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구

한 해를 여는 여행, 나는 여기서
대구광역시

촘촘히 드리운 오랜 역사 속에서 도시는 존재감을 뽐낸다.
경상감영이 자리했던 대구는 조선시대 경상도 제일의 도시였다. 그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 해를 여는 1월, 대구에서 도시의 역사와 개인의 추억, 그리고 모두의 문화예술을 마주한다.

📝&📷 임운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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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사가 깃든 경상도의 중심 ‘대구’

조선은 8도에 감영(오늘날의 도청)을 설치하고 행정·사법·군사를 관리하는 관찰사를 임명했다. 경상감영은 경주에 처음 설치된 이후 상주, 칠곡, 달성, 안동을 거쳐 마지막으로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대구가 경상도 전체를 다스리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경상감영 주변은 독립운동과 수탈이 공존했고, 해방 이후엔 황금상권으로 손꼽혔다. 현재 경상감영 터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공원으로 활용 중이다. 경상감영 공원에는 하마비를 비롯해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선화당, 관찰사의 숙소 징청각, 통일의 종 등이 어우러져 있다.
통일의 종 돌다리를 건너면 한해에 1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대구근대역사관을 마주한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문을 연 이 건물은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되다 2011년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1929년 7월 대구에서 처음 운행한 부영버스 영상체험실을 비롯해 다양한 근대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구역 근처 향촌동은 원래 경상감영의 화약고가 있던 자리였다. 대구역이 들어서고 대구읍성이 헐리면서 조금씩 상권이 형성되더니 해방 이후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다방, 음악실, 양복점, 금은방, 은행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1970년대까지 대구의 중심, 이른바 ‘시내’로 불리기 시작했다. 옛 향촌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향촌동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향촌문화관을 찾아보자. 1912년 선남은행으로 문을 연 이곳은 시대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에 향촌동과 공구거리, 대구역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특히 도깨비시장, 양키시장 등으로 불리던 교동시장과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다방, 음악감상실, 주점 등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만하면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꿴 셈이다.
경상감영공원에서 중앙로역 2번 출구로 나서면 동성로 28 아트스퀘어 광장이 닿는다. 동성로라 불리는 이 거리는 과거 향토백화점의 자존심이자 랜드마크였던 대구백화점 본점과 중앙파출소, 대구역 사거리로 이어진 대구에서 가장 변화한 곳이다. 동성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구읍성의 동쪽 성벽을 허물고 낸 0.92km의 길을 말한다. 동성로는 낮보다 밤이 화려하다. 패션의 도시답게 감각적인 쇼핑몰과 맛집, 카페 등이 밀집되어 있어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가운데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힌 대관람차가 눈에 띈다. 어둠이 내려앉은 동성로에 그윽한 커피 향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와 겨울마저 따뜻하게 껴안는 듯하다.

  • 대구의 중심에 자리한 경상감영 전경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99)

  • 향촌문화관에서는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대구 중구 중앙대로 449)

  • 향촌문화관 전시관 전경

  • 동성로의 야경 (대구 중구 용덕동 12)

  • 동성로 밤거리를 밝히는 대관람차

노래가 물결처럼 흐르는 추억의 거리,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김광석은 가슴을 적시는 감성적인 목소리로 수많은 명곡을 남긴 한국 포크계의 전설이다. 그의 노래는 시대와 세대를 아울러 수많은 이를 감동하게 했다. 특히 삶의 소소한 장면마다 그에 걸맞은 노래를 대중에게 선사하며 ‘노래하는 철학자’, ‘노래하는 시인’, ‘가객‘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자신의 노래 ‘서른 즈음에’처럼 짧았으며, 외로웠고, 헛헛했다. 그토록 원하던 가수로 성공했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인생의 허무함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일까? 1996년 1월 6일, 33년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대구 신천대로 아래에 대구의 3대 전통 재래시장 중 하나였던 방천시장이 자리한다. 시장 옆 좁은 골목길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이 있다. 길은 350m 남짓하다. 이 길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여 그의 노래를 모티브로 70여 점 이상의 다채로운 벽화를 그려냈다. 그중 박재근 작가는 벽화 제목과 소재를 김광석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그것인데 모델은 방천시장 상인 부부라고 한다. 여행자들은 골목에서 실물 크기로 제작된 김광석 조형물과 사진을 찍는다. 실제 김광석이 그랬듯 이 조형물도 흔쾌히 어깨를 내어주고 환하게 웃는다. 164cm의 작은 키 덕분에 누구와 어깨동무해도 어색하지 않다. 벽면 한편에 자물쇠도 걸어놓았다. 사랑과 추억을 간직하고픈 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뒤로 야외공연장이 있다. 버스킹 공연과 김광석 추모 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열린다. ‘응팔’ 세대를 위한 추억 소환 아이템들도 많다. 갤러그, 테트리스 등 쪼그려 앉아서 해야 제맛인 게임들이 가게 앞에 줄 서듯 자리한다. 교련복과 검정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가게,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도 문전성시다. 포장마차 주인행세를 하는 김광석의 벽화도 있다. 황현호 작가의 ‘석이네 포차’가 그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술안주를 건네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골목 끝자락에 ‘김광석 스토리하우스’가 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에 친필 악보와 수첩 등 김광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1,000여 점에 이른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중·고학생 시절, 어린 딸과 함께 찍은 사진 등 가족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평소 철학에 심취하던 그였기에 남겨진 메모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숱한 상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김광석 거리는 대구를 대표하는 카페거리로도 손꼽힌다. 이른바 ‘갬성’ 물씬한 모던 카페, 앤티크 카페, 한옥 카페 등 취향에 따라 카페투어를 즐겨도 좋다.

  • 골목 들머리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김광석 조형물 ‘사랑했지만’이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 6-11)

  •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

  • 김광석의 생애를 들여다 보는 김광석스토리하우스

  • 사랑을 약속하며 걸어 둔 자물쇠

  • 김광석 스토리하우스의 김광석 노래 감상 코너

쌀쌀한 날씨에 더 어울리는 문화예술 갤러리 여행

대구의 오랜 역사와 문화는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대구의 근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대구미술관이다. 지상 1, 2층에 전시실을, 지상 3층에 예술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며 쉬어가기 좋은 라운지가 있다. 대구광역시가 지원하는 시립미술관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작품들을 단돈 1천 원(성인 일반 기준)에 감상할 수 있다. 현재 눈여겨 볼만한 전시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이 3월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1606~1669)는 서양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거장 중의 거장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동판화 작품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자화상을 비롯해 동판화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풍경 등 7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카메라로 피사체를 촬영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만큼 섬세하다. 특히 빛과 어둠을 바라보는 렘브란트만의 시선에서 무한한 감동이 밀려온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도 특별전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 전이 2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왕실과 민간에 이르기까지 건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현판’을 달았다. 현판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까닭은 현판이 단순한 공간의 이름표가 아닌 공간의 역사와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관람할 때는 먼저 현판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살펴보길 바란다. 현판의 예술적 아름다움에 감동할 것이다. 이후 건축주가 바라는 건축물의 가치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살펴보고 궁중의 현판까지 살뜰히 챙겨보자. 그러는 동안 생경한 한자로 가득했던 나무판에서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올 것이다.

  •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이 열리는 대구미술관 (대구 수성구 미술관로 40)

  • 〈렘브란트, 17세기 사진가〉 전시실

  •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현재 덕수궁의 현판 대한문 이전에 걸렸던 대안문 (대구 수성구 청호로 321)

  • 궁중과 민간의 현판이 한자리에 전시 중이다

  •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된 보물 칠곡 송림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