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철강 기술의 미래
수소환원제철 기술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현대를 석유, 플라스틱, 반도체의 시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지탱하며 가장 널리 사용된 금속 혹은 원소를 이야기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철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일상에서 철을 대체하는 물질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산업 전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원소는 철이다.
철의 별명이 ‘산업의 쌀’인 것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인류, 금속을 사용하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시대 구분을 떠올려보자. 역사가 시작되기 전 선사시대, 그 안에서는 구석기/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뉜다. 시대 구분은 예외가 많다. 구리와 주석을 섞은 청동이 아닌 순수 동을 사용한 지역도 있었고, 구리와 주석이 워낙 드물어 바로 철기로 간 지역도 있고, 심지어 철 제련의 어려움으로 인해 철기가 도래하지 않은 지역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석기 – 청동기 - 철기로 시대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귀한 청동을 일상에서 사용하기 어려웠다. 청동제 칼은 실전용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주로 권위를 나타내는 권력자의 장식용품으로 쓰이곤 했다. 그러나 청동기는 인류가 금속을 제련하고 가공하는 야금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고, 철기로 가는 중간 역할을 해 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철기가 도래했다. 철 제련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인류는 방법을 찾아냈다. 처음엔 구리나 금보다도 비쌌으나 철 값은 점점 저렴해졌고, 농기구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식량 생산량이 늘어났다. 물론, 강도 높은 철제 무기가 널리 사용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속 이용의 역사에서는 이후 널리 사용된 금속으로 알루미늄을 이야기한다. 가볍고 철에 비해 녹슬어 부스러지지 않는 알루미늄은 매장량도 풍부하다. 금속 중 가장 흔한 원소이다. 그러나 제련이 어려워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0여 년밖에 되지 않았고, 현대에도 알루미늄을 제련하는 데 막대한 전기가 들어가기에 분리수거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금속이다.
과거 인류는 어떻게 철을 얻었을까?
인류가 어떻게 철을 얻었는지 알아두면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장간 장면을 이해할 수 있고, 혹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강대한 문명을 일으키는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은 상당히 흔한 금속이지만 산소와의 반응성이 커서 산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순수한 철은 녹는점이 무려 1,500℃가 넘지만, 순수한 철을 녹여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거의 제철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 가지 특성을 기억하면 편리하다. 첫째, 철광석에는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불순물의 산화물은 순수한 철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녹는다. 둘째, 철에 탄소가 포함되면 철의 녹는점이 내려간다. 셋째, 탄소 함량이 적은 순철은 무르고 강도가 약하며, 탄소 함량이 올라가면 단단해지지만 탄소 함량이 너무 높아지면 유연함이 없어져 잘 깨지게 된다.
철 원자들 사이에 탄소 원자가 들어가는 침탄 개념이 특이하다. 탄소 함량이 높은 철의 경우 단단하지만 잘 깨진다는 것도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유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유연한 플라스틱보다 강하고 단단한 유리가 더 잘 깨진다. 탄소 함량이 지나치게 적으면 너무 무른 순철, 지나치게 높으면 가공은 용이하지만 잘 깨지는 주철이 된다. 인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적절한 탄소를 철에 공급해야 했고,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광석 ⓒDesigned by Freepik
우주에서 날아든 운석을 통해 발견된 극소량의 철기를 제외하면, 인류가 처음 제련에 성공한 것은 아마도 청동기를 제련하는 과정의 부산물이었을 것이다. 철광석을 숯/목탄과 함께 가마에 넣고 풀무질을 통해 공기를 강하게 공급해주면 가마 안 온도가 1,000℃ 정도로 올라간다. 순수한 철을 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저 온도에서는 숯이 산소와 반응하여 일산화탄소가 생기고, 이 일산화탄소가 철광석 내의 산화철과 불순물을 태운다. 그 결과 산화철이 일산화탄소와 반응하여 순수한 철은 그물 모양으로 남고, 불순물이 산화된 슬러지는 녹아서 그물 모양의 철 구조물 사이사이에 고여 있다가 분리된다.
이 직접환원법에서는 철 원소는 녹지 않고, 산소와 결합된 형태였다가 산소가 빠져나가고 순수한 철이 그대로 마치 그물 같은 기둥처럼 남는다. 이를 스펀지와 같다 해서 ‘해면철’이라 한다. 탄소 함량이 극도로 적어 녹는점이 매우 높고, 유연하고, 사이사이에는 불순물이 박혀 있는 형태이다.
이제 이 유연하지만 불순물이 사이사이에 덩어리로 끼어 있는, 품질이 균일하지 못한 철을 가공해서 쓸모 있게 만들 차례이다. ‘해면철’을 가열하고 망치로 두드려 편다. 두드리는 과정에서 철 사이의 빈 공간이 메워지고 구멍 숭숭하던 철 조직은 치밀해진다. 많이 두드려서 넓고 얇게 펴지면 접어 뭉쳐 계속 두드린다. 이 과정에서 불순물들이 압출되고, 불균일한 철 결정도 어느 정도 균일해지며,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불순물들도 (뭉쳐있지만) 철 내에 퍼지게 된다. 그러나 탄소 원자가 철 원자들 사이에 균일하게 분포될 수 있는 온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순수한 철들이 뭉쳐있어 여전히 강도가 떨어지는 연철 상태이다.
이제 철 원자들 사이에 탄소를 넣어주는 침탄 과정이 필요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철을 숯에 뒤적뒤적한 뒤 다시 두드린다. 이런 경우 철 표면에 탄소가 침투되는데, 그 양이 미세하고 표면에만 침투하므로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대장장이가 숯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철제 칼을 꺼내서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이 바로 이 작업이다.
또한 달아오른 철 조각이 천천히 식으면 다시 일종의 결정을 형성하면서 경도가 낮아진다. 그래서 물에 담가 급격하게 식히는 ‘담금질’을 한다. 천천히 식으며 결정 구조가 안정한 형태로 변하기 전, 그대로 식혀버리는 것이다. 물속에서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이 바로 담금질이다.
고된 작업을 반복하여 적절한 탄소 함량을 지닌 철이 되면 이를 ‘강’이라 한다. 흔히 ‘강철’이라고 부른다. 철은 iron, 강은 steel로 아예 단어 자체가 다르다. 그만큼 과거부터 본질적으로 다르게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인류가 철 원자 사이에 탄소를 집어넣거나 빼는 침탄/탈탄 과정을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가열하고 두드리고 급랭시키는 방식으로 강도를 올리는 것도 어디까지나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이고, 특히 연단의 과정, 즉 인간의 노력이 강한 재료를 만들어낸다는 철학적 내용과도 닿아 더 쉽게 개발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철의 핵심 요소, 탄소
시간이 지나 더 높은 온도로 올릴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인력을 넘어 물레방아 등으로 더 많은 양의 공기를 공급할 수 있었고, 계속 고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목탄을 계속 넣어주자 1,200℃ 이상의 온도에 도달하였다. 이 온도에서는 일산화탄소가 탄소로 다시 환원될 수 있는데, 이 탄소 원자들이 철 속에 침탄 되면서 철 속의 탄소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탄소 농도가 높아진 철은 녹는점이 낮아진다. 탄소 함유량이 4%가 조금 넘은 철은 녹는점이 1,140℃ 정도로 낮아져 노의 하부에 액상으로 모이게 된다. 드디어 액체 상태의 철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탄소 함유량이 4%나 되는 경우, 녹는점은 낮아지지만 강도와 경도가 너무 높아 잘 깨지는 단점이 있었다. 거푸집을 만들고 주조가 가능하기에 여러 기구를 만들 수 있어 주철이라고도 부르는 선철은 연철과 정반대의 성질로 그 활용도가 제한되었다.
연철에 탄소를 넣는 침탄은 힘든 과정이지만 어쨌든 가능했다면, 선철에서 탄소를 빼내는 탈탄은 좀 더 전문적인 이론과 노의 설계가 필요한데,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탈탄 과정을 통해 탄소가 빠져나오며 강이 되어갈수록 녹는점이 올라가서 액상의 철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고체 상태의 주철에서 탄소를 제거하느니, 연철에서 침탄 과정을 통해 강을 얻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즉 주철은 주조 과정을 통해 모양을 만들어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널리 쓰였지만, 정교하게 탄소 함량 조절을 해야 하는 무기나 강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 대량 생산 체제로 넘어간 시기는 19세기 전기를 사용하는 전로가 등장한 이후이다. 이후에도 한동안 고품질의 강철은 기존의 방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기술을 사용한 철과 강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재료공학과 금속공학의 발달로 철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탄탄해졌고, 탄소 함량은 물론 다른 불순물들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까지도 제철에서 가장 핵심 원소는 바로 탄소이며, 이는 철의 탄소 함량이 철의 상태를 결정함과 동시에 코크스가 노의 온도를 유지하는 핵심 원료이기 때문이다.
현대 용광로는 코크스를 태워 나오는 일산화탄소가 산화철과 반응하여 철을 얻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철에 탄소가 흡수되어 탄소 함량이 높은 상태이며, 철은 바로 전로에서 탈탄 과정을 거쳐 적절한 상태의 탄소 함량을 가진 강으로 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속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시급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큰 걸림돌이다. 현재 가장 많이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이 바로 제철 산업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철기 시대에 살고 있다. 철 생산을 줄일 수는 없다면, 어떻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 제철을 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수소환원제철은 산화철을 환원시키는 과정에 탄소 대신 수소를 사용하며, 이때 이산화탄소가 아닌, 수증기만 배출된다. 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필수적인 탄소만 공급하면 된다.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그린수소를 활용한다면 탄소 배출의 주범 중 하나인 제철 산업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단 생산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며, 그린수소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반쪽자리 설비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쌓인 노하우와 다른 이론이 적용되므로 기술 개발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HyREX(하이렉스)
ⓒ유튜브 ‘포스코TV’ 채널
그러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미래는 필연적으로 탄소 배출 감소의 방향으로 갈 것이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철강에 탄소세를 물리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자재 가격, 즉 철강 가격이 지금처럼 저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지금의 풍요로움은 탄소를 펑펑 배출하며 얻어낸, 미래에서 빌려온 풍요이기 때문이다. 그린수소, 블루수소 생산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도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수소경제의 큰 축은 친환경 전력 생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철기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수십 년 후, 탄소를 태워서 공기 중에 마음껏 뿜어버리는 지금의 제철 방식을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수소환원제철이 가능함을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본격적인 기술 개발은 위기의 순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자동차들이 길 한가운데서 화석연료를 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2022 대한민국 에너지대전’에서 포스코가 소개한 HyREX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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