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문화에서 대중문화로 확장된 한국 인터넷 밈의 역사
최근 방송인 재재의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 인터넷 밈 크리에이터 제프프가 출연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황정민이 부르는 밤양갱 영상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정작 황정민은 밤양갱을 부른 적이 없다. 그럼 A.I로 부르는 영상을 업로드한 것일까? 아니다. 제프프는 황정민이 출연한 모든 영화와 드라마, 영상을 보고 그 일부를 음절 단위로 자른 다음 음절마다 음정을 조정했다. 그다음 밤양갱 악보에 맞도록 짜깁기했다. 이러한 작업은 흔히 인터넷 밈 세계에서 인간 악기, 음MAD 등으로 불린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동력이 드는 작업이다.
인터넷 밈은 하위문화에서 시작됐다. 하위문화는 주류 문화가 유통되는 전체 문화의 일부로, 전체 문화 속에서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작은 문화를 일컫는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문화가 막 생기던 시점만 하더라도 인터넷 밈은 디씨인사이드나 오늘의 유머, 웃긴 대학 등 색깔이 강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만 유통됐다. 그들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자생적인 문화를 만들고자 대중문화를 빌렸다. 이를 흔히 ‘전유(專有)’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인터넷 밈, ‘싱하형’만 봐도 알 수 있다. 싱하형은 영화 〈용쟁호투〉(1973)에서 이소룡이 원수를 죽인 뒤 울부짖는 순간을 정지해 가져다가 쓴 밈이다.
인터넷 밈은 대부분 기성 콘텐츠를 재가공해 탄생한다. 필름이나 비디오 등 아날로그 매체를 쓰던 시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엔 비디오나 필름의 극히 일부만 잘라 복제 가능한 파일로 저장하는 일이 힘들었다. 인터넷 환경에선 이것이 가능했기에 네티즌은 기성 콘텐츠의 일부를 잘라다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 환경에서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때만큼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에 그 한계를 인터넷 밈으로 보완했다. 점차 인터넷 속도가 빨라져 파일 전송 속도가 빨라지자 인터넷 밈은 이모티콘에 버금가는 감정 표현 수단이 되었다. 이를 ‘합성 소스’라고 부른다.
네티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합성 소스를 재료로 온갖 엉뚱한 놀이를 전개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놀이규칙이 생겼다. 이러한 규칙을 ‘기출변형’이라 한다. 그 규칙을 지키는 한에서 진행되는 놀이가 인터넷 밈이다. 그 핵심에는 공감 능력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밈 중 하나인 ‘커플 고양이’ 밈을 사례로 들어보자. 이 밈은 여러 표정을 가진 고양이와 거기에 덧입혀진 자막을 빌려 커플 간에 생길 수 있는 온갖 상황을 드러낸다. ‘데이트할 때 커플 특징’ 같은 상황을 정한 후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의 감정을 고양이로 대신해 드러낸다. 커플들은 이에 공감해 서로를 태그한다. 하이라이트는 댓글이다. 솔로인 네티즌이 자학 개그를 댓글로 다는 등 누구나 이 인터넷 밈을 통해 놀이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