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질’과 허위 신고
이번엔 ‘을질’ 이야기이다. 직장갑질119에는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통해 매일 50건 이상의 상담이 들어온다. 상담 중에는 부하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을질’ 제보도 있다. 일부 사용자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악용하는 ‘허위 신고’ 사례로 인해 경영이 어렵다며,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으로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최근 언론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괴롭히는 이른바 ‘직장 내 을질’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3대 요건인 ①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 ②업무상 적정 범위 초과 ③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 악화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여기서 첫 번째 요건인 ‘지위’의 우위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경우고, ‘관계’의 우위는 인원수, 연령·학벌, 근속연수, 직장 내 영향력 등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다수의 후배가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선배를 괴롭힌 행위이다. 부하직원 한 명이 직급이 높은 상사를 괴롭히는 행위는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허위 신고도 있다. 중대한 잘못을 한 직원이 징계를 피하려고 거짓 신고를 하기도 하고,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신고당하기 직전에 먼저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올 3월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었더니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57.7%였고, ‘신고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 제보자는 상사를 신고했다가 ‘고발녀’로 낙인찍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닐까? 용기를 내 어렵게 신고했을 때 “어디 감히 상사를 신고해?”라며 보복하는 회사가 아니라, 설령 괴롭힘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직원의 건강한 문제 제기를 조직문화 개선의 밑거름으로 삼는 회사라면, 힘이 약한 직장인이 용기를 내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되어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신고자가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은 사업주의 중요한 의무다.
진짜 ‘을질’하는 후배가 있다면? 관리자가 각자에게 정확한 업무를 배분하고, 업무지시 이행 여부에 대해 녹음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평가나 징계에 반영하면 된다. 진짜 허위 신고라면 증거나 목격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진실은 금세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