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토크

꽃다발이 만들어낸 일상의 변화, 플립플라워

누군가의 작은 소망이 한데 모여 변화를 만들고 있는 곳, 플립플라워.
꽃향 가득한 작업장을 찾아 청년 창업가 박경돈 대표를 만났다.
플립플라워는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를 양성해 꽃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함께여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이곳에 있다.

📝 이수정  📷 김도형  🎬 이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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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

코로나 이후 꽃구독 서비스가 다채로워진 가운데 눈길을 끄는 화예 사업장이 있다. 청년 창업가 박경돈 대표가 운영하는 플립플라워이다. 이곳에선 청각장애인의 꿈과 희망을 꾹꾹 눌러 담은 꽃다발이 매달 가정집으로 배달된다. 꽃다발이 타인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일상의 선물이 된 요즘, 박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꽃다발을 통해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청각 장애인에게 못 듣는 사람이 아닌 잘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와 함께 꽃다발을 만들며 더 큰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고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못 들어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죠. 현재 4년 차 된 기업이고요, 청각장애인을 포함해 현재 총 7명의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플립플라워는 단지 꽃을 파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청각장애인의 고용 창출에도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에 한 번씩 만 39세 이하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플로리스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300명당 1명의 청각장애인을 고용할 것을 목표로 현재 5명의 청각장애인을 추가 고용할 예정이다.

청각장애인들 중 플로리스트가 많지 않아 시작한 것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수어 통역사와 속기사를 통해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면서 8주간의 수업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요. 꽃값이 만만치 않게 들죠. 하지만 5~6명의 교육생들을 양성하며 전문 플로리스트가 되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던 청년 사업가

  • 2020년 개업해 첫해 74명의 구독자로 시작했던 플립플라워는 현재 매달 약 3,000개의 꽃다발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배송하고 있다. 대부분의 배송지는 일반 가정집이다. 박 대표는 일반 소비자들을 통해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것이라고 했다. 한 아파트 단지에 8명의 구독자가 연달아 있는 경우도 생겼을 만큼 인기이다. 재구독률은 80%에 달한다.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를 구인하기도 어렵고, 실제 작업장에서 소통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몸소 어려운 길을 택하며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겐 청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찾아주려는 마음이 깊게 깔려 있었다. 점차 일을 하면서 그 마음이 더 깊어져 이 일을 지속하게 되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청각장애인은 더 잘 보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가 더 깊이 내재화되었어요.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비장애인보다 1.5배 정도 시각 정보를 더 잘 캐치해요. 그만큼 시각적인 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이죠. 단지 마케팅 문구로 더 잘 보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그렇다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끼다 보니 이 직업 모델에 타당성도 커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교육사업을 하려는 꿈이 있었던 박 대표는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직업 교육 모델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소망을 품게 됐다. 그러다 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될 계기가 생겼다. 장교로 복무하며 군내 사격장에서 청력 손실을 경험한 것. 이때의 경험을 사업에 접목하게 되고, 이후 사회적 기업으로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이어갔다.

네일샵, 미용실, 정부에서 관리하는 장애인 직업교육 현장 등 청각장애인이 있는 사업장을 수차례 방문해 여러 청각장애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직업으로서 플로리스트가 청각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알게 되었어요. 사업 모델을 구체화한 후 장교로 40개월간 복무하며 모은 1,200만 원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부분을 시각화하고 업무 툴을 도입해 보완해 갔죠.

일상의 변화로 이어진 평등의 가치

이후 경기도 사회적경제 청년창업 프로젝트에서 지원받고 복지 분야의 벤처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사업에도 점차 숨통이 트여갔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사업장에서 서로 간의 벽이 완전히 사라지기란 쉽지 않은 일. 박경돈 대표는 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부대끼고 섞이며 조금씩 그 벽이 희미해져 갔다고 한다. 처음 그가 마음에 품었던 서로가 평등하다는 가치가 일터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하루는 제가 집중을 못 했던 건지 회의 시간에 말을 못 알아들었었어요. 그러니까 청각장애인 한 분이 대표님 귀 안 들리는 거 아니냐고 아주 친근한 분위기에서 농담을 하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이러려고 사업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 농담이 너무 고마워 두고두고 기억에 남네요. 변화는 종종 바깥이 아닌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진정한 소통이란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를 몸소 깨달았던 청각장애인 동료와의 소통의 경험이 하나씩 모여 플립플라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밀도 높은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든 꽃다발을 통해서 말이다. 박경돈 대표는 다른 기업에선 볼 수 없는 고객과의 소통이 플립플라워에선 이루어진다며 최근의 일화를 들었다.

최근 할아버지 한 분이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셨어요. 며느리가 임신을 해서 꽃을 선물하고 싶은데, 직접 꽃을 선물하기는 조금 쑥스러우셨다고요. 그러던 중 이런 구독 서비스를 알게 되고 또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좋아 구독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후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는 피드백까지 해주셨는데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고객과 기업이라는 벽이 사라진 듯했거든요.

청각장애인 딸을 둔 아버지가 찾아와 커피 한 잔을 주며 자신을 격려해주었던 일화부터, 친환경 소재로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고객의 권유에 업계 최초로 생분해 포장지를 사용하게 된 일까지. 고객과의 유대감을 통해 만들어진 서비스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뿐 아니라 착한 기업으로 거듭 성장하게 함을 플립플라워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청년 창업가 박경돈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우선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들이 모여 함께 꽃을 구매할 수 있는 소셜 프랜차이즈를 통해 플라워샵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사업장이 많아지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경쟁하고 성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경돈 대표의 첫 마음은 점차 밖을 향해 가시화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물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꽃을 피운 것이다. 청년 창업가의 활짝 핀 미소에서 풋풋한 꽃 향이 번져오는 듯하다. 플립플라워와 함께할 사계절이 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