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균형의 메커니즘
일반적으로 에너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보조금, 세금, 가격에 대한 통제로 이루어진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과 같은 재생 에너지 자원에 제공되는 보조금 등은 생산 비용을 인위적으로 낮춰 재생 에너지 자원이 시장에서 보다 경쟁력을 갖게 만든다. 동시에 화석연료에 부과되는 세금은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외부효과를 내부화 하기 위해 에너지원 가격에 더해지게 되면서 소비를 위축시킨다.
배출 기준이나 에너지 생산 할당량과 같은 규제도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을 변화시켜 가격에 영향을 준다. 더욱이, 전기나 휘발유 가격의 상한선과 같은 직접적인 가격 개입은 시장 메커니즘을 혼란에 빠뜨려 종종 자원의 부족이나 과잉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1973년 제1차 석유위기 당시 미국의 가솔린 가격 규제는 주유소 마다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을 낳고, 전국적인 공급 부족사태를 야기하였다. 석유 업계의 오랜 격언 중 “고유가의 치료제는 고유가 자체(The cure for high oil prices is high oil prices)” 라는 말이 있다.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어떤 인위적 노력보다도 시장에 맡기는 게 해결책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지난 2020년 이후 유럽발 에너지 위기 동안 국제 유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천연가스 가격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까지 올랐다. 정부는 거시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여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감면하고, 전력요금, 가스 요금을 거의 동결 수준으로 유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가 일시적인 우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결 정책을 시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동결 유지 정도가 OECD 내에서 지나치게 심한 것으로 보인다.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이 2020년 12월 대비 2022년 12월 한국은 37% 인상된 반면, 미국, 독일, 스페인, 및 영국은 각각 149%, 280%, 131%, 224% 인상되었다. 위의 국가들은 도시가스 공급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나라임에도 우리보다 4~5배 정도 요금을 인상하였다.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정부의 에너지 요금 개입은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13조 원 한전의 부채 규모가 202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하여 소비자의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더구나 이자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규모의 부채와 미수금은 막대한 금융비용을 발생시켜 추후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구조 부실화라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에너지 가격 개입은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수요를 인위적으로 증가시켜 시장 왜곡을 야기하고 관련 기술의 혁신과 효율성 개선을 저해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2020년 에너지 위기 당시 에너지 가격인상으로 에너지 소비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본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더욱이, 예측할 수 없는 정부의 가격 억제 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의 증가는 에너지 인프라 및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방해하고, 지속 가능하고 탄력적인 에너지 시스템의 구축도 상당 부분 지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