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투데이

식(食) 트렌드: 경험의 식, 지성의 식

생활변화관측소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발적으로 남긴 글을 분석하여
어떤 키워드가 지난 몇 년 간 더 많이 언급되었는지, 그 변화 추세는 어떠한지,
어떤 연관어와 함께 언급되는지 등을 관찰하여 사회 변화를 바라본다.
그중 ‘식(食)’, 먹는 것을 중심으로 한 관찰기를 공유한다.

📝 정석환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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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식(食) 트렌드

식(食)은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관련이 있고, 소비 빈도가 잦고,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식(食)의 트렌드는 시기적으로 크게 코로나 전과 코로나 시기, 코로나 이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코로나 전부터 시작되어 꾸준히 강화된 키워드들은 ‘닭가슴살’, ‘운동식단’, ‘모닝루틴’이 있다. 운동하며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건 꾸준히 강화될 트렌드로 보인다. 두 번째는 코로나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다가 코로나를 겪으며 학습하고 그 후 더욱 진화한 패턴이다. 대표적으로 ‘밀키트’, ‘제로’, ‘웨이팅’ 등이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코로나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 니즈가 발생했고, 그에 맞춘 제품 및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 결과 소비자가 더욱 학습하게 되어 수요와 공급이 함께 커지고 확장과 진화가 계속되는 분야라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코로나가 끝날 때쯤 등장하여 발견된 패턴이다. ‘하이볼’, ‘페어링’, ‘오마카세’의 키워드가 여기에 해당된다. 생활변화관측소는 이러한 패턴을 앞서 말했던 취향에서 지식으로 깊어지는 경험이라고 본다. 페어링이나 오마카세와 같은 키워드는 셰프의 기호도, 손님의 취향도 아닌, 지식과 안목의 영역에 가깝다.

경험을 찾는 웨이팅, 두 시간 줄 서서 왜 먹어?

'웨이팅+어플' 월별 언급 추이

  • '웨이팅+어플' 월별 언급 추이

    출처 : 썸트렌드 2020.01.01 ~ 2023.07.31

  • 경험에 해당하는 영역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웨이팅’이다. “2시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웨이팅 없이는 못 먹는 도넛” 등 소셜미디어나 뉴스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그렇지만 트렌드를 보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줄 서는 모습 이면의 맥락과 그 안의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지난 2년간 정말 많이 언급된 웨이팅은 한편으로 강화된 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맛집이라는 공간, 웨이팅이라는 행위, 그리고 그걸 돕는 앱(APP)이 삼위일체처럼 작동하는 모습이 특징이기도 한데, 이는 단순히 식(食) 문화 트렌드라기 보다 우리 사회가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접대해야 하는 어려운 사람을 모시고 웨이팅이 있는 식당에 갈 수는 없는 법. “예약을 받지 않아 웨이팅을 해야 하는데, 같이 갈래?” 하고 말할 수 있는 사이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법이다. 트렌드는 개인의 기호가 아니라 사회의 합의라는 점이 중요하다. 웨이팅 또한 희소한 식사를 위해서는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지성이 된 페어링, 개인의 취향이 아닌 합의된 지식

페어링 언급 추이

  • 페어링 언급 추이

    출처 : 썸트렌드 2018.01.01 ~ 2023.10.31

  • 특정 조합이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몰라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페어링은 합의된 음식의 지식 체계를 배우는 것과 같다. 페어링은 주로 음식과 술의 어울림에서 많이 언급되는데, 이때 술은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술과 잘 어울리는 음식과 식사를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페어링은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 지식의 영역에 가깝다. 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를 안다는 것은 곧 먹을 줄 아는 지식을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를 예로 들면, 한국인들이 지식 체계와 같이 합의한 페어링이 있다. 삼겹살과 먹는 구운 김치, 국밥과 먹는 깍두기, 수육과 먹는 김장김치 등 개인의 남다른 취향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린 합의된 지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페어링의 담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에는 ‘하이볼’도 있는데, 하이볼은 식(食) 관련 키워드의 어떤 것을 보아도 상승하는 키워드이다. 비주얼부터 가성비, 접근성, 커스터마이징 가능성까지 트렌드가 갖춰야할 요소를 전부 지닌 것이 특징이다. 하이볼이 포함된 음식 사진 한 컷은 하이볼과 어울리는 식사를 할 만큼 식사를 준비할 줄 아는 사람, 음식의 지식 체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페어링은 웨이팅처럼 비단 식(食) 문화에서 주목되는 키워드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페어링은 소비자와 이용자가 직접 만들어내는 콜라보레이션으로 볼 수도 있다. 페어링이 가능할 때 브랜드들의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다. 콘텐츠와의 페어링, 자연과의 페어링, 식음과의 페어링, 특정 시간대와의 페어링 등 그 확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키워드는 늘 중립이다

올해 생활변화관측소는 〈2024 트렌드 노트〉를 통해 #페어링 #웨이팅 #워케이션 #추구미 #서브컬쳐 #DEI #제로OO #OO프리 #서울의정체성 등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중요한 점은 키워드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아 보는 것. 키워드에서 고민을 멈춘다면 나도 모르게 가치 판단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MZ 녀석들! 저축을 해야지. 와인 페어링이 트렌드라니, 말세로구나. 나 때는 안 그랬는데!’와 같은 태도는 이 세상을 읽어 보고자 하는 관점에서 전혀 유리하지 않다. 트렌드는 긍정이나 부정이 없다. 늘 중립이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거친 가치판단적 태도는 되레 나와 세상의 거리를 늘린다.
생활변화관측소가 고수하고 추천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페어링이 뜨는구나’에서 멈추지 않고 ‘페어링이 뜨는 이유는 식문화에 있어 취향보다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고민해보는 것이다. 이정도 고민까지 온다면 중요한 건 키워드가 아닌, 키워드를 통해 본 변화의 단초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