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칼럼

에너지의 지리경제학

에너지 및 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과 같은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자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지리경제학’.
지리경제학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있다.
지리경제학적 현상이 에너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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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학의 최전선, 에너지

지리경제학, 즉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은 지리적 특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라고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에너지 및 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과 같은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자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국제관계학 분야에서 지리가 국가 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분과인 지정학(地政學·Geopolitics)이 군사적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쟁취하려는 보다 공격적인 뉘앙스를 내포하는 데 비해, 지경학은 비군사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서 덜 위협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전보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지경학적 수단을 활용하면서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지경학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바로 에너지다.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에 적극 활용했던 지경학적 수단도 에너지였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Finnish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의 미카엘 비겔(Mikael Wigell)과 안토 비흐마(Antto Vihma)는 2016년 출판된 논문에서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기 전인 2012년의 가스 가격을 분석하여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을 분단시켰는지 분석하였다. 러시아는 독일과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나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한 데 반해, 2008년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을 지지한 체코에는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자국이 가진 가스라는 에너지원을 무기로 지경학적 게임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유럽의 통합과 연대에 균열을 내려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1)

이렇게 에너지를 무기로 하는 지경학적 게임은 비단 유럽과 러시아만의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욱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가스 시장은 큰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전쟁 직후 가스 가격은 폭등했고,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고통받았다.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해 가스를 둘러싼 역학 관계도 크게 변화했다.

LNG 시장의 확대, 미국의 부상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과 미국이 최대 가스 공급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올해 초 발간한 〈2024년 1분기 가스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추가로 확대된 LNG 공급에서 무려 80%를 감당했다. 해당 보고서는 2023년에는 글로벌 가스 시장의 재조정 국면을 보냈지만, 2024년에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서 2.5% 정도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력 생산을 위한 가스 수요는 매우 제한적으로 증가하겠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고속 성장 시장과 가스가 풍부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의 가스 수요가 산업 부문은 물론 주거 부문과 상업 부문에서도 늘어나 성장세를 이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기 힘든 것은 글로벌 LNG 공급이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IEA의 보고서의 분석대로 글로벌 가스 수요가 상승하는 만큼 공급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자주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석유·가스의 비중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우려스럽다. 우리나라는 1981년부터 석유 및 가스의 해외 개발을 시작하여 총 391개 사업에 진출하였으며, 2022년 말 기준 28개국에서 105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석유·가스의 자급률(혹은 자주개발률)은 2021년 기준 11% 정도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옆 나라 일본의 해당 수치는 같은 2021년을 기준으로 40.1%였으며, 일본 정부는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자주개발률을 2030년에는 50% 이상, 2040년에는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석유·가스 자급률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지경학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호주나 모잠비크에서 진행 중인 부유식 액화천연가스(FLNG·LNG-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사업은 조선업에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최근 호주의 우드사이드 에너지와 맺은 장기(10년 6개월) LNG 공급 계약 역시 한국이 처한 지경학적 리스크를 상당 부분 덜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미래 에너지 시장을 쉽사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 대응 국면에서도 가스는 당분간 글로벌 수요가 유지 내지 확대될 수밖에 없으면서 동시에 지경학적 게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에너지원이니만큼, 가스의 지경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한국가스공사의 역량이 집중되기를 거듭 주문하는 바이다.


1) Mikael Wigell & Antto Vihma, “Geopolitics versus Geoeconomics: The Case of Russia’s Geostrategy and Its Effects on the EU,” International Affairs Volume 92, Issue 3(May 2016): pp. i-xii, 509-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