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투데이

요즘 K-드라마의 흥행 공식은?

10여 년 전만 해도 흥행 법칙은 단순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이를 막장 드라마라고도 했지만,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극단적 설정이라 하여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 콘텐츠라는 말도 나오게 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 같지만, 뻔한 것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드라마도 한몫했고 이에 더해 인기 작가 및 배우들도 흥행을 좌우했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려고 한다.
때문에 드라마의 흥행 공식 또한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다.

📝 김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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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스토리 속 캐릭터들의 콜라보

드라마 흥행 법칙에 고구마는 없고 사이다는 있다. 사이다가 없으면 동치미 국물(?)이라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고구마도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동치미 국물이라도 곁들이는 경우다. 비극적 상황에 무기력하게 안주하는 이들은 없다. 처음에는 답답한 상황에 이르러도 거기에 좌절해 있지는 않다. 고구마 같은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체감한 주인공들은 스스로 사이다가 되거나 동치미 국물이 되어 곤란한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 기발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통쾌하게 복수하거나 악인을 퇴치한다. 꼭 무력적이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지략이 중심이 된다.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전략의 승리는 쾌감을 더욱 강화한다. 〈끝내주는 해결사〉에서 주인공이 이혼 문제로 괴롭히는 이들을 혼내주는 방식이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주인공이 상황과 정보를 통제하여 미리 선제적 공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막아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전반적으로 비극적인 결말보다는 해피엔딩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부응한다. 더구나 감동이 있어도 대개 코믹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캐릭터의 콜라보 방식도 빈번하다. 혼자 해결하기보다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이 형사가 되는 진이수(안보현 분)의 활약과 강력 1팀 이강현(박지현 역)의 콜라보로 통쾌하게 범죄를 해결하는 〈재벌X형사〉가 이에 해당한다. 재벌 출신이 경찰이 되는 것도 참신하지만, 경찰 팀장과 티격태격 공조하는 모습이 케미를 선사했다. 〈모범택시〉 시리즈에서도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집단 구성원이 협업을 통해서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한다. 관련 공공기관 구성원들의 콜라보를 표방했던 〈소방서 옆 경찰서〉는 흥행의 여세를 몰아서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를 통해 콜라보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작은 아씨들〉의 경우에는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세 자매의 공조가 눈에 띄었다.

출처 : SBS드라마 <모범택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요즘 드라마

여성 서사가 중심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선망하는 남성 캐릭터를 넋 놓고 보게 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의 상대역이나 보조자에 머물지도 않는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오랫동안 주부로 산 주인공이 남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삶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며 감동과 재미를 주었다. 〈더 글로리〉에서는 여성의 관점에서 학교 폭력의 실상을 다루었는데, 여성의 관점은 물론 피해자의 심리를 독보적이며 매우 세밀하게 묘사했다. 더구나 여성적인 방식으로 복수에 나서며 다른 학교 폭력 소재 드라마와 차별화되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왜 여자는 힘이 세면 안 되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여성을 대변하는 서사를 담아내 화제였다. 놀라운 괴력을 지닌 도봉순이 모계 혈통의 유전으로 가능했다는 점도 여성 서사의 독특한 특징이다.
걸크러시 코드도 있다. 걸크러시는 여성이 여성을 존경, 찬양, 우상으로 삼는 경향을 말한다. 이는 동성애와는 다르다. 같은 여성이 보기에도 멋지고 이상적인 여성 캐릭터나 주인공을 말한다. 더는 심약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는 없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똑 부러지고 대차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강지원(박민영 분)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과 며느리를 시녀처럼 대하던 시어머니 등에게 통쾌하게 갚아준다.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통제하며 상황마다 해법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하는 유지혁(나인우 분)의 도움도 마다한다. 도움을 받은 유희연(최규리 분)은 강지원의 팬이 된다. 〈밤에 피는 꽃〉의 히어로 조여화(이하늬 분)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얌전한 대갓집 며느리지만, 복면만 쓰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영웅이 된다. 남편이 일찍 떠난 상황에서 수절과부로 얌전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살 수 없는 조여화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정의의 여성이다. 주체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끓어오른다.
착한 여주인공은 없다. 최소한 착한 척하지 않는다.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스스로 어려움에서 구제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제해 준다.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주운 거."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자신의 남편과 결혼하는 '절친' 정수민(송하윤 분)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날리는 강지원은 열심히 성실하게 자신의 일만 하지 않는다. 자기 일도 잘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도 해결한다. 해결의 방식에서도 인내하고 착하게 살아 권선징악을 이루는 게 아닌 현실적인 수단을 찾아 응징하는 서사를 보여준다. 〈끝내주는 해결사〉에서 김사라(이지아 분)는 이혼 문제로 고통을 겪거나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해준다. 이는 현실의 모습을 드러내는 설정이다.

  • 출처 : tvN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 출처 : tvN드라마 <미생>

흥행 대세로 자리 잡은 웹툰과 웹소설 원작

웹툰과 웹소설 토대의 작품이 흥행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생〉, 〈이태원 클라쓰〉 등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고 〈사내맞선〉, 〈재벌집 막내아들〉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작이 되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스위트홈〉 등은 OTT 드라마로 크게 인기를 끌어 연작 시리즈가 계속 제작되었다. 웹소설과 웹툰이 결합한 방식도 있다.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 웹툰)에 기반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여기에 속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장르일 때 웹툰 원작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이 그렇지 않은 드라마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원작의 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상화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원작의 후광 효과와 시각화는 특히 웹툰일 때 유리하며 그 상상력을 자유롭게 구현하는 점이 장점이다. 이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드라마 제작을 고려하고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서사보다는 여러 에피소드가 중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브플롯과 메인플롯이 있고 그 가운데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매회 다른 에피소드가 완결되었다. 〈모범택시〉에서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가운데 그 이면에 악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며 서사의 종착점이 형성된다. 〈재벌X형사〉에서도 해결해야 할 사건이 매번 등장하며 〈끝내주는 해결사〉는 이혼 사연자들이 등장하는 포맷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을 교차시키며 리드미컬하게 융합시키는 방식이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시청자들에게 호응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제 K-드라마는 ‘장르물이 대세’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장르물은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액션, 로맨스, 범죄 수사, 오컬트, 판타지, 오컬트 심령물 여기에 좀비, 괴물, 환생, 빙의, 초능력자 등의 포맷이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한때는 자극적이고 잔인하며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대중적이지 않다고 여겼지만 이제 드라마 소비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다만, 갈수록 융복합적인 측면이 강해져 장르물 코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정통 사극이나 주말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래도 시청자가 이러한 장르물을 소화할 수 있는 연령대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드라마의 흥행은 꼭 어느 하나의 비법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대진운이나 편성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완성도를 높이고 흥행 공식을 따른다 해도 성적이 나쁠 수 있다. 사회적 상황이나 트렌드의 변화가 작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항상 드라마를 보고 있다. 그렇기에 시청자가 어떤 작품을 접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충실하게 추적할수록 성공작이 나올 가능성은 커진다. 그로부터 흥행 법칙은 조금씩 계속 달라지고, 진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