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투데이

노래든, 영상이든 빠른 것이 좋은 가속의 시대

스피드(speed)는 인간이 지닌 주요 본능 중 하나다.
인간은 속도를 무제한으로 갈망한다. 원시시대, 사냥감을 쫓아 전력 질주하던 습성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스피드 추구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음악 쪽에서 스래시 메탈·하우스·EDM 등 여러 장르는 속도를 강력하게 추구하는 특징을 전면에 내세웠고, 여기에 대중은 열광으로 화답했다.

📝 오공훈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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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추구 목적이 강한 스페드 업

최근 스피드를 기반으로 하는 독특한 트렌드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떠올랐다. 바로 스페드 업(sped up)이다. 스페드 업이란 특정한 노래의 속도를 원곡에 비해 130~150%가량 배속해서 만든 2차 창작물을 의미한다. 스페드 업은 SNS와 긴밀히 연결된다. 스페드 업의 주요 무대는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다. 이들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의 특성상 짧게, 대개 1분 내외 분량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으로 업데이트 된다.

속도와 간결성을 양대 무기로 삼은 스페드 업은 필연적으로 이른바 MZ세대의 폭발적인 열광을 일으켰다. MZ세대의 주된 취향 중 하나인 ‘순간순간 짧게 짧게’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스페드 업은 MZ세대가 유난히 열광하는 덕목인 ‘가성비’도 더할 나위 없이 충족한다. 어떠한 노래도, 심지어 느리고 구슬픈 발라드도 스페드 업의 세례를 받으면 신나는 댄스곡으로 탈바꿈한다.
스페드 업의 역사는 길다. 1958년 대중에 첫선을 보인 애니메이션 밴드, 앨빈 앤 더 칩 멍크스(Alvin and the Chipmunks)를 원조로 친다. 이 밴드(?)는 속도 조절로 다람쥐 소리처럼 변조한 보컬을 부각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앨빈 앤 더 칩 멍크스는 엄밀히 말해 진정한 스페드 업이라고 일컫기 어려운 감이 있다. 노래 전체 속도 자체는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컬도 목소리만 다람쥐 목소리지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곡 전반적으로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오늘날의 스페드 업과는 차이가 난다.
스페드 업은 흔히 대중에게 동일한 트렌드로 인식되는 ‘1.5~2배속 영상 보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영상 빨리 보기는 비교적 긴 시간의 영상을 빨리빨리 감상하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본편을 다 본 듯한 느낌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반면 음악 빠르게 듣기인 스페드 업은 같은 노래라도 다르게 받아들이려는 대중의 심리 태도가 좀 더 크게 작용한다. 즉 ‘충족’보다는 ‘재미’의 동기가 훨씬 부각된다. 이는 영상과 음악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의 메커니즘 차이다.

원작 훼손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최근 스페드 업을 표방하며 인기를 모은 노래는 상당히 많다. SNS에서는 기존 노래를 빠르게 돌리는 일종의 코믹 패러디 형식의 쇼츠가 많기는 하다. 케이팝(K-Pop) 아이돌의 노래가 SNS +스페드 업 콜라보의 간판 포맷이다. 그러나 스페드 업이 1분 수준을 넘어 제대로 된 노래 포맷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에이콘(Akon)의 ‘Lonely’, 시저(SZA)의 ‘Kill Bill’, 엘에프 시스템(LF System)의 ‘Afraid to Feel’이다.

이렇듯 현재 스페드 업은 세계적으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페드 업의 일반적인 문제점으로 무엇보다 원작 훼손을 거론할 수 있다. 이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힌다. 원작의 훼손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아무래도 노래의 스피드를 높이면 보컬 및 연주가 우스꽝스럽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진지한 예술 작품을 의도한 원작자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이콘의 2005년도 히트곡 ‘Lonely’는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1964년도 고전 ‘Mr. Lonely’의 샘플링이 노래 전체를 수놓는데, 예의 130~150% 스페드 업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스페드 업 샘플링은 원곡과 도저히 같다고 볼 수 없다. 아니, 단순히 ‘다르다’ 수준이 아니다. 힙합 등의 장르에서 다른 노래의 인상적인 소절이나 리프를 따는 것은 샘플링이나 레퍼런스라는 이름 아래 관례화되어 있다. 이때 원작자에 대한 존중으로 되도록 변형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하지만 ‘Lonely’의 샘플링은 이렇게 전통적으로 유지된 관례를 정면으로 무시한다.
그 결과 원곡 ‘Mr. Lonely’가 노래 제목 그대로 외로움을 간절하게 표현했다면, ‘Lonely’ 샘플링은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희화화시키는 뉘앙스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바비 빈튼의 트레이드 마크인 음폭 차 큰 팔세토 창법은, 마치 다람쥐가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면서 내는 비명 소리로 둔갑했다. 이는 원작 모독에 가깝다.

작품성을 갖춘 새로운 장르화

반면 스페드 업 전략이 제대로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바로 엘에프 시스템의 2022년 히트곡 ‘Afraid to Feel’이다. 이 노래의 원곡은 ‘I Can’t Stop (Turning You On)’인데, 끈적한 분위기로 가득한 소울 넘버다. 그런데 이 노래는 ‘Afraid to Feel’로 제목 갈이를 한 다음 스피드라는 형식을 통해 힙하고 세련된 하우스 뮤직으로 탈바꿈했다.
‘Afraid to Feel’이 성공을 거둔 요인은 원곡 속도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Afraid to Feel’은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패러디 송이 아닌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노래로 승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드 업이 트렌드 민감성에 바탕을 두더라도, 무작정 재미와 코믹함만 추구해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무리 셀프 패러디 성격이 짙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갖춰야 대중문화의 당당한 주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