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

숫자로 가득 찬 세상

주말의 아침, 필자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올해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다. 창밖에는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하얗다 못해 어둑어둑 검게 물들어 새파랗다. 하지만 낡고 탁한 액정 속에 떠다니는
필자가 매수한 주식 뭉텅이들보다는 파랗지는 않을 것이다.

📝 유라시아사업부 이창훈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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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어디에 쓰나요?

예로부터 필자를 비롯한 많은 소액투자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현금을 희생하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자본주의 시장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프린키피아〉의 저자이자 미분적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그 유명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경 또한 주식투자로 전 재산의 90%를 잃고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라고 했다니, 뉴턴에 비해 계산능력이 떨어지는 필자가 돈을 시장에 바치며 기부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숫자에 울고, 증가하는 숫자에 웃는다. 주식시장뿐만이 아니다. 현대 사회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숫자에 가치를 부여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한다. '공장의 생산 수율', '박테리아의 증식률', '출산율과 사망률' 등등 셀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숫자가 현실을 대체하고 숫자의 증감에 따라 울거나 때로는 웃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숫자를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숫자를 다루는 학문을 우리는 수학이라고 한다. 그렇다. 사실 이 글은 주식이 아니라 수학에 대하여 논하는 글이다.
학창 시절 우리는 수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수학 공부에 대한 추억은 씁쓸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권유로 구매한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사과가 빨갛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외우고 ‘근의 공식’을 외우는 것은 즐겁지도 않을뿐더러, 수학이 정말로 삶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의구심을 키울 뿐이다. 필자 또한 그러한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학창 시절 수학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지만, 이는 여백이 적어 적지 않는다. 그 대신에 수학이 어떻게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보이도록 하겠다.

첫사랑이 실패(해야)하는 이유

많은 (결혼을 원하는) 미혼 남녀들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이 주어진다. 바로 지금 연애 중인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할 것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화시켜 생각한다면, 배우자로 선택하기 전에 이성을 일정 기간 만나며 마음에 드는 면과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비교하며 지금의 이성을 배우자로 결정하거나 혹은 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 위해 지금의 이성과 헤어지고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2023년 미혼남녀의 평균 이성 교제 횟수는 3.9회라고 하니 평범한 사람에게 4번의 이성 만남의 기회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배우자를 선택할 전략일까?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읽기에 앞서 머리가 아프신 독자분들이 있으시다면 건너뛰어 결과만 확인하셔도 좋다. 먼저 4장에 카드에 서로 다른 수 1, 2, 3, 4가 적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카드들을 숫자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 섞은 후 한 줄로 나열하였다. 앞에서부터 K장씩 뒤집어보고 이 중 가장 큰 수를 M이라고 하자. 남은 카드를 순서대로 한 장씩 뒤집어 나가다가 보다 큰 수가 나타나면 그 카드를 반드시 선택한다. 이렇게 할 때 가장 큰 수 '4'가 선택될 확률이 최대가 되도록 하는 K의 값은 얼마인가?

위의 문제 상황은 아래와 같은 표로 나타낼 수 있다.

배열 k=1 배열 k=1 배열 k=1 배열 k=1
1234 2134 3124 * 4123
1243 2143 * 3142 * 4132
1324 2314 3214 * 4213
1342 2341 3241 * 4231
1423 * 2413 * 3412 * 4312
1432 * 2431 * 3421 * 4321
배열 k=2 k=3 배열 k=2 k=3 배열 k=2 k=3 배열 k=2 k=3
1234 * 2134 * 3124 * * 4123
1243 * 2143 * 3142 * 4132
1324 * * 2314 * * 3214 * * 4213
1342 * 2341 * 3241 * 4231
1423 2413 3412 4312
1432 2431 3421 4321

위 표와 같이 K=1일 때 최댓값이 선택될 확률은 11/24, k=2일 경우 10/24, k=3일 경우 6/24이고 k=0일 때도 마찬가지로 6/24이므로 k=1 때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K는 연인과 이별하는 횟수와 같으므로 평균적인 연애 횟수를 가지는 사람은 첫사랑이 실패했을 때 가장 최고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수학적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어떡하죠? - 한계점

위의 예시는 1940년도에 유행했던 비서문제(Scretary problem)을 재풀이한 것으로, 기회를 n으로 두고 일반화하면 간단한 적분을 통해 전체 카드의 36.78%를 뒤집을 때 가장 확률이 높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의 수학적 결과만을 맹신하여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최고의 배우자(4)가 아닌 차선의 배우자(3)까지로 범위를 넓힌다면 충분히 높은 확률(50%)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학과는 다르게 실제 세상에서는 상대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는 간단히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상황에 따라 카드에 적힌 숫자가 변화하기도 한다. 죽는 날까지도 당신은 가보지 않은 길의 경치를 알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하고 그럼에도 모든 과정은 아름답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삶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다음호 필봉계주를 이을 주인공은
자재계약부 송용헌 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