의 밑거름으로 삼는 회사라면, 힘이 약한 직장인이 용기를 내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되어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신고자가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은 사업주의 중요한 의무다.
진짜 ‘을질’하는 후배가 있다면? 관리자가 각자에게 정확한 업무를 배분하고, 업무지시 이행 여부에 대해 녹음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평가나 징계에 반영하면 된다. 진짜 허위 신고라면 증거나 목격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진실은 금세 드러난다.

‘사생활 간섭’이 갑질인 이유

마지막으로 명백한 괴롭힘 말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얘기로 마무리해보자.
“상사가 매주 금요일마다 주말에 뭐 하는지, 어디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세세하게 물어봅니다. 정말 불편합니다.”
“공공기관에 입사했는데 입사 첫날부터 남자친구에 대해 물어봤고, 계속 사적인 얘기를 캐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다른 동료들에게 남자친구 때문에 일을 못 한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사생활을 간섭하는 상사에 대한 제보다. 징검다리 연휴에 휴가를 냈더니 “어디 좋은 데 가나 봐? 혹시 외국 가?”라며 꼬치꼬치 캐묻는 상사.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더니, 소개하겠다는 선배…. 어떤가?
직장 상사가 ‘솔로’인 후배에게 이성을 소개해주는 일은 ‘미덕’이었다. 옛날에는. 지금은 ‘사생활 간섭 갑질’이 될 수 있다. ‘솔로’ 후배가 당연히 이성애자이고, 당연히 결혼하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후배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고, 비혼주의자일 수도 있고, 반려견과 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느그 아부지 모하시노?” 입사하면 직장 상사가 당연히 묻던 질문이었다. 옛날에는. 말하기 싫은 가족 사연을 강요하는 것 역시 사생활 침해이다. 얼평(얼굴 평가), 외모 지적 역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여자가”, “사내놈이” 이런 성차별적 언행 역시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아끼는 직장 후배가 연차를 내서 여행을 간다면? 친한 사이면 후배가 먼저 어디로 가는지 말할 것이다. 부하직원이 솔로인 것 같아 걱정된다고? 당신이 좋은 상사라면 후배가 먼저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할 것이다. 각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해줄 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마지막 꿀팁! 사무실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허드렛일을 앞장서서 하는 상사라면 좋아하지 않을 후배가 있을까? 당신은 후배들에게 어떤 상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