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대표하는 문학기행 명소, 박경리기념관
온화한 환경 때문인지 통영에서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했다. 유치환, 유치진,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이 대표적이다. 천재화가 이중섭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잠시 머물기도 했다. 시인 정지용은 통영을 여행하고 나서 쓴 기행문에 “통영과 한산도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고 적기도 했다.
소설가 박경리(본명 박금이)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단편소설 〈계산〉으로 등단했다. 당시 추천작가는 〈등신불〉을 쓴 김동리였다. ‘박경리’라는 필명도 김동리 선생이 지어줬다. 박경리의 주요 작품으로는 대하소설인 〈토지〉를 비롯해서 〈김약국의 딸들〉, 〈파시〉, 〈나비와 엉겅퀴〉, 〈노을진 들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표작으로는 단연 〈토지〉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1969년에 처음 쓰기 시작해 1995년에 탈고한 〈토지〉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을 비롯해서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서 펼쳐지는 최씨 집안의 가족사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10년 5월 문을 연 박경리기념관에는 〈토지〉의 원본, 육필원고 등과 함께 〈김약국의 딸들〉 배경지인 통영의 옛 모습이 축소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야외의 잔디광장에는 박경리의 동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박경리의 유고시집에 실려 있는 ‘옛날의 그 집’ 마지막 문장임과 동시에 유고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2011년 경상남도 건축대상을 받은 박경리기념관 뒤편에는 박경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에는 박경리 묘소, 시비, 문장비, 산책로 등이 있다. 시비 가운데는 박경리가 노년에 쓴 ‘옛날의 그 집’도 있다.
생전의 박경리는 글을 쓰는 시간 외에는 바느질을 즐겨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행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고시집에 들어 있는 ‘바느질’과 ‘여행’에서 이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여행’이라는 제목의 시는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라고 시작했을 정도다. 이처럼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던 박경리는 지난 2008년에 먼 여행을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