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평택

사통팔달의 도시, 평택

평택은 교통의 요충지이다. 모래시계로 치자면 목 부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충청이나 호남, 경상 등지로 가려면 대개는 평택을 지나야 하고,
그 반대 역시 평택을 거쳐야 한다. 그런 평택에는 이야깃거리도 몰려 있다.
바다를 포함한 자연의 풍광이면 풍광, 문화·예술이면 문화·예술, 역사면 역사, 평택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다양하고 다채롭다.
호국보훈의 달 6월,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기에 딱 어울리는 곳, 평택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자.

📝&📷 정진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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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풍경의 한 점이 되어

평택은 사통오달을 넘어 사통팔달의 도시이다. 교통망만 놓고 보면 평택 같은 곳이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평택제천고속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 평택화성고속도로 등이 거미줄처럼 평택을 지난다. 또한, 경부선, 호남·전라선, 장항선, 충북선, 수도권 지하철1호선, 경부고속철도, SRT 수서고속철도가 깔려 철도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여기에 평택항까지.
평택은 바다와 바람, 푸르름이 넘치는 곳이다. 평택의 관광 1번지는 평택호 주변이다. 24㎢에 달하는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뻥 뚫린다. 그 주변에서는 평택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까지 누릴 수 있다. 평택시에서는 호숫가를 걷기 좋도록 나무 데크 길을 마련해 놓았다. 호수 위에서 수상 스키나 오리 보트 등을 즐길 수도 있다. 평택호관광안내소에서는 대형 공룡 모형과 삼엽충 화석 등을 전시하는 해양자연사 표본전시실도 있어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이 전시실에서는 평택호 전망을 망원경으로 가까이 당겨서 볼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풍광만을 바라본다면 그건 너무 싱겁다. 그 싱거움에 적당한 간을 맞춰 줄 게 평택에는 마련돼 있다. 평택호의 한국근현대음악관, 한국소리터, 평택호예술관이다. 한국근현대음악관은 박물관이면서 도서관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을 주제로 한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지영희(1909~1980) 선생은 평택 포승 출신으로 국악관현악단 창시자이면서 해금산조와 시나위 명인이었다. 일제강점기 무용가 최승희와 세계순회공연, 국악계 최초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국악의 세계화에도 앞장섰다. 지영희 선생은 평택이 낳은 근현대 국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지영희 선생으로 하여 국악을 중심으로 한 음악에 대하여 생각했다면, 바로 그 옆 평택호예술관에서는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거의 매주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평택호예술관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평택호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평택호예술관 앞 잔디밭 정원은 호수와 무척 잘 어울리게 꾸며 놓았는데, 가족 단위, 연인끼리 잔디밭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 그림 같은 풍경의 한 점을 이루기도 한다.

호국의 달,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여행과 안보(安保)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휴전선 인근 지역이나 인천 옹진군 연평도처럼 포격의 상흔이 여전한 곳은 안보 여행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도 한다.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 같은, ‘평화롭다’는 말을 앞에 붙인 평택에도 우리나라가 아직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곳이 있다. 평택항 외곽에 있는 해군 2함대 안보공원(서해수호관). 이곳에 가면 6·25 전쟁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 서해에서의 남북 교전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전투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특히 천안함 피격 상황은 시뮬레이션으로도, 두 동강이 난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까지도 살필 수 있다. 전쟁은 모든 걸 앗아간다는 점을 그동안의 서해 교전들은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서만 전쟁과 평화에 대해 되새기게 하는 건 아니다. 평택에는 곳곳에 ‘안보 전시장’이 있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대동법시행기념비 앞에서도, 원균 유적지에서도 임진왜란의 참상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해군 2함대와 대동법시행기념비, 원균 유적지는 평택의 서, 남, 동쪽 바깥 테두리에 걸쳐 있다. 마치 평택을 U자형 벨트로 감싸고 있는 방어선 같다.

평택 소사동. 아파트 숲 아래 농촌 마을로 접어들면 오래된 비각(碑閣)이 하나 있다. 일명 ‘대동법시행기념비’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육(金堉, 1580~1658)이 대동법 시행을 줄기차게 건의해 결국 충청도 지역에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충청도 백성들이 세운 기념물이다. 비의 앞면 맨 위쪽에는 ‘朝鮮國領議政金公堉大同均役萬世不忘碑(조선국영의정김공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라 새겼다. 대동법은 조선의 조세 체계를 백성 본위로 개편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토지를 많이 소유한 양반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민생에 초점을 맞추었던 김육의 끈질긴 제안으로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 비가 평택에 세워지게 된 이유는 이곳이 그 옛날에도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남을 오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있는 곳을 소사(素沙) 마을이라 부른다. 흰 모래밭이라는 의미다. 평야가 넓어 소사벌이라고도 한다. 이 땅 역시 전쟁의 내력이 깊게 배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1597년 정유재란의 참상이 거세던 시기, 일본군이 남쪽 지역을 휩쓸고 삼남대로를 따라 평택까지 진출했을 때 명나라 군대가 이곳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 이름하여 소사벌대첩이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협에서 대승을 거두기 10여 일 전이었다.
소사벌은 1894년 청일전쟁 때 중요 장소로 등장한다. 이때 역시 중국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이곳에서 맞부딪혔다. 성환전투라고도 불리는 청일전쟁 최초의 육전(陸戰)이다. 당시 일본군이 크게 이기면서 초반부터 청일전쟁의 향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정유재란 때의 소사벌대첩이나 청일전쟁의 서막이 된 소사벌전투는 중국군과 일본군의 싸움이었다. 우리 땅에서 외국군들이 전쟁을 벌인 거였다. 둘 다 우리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평택 소사벌에서는 나라가 약하고 분열하면 외세가 밀고 들어온다는 점을, 아픈 역사는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을 때 반복된다는 걸 소사벌은 깨우쳐 준다.

임진왜란과 관련해 늘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과 대비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원균(元均, 1540~1597) 장군의 묘와 사당 등도 평택에 있다. 원균 장군 묘에 어린 전설이 하나 전한다.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며 원균 장군이 전사하자 장군의 애마가 신발과 담뱃대를 물고 고향 집까지 천릿길을 달려 장군의 전사 소식을 전한 뒤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 신발과 담뱃대 등 유품을 넣어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묘역 아래에는 애마총(愛馬塚)이라는 그 말을 위한 작은 무덤도 만들었다. 원균 장군 유적지는 평택에서 멀지 않은 충남 아산시 음봉면의 이순신 장군 묘역과 연결해 찾아봄도 역사의 토론장으로써 좋은 코스다.
평택에서는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기틀을 다진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유적지도 둘러볼 수 있다. 정도전의 시문을 모은 삼봉집(三峰集)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삼봉기념관을 비롯해 삼봉의 위패를 모신 사당, 삼봉 문학관 등이 있다. 삼봉집 목판은 정조 임금 때(1791년)에 왕명에 의해 대구 지방에서 간행되어 대구 용연사에서 보관해 오다가 1912년 삼봉의 후손이 세거지(世居地)인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삼봉집 목판은 글자 새김이 정교해 조선시대 인쇄문화 연구에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기와 충남을 아우르는 품 넓은 곳

평택은 아산 등 충남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어왔다. 행정구역이 충남에도 들었다가 경기도에도 들었다가 했기 때문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평택을 천안, 직산, 아산, 신창, 온양, 예산 등지와 한데 묶어 설명한다. 이들 일곱 지역의 풍속은 대체로 같다면서도 이들 지역의 남쪽은 산골짜기이지만 땅이 비옥해 오곡과 목면의 재배에 알맞고, 북쪽은 포구와 갯벌이 있으며 토질은 소금기 있는 땅과 비옥한 땅이 반반이라고 소개했다.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를 보면, 평택을 아산만(평택호) 남쪽에 그려 넣고 있다. 현재로 치면 평택시 팽성읍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산만을 둘러싸고 수원 아래, 아산 위쪽으로 진위(振威), 양성(陽城), 평택(平澤)을 적어 놓았는데, 진위와 양성은 지금의 평택으로 편입되었다.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아산시는 특이하게도 ‘빛과 소리에 취하는 평택 아산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두 지역의 관광코스를 공동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광역 단위 행정구역이 같지 않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평택의 품은 그만큼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