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삼척

살랑살랑 봄바람 따라 강원도 삼척으로

코끝에 봄바람이 살랑대는 계절이다. 두꺼운 외투를 벗으니 마음까지 가볍다.
바람 따라 강원도 남쪽에 자리한 삼척으로 향한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 깊은 계곡에 자리한 신비한 폭포, 선조들의 숨결을 담은 누각까지,
삼척 곳곳에는 보석 같은 장소가 숨어 있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며 보물찾기하듯 구석구석 삼척을 살펴보자.

📝&📷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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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바위와 철썩이는 파도,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길, 초곡 용굴촛대바위길이다. 삼척 근덕면 초곡항에 있는 탐방로로, 그다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상을 안겨준다. 강릉의 바다부채길과 동해의 촛대바위를 조금씩 섞어 놓은 느낌이랄까. 기암적벽을 따라 난 길은 놀라움과 아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이 길에는 촛대바위와 거북바위, 사자바위 등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몇 해 전만 해도 이곳의 절경을 보기 위해서는 고깃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해안 데크길이 조성되어 이제는 편하게 경치를 볼 수 있다. 데크길 512m, 출렁다리 56m로 전체 길이는 660m다.
용굴촛대바위길은 오감을 깨운다. 바다는 연한 파란색부터 짙푸른 색까지 다채로운 파란색을 보여주고, 바위에 부딪히는 우렁찬 파도 소리는 움츠린 몸과 마음을 투명하게 해준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건너편도 둘러보고, 출렁다리 위 유리로 된 바닥도 천천히 걸어보자. 보는 각도에 따라 바다가 다르게 다가온다.

  •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안내판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길 236-4)

  •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여행자

  • 초곡 용굴촛대바위길 조형물

  • 우뚝 서 있는 촛대바위

  • 바다의 색과 파도의 소리가 어우러져 황홀함을 선사한다

나도 한번 달려볼까, 황영조기념공원

용굴촛대바위길이 있는 초곡항 부근은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고향이다.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황영조기념공원과 황영조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황영조기념관은 황영조 선수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다. 집에서 먼 초등학교를 걸어 다니며 기른 기초 체력을 시작으로 사이클 선수의 꿈을 키우다 육상으로 전향하게 된 내용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또 기념관에 들어서는 순간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딴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요약 영상이 자동으로 상영되어 당시의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기념관 옆 기념공원에는 황영조 선수의 동상과 시상대가 있으며, 시상대에는 직접 올라가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다.

  • 황영조기념공원에 있는 기념탑. 직접 시상대에 올라가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64)

  • 황영조기념관에서는 황영조 선수의 성장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부남해변과 맹방해변을 만날 결심

삼척에는 초곡항 외에도 동해를 따라 갈남, 궁촌, 용화, 호산, 임원 등 아름다운 항구와 해변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영화와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하여 인기를 끈 곳이 바로 부남해변과 맹방해변이다.
작고 아담한 부남해변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넘실대는 파도만 있는 바다가 아니라, 야트막한 갯바위가 곳곳에 있어 산과 바다가 함께 느껴지는 해변이다. 바위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오르던 여주인공 서래를 떠올리며 이어폰으로 가수 정훈희의 ‘안개’를 들으면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삼척을 대표하는 맹방해변은 수심이 얕고 백사장이 고와 사시사철 사랑받는다. BTS의 앨범 〈버터〉의 커버 촬영지로, BTS 팬클럽 아미는 물론, 일반 여행자들의 발길도 잦다. 해변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가 조성돼 더 매력적이다. 해안길에서 데크길을 따라 1㎞ 정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부드러운 맹방의 해안선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드라이브다.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약 4.6㎞의 거리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바다와 친구 하며 뻗어있는 이사부길 덕인데,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조성되어 ‘새천년도로’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된 길로, 중간에는 조각공원과 카페, 소망 탑 등이 있어 쉬어가기도 좋다.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는 이도 적지 않다.

  • 산과 바다 분위기를 함께 풍기는 부남해변 (강원 삼척시 근덕면 부남리)

  •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부남해변

  • BTS의 앨범 '버터'의 커버 촬영지인 맹방해수욕장 (강원 삼척시 근덕면)

  • 맹방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덕봉산. 생태탐방로가 조성되 정상까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 새천년도로라고도 불리는 이사부길은 삼척해수욕장에서 삼척항까지 이어지는 약 4.7km의 길이다

  • 이사부길을 달리다 보면 삼척항 긍처에 정자가 서 있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기차 타고 지그재그’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열차 여행

삼척은 바다만큼이나 산과 숲도 아름답다. 특히 사랑받는 곳이 신비로운 물색으로 유명한 미인폭포다. 도계읍 심포리에 있는 높이 50m의 폭포로,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이 분수처럼 갈라진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고인 웅덩이는 색이 옥빛이다. 미인폭포로 가는 길에는 통리협곡도 만날 수 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생성 과정과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비유한다. 다른 절벽과 달리 벽이 붉은빛을 내 눈길이 더 간다.
미인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열차를 탈 수 있는 하이원 추추파크가 있다. 스위치백 트레인은 경사진 산악지형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로, 1963년 영동선이 이곳을 지날 때 흥전역과 나한정역을 잇는 1.5㎞ 구간의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선로를 ‘갈지(之)’ 모양으로 만들었다. 당시에도 특별한 열차 구간으로 기차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2012년 터널 개통으로 해당 구간의 사용이 멈췄으나, 추추파크에서 증기형 관광열차인 스위치백 트레인을 선보이면서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구간을 달릴 수 있게 됐다.
추추파크 스테이션에서 출발한 스위치백 트레인은 흥전역에 멈춰 방향을 바꾼다. 기차 꼬리가 머리가 되고, 앞부분이 뒤로 변신한다. 기차는 오던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기차의 앞뒤가 바뀔 때는 흥미로운 공연을 보는 듯하다. 열차는 기적소리를 내며 흥전삭도마을까지 달린 후 30분 정도 정차한다. 흥전삭도마을에는 탄광촌을 테마로 한 트릭 아트존이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 스위치백 트레인을 탈 수 있는 하이원 추추파크. 건물 외관이 유럽 고성을 연상케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남길 99)

  •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트레인

  • 흥전삭도마을에 내리면, 탄광을 주제로 한 트릭아트존이 마련되어 있다

국보로 승격된 관동팔경의 제1경 죽서루

마지막으로 갈 곳은 지난해 12월 국보로 승격된 삼척의 대표 명소 죽서루다. 오십천 위에 자리한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가장 큰 누정이자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은 건물이다. 관동팔경 제1경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8경 중 가장 오래됐다.
죽서루는 절벽 위 자연 암반 위에 기둥을 세워 지은 누각이라 17개의 기둥 길이가 다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선조들의 여유로움과 지혜가 느껴진다. 〈조선고전문학선집〉에서는 “멀리는 뭇 산이 오라는 듯 가뭇가뭇 어렴풋이 보이니 누대의 풍경이 실로 관동의 으뜸이다”라고 죽서루를 소개하고 있다. 누각 안에는 옛 문인이 남긴 한시가 빼곡하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현판도 눈에 띈다.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글씨는 조선 숙종 때 삼척 부사였던 이성조의 글씨이며, ‘제일계정’이라는 현판은 미수 허목이 썼다. 누각 앞에는 수령 수백 년의 회화나무가 있어, 죽서루가 더 빛난다.
죽서루의 특별한 풍광을 보고 싶다면 오십천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 반짝이는 강물, 깎아지른 절벽, 울울창창한 소나무와 어우러진 죽서루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관동팔경 중 최고로 손꼽히는 죽서루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내동 9-3)

  • '제일계정' 글씨는 조선시대 미수 허목이 썼다

  • 지난해 12월 국보로 승격된 죽서루

  • 건너편에서 바라본 죽서루. 오십천과 절벽, 소나무가 어우러져 더 웅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