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토크

고쳐 쓰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곰손들이 모여 만든 수리 문화

조그만 부품이 없어, 품질보증 기간이 지나 원치 않게 새 물건을 사야 할 때가 있다.
아까운 마음에 고쳐달라 서비스센터에 호소해 보지만 오히려 최신형 제품을 권유받곤 한다.
언제부턴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해 마음이 찝찝하다.
직접 고쳐 쓸 순 없을까?
고쳐 쓰는 권리, 수리권을 앞장서서 실행하는 곳
‘수리상점 곰손'에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 이수정  📷 황지현  🎬 신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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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를 생각하는 여섯 환경활동가의 뜨거운 실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인근 골목길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은 리페어 카페(Repair Cafe)이다. 뭐든 손으로 척척 만들어내는 이들을 ‘금손’이라 일컫는데, 이와 반대로 크고 둔탁한 곰손 같은 손재주의 소유자도 고쳐 쓰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환영한다는 뜻에서 ‘수리상점 곰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입장료 5천 원을 내면 이곳을 이용할 수 있고, 진행되는 수리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하면 물건을 직접 수리할 수 있다. 우산, 콘센트, 이어폰, 찢어진 옷 등 수리 가능한 물품의 스펙트럼도 넓다.

    2024년 2월 처음 문을 연 이곳은 일상생활기술을 알리고자 한 6명의 여성들이 모여 공동대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6명 모두 본업이 따로 있지만, 자원순환과 재활용에 대한 마음은 한마음이다. 각자 맡고 있는 수리 분야도 다르다. 아이폰 배터리 수리, 공구 사용법과 전기워크숍를 맡고 있는 강희영 공동대표는 책 《리페어 컬처》를 읽은 것을 계기로 수리상점 곰손을 개업하게 됐다며 그 과정을 소개했다.

    알짜(알맹이를 찾는 사람들)라는 환경모임에서 5년 전부터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환경캠페인을 벌여왔어요. 어느 날 환경모임에서 진행하던 독서 모임에서 《리페어 컬처》라는 책을 읽게 되었죠. 책을 읽어보니 이미 선진국에선 ‘수리권’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고, 리페어 카페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더라고요. 이참에 우리도 망원동에 리페어 카페를 만들어보자! 하고 결심하게 됐죠.

    수리권이란 사용하던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고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기존의 수리 절차를 떠올려보면, 수리 비용과 절차가 소비자의 선택보다는 제조사에 의해 결정돼 온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수리할 권리'를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2년 1월부터 가전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부착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며, 미국 50개 주 중 45곳은 소비자의 수리를 제조업체가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리페어 카페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모이자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운 좋게 망원동 인근에 상점을 열 만한 공간을 찾았고, 창고로 쓰이던 널찍한 지하실을 개조해 공간을 꾸렸다. 이들은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을 중고로 구입했다. 공간 한쪽엔 방문객들이 이어폰, 옷, 전선을 직접 수리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다른 한쪽엔 고장 난 물건을 리사이클링해 만든 액세서리와 중고제품을 진열해 방문객들이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사소한 부분까지도 자원순환의 가치를 철저히 지키고 있어요. 매장에 입장할 때 일회용품 반입을 금지하고 판매하고 있는 탄산음료도 재활용이 가능한 병 용기로 준비했죠. 공간을 꾸미는 과정에서도 환경에 해로운 일은 하고 싶진 않아 대부분 중고물품으로 구비했어요. 예외적으로 공조기만은 새것을 달았는데, 이것도 방문하는 분들의 건강을 생각해 결정한 거예요.

쓰고 버리는 사회를 해부하는 수리 수업

우리가 쓰는 물건 중에는 애초에 분해가 되지 않도록 디자인된 제품이 있는가 하면, 보증기간이 짧아서 혹은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처럼 수리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수리상점 곰손에서는 수리 방법을 직접 배울 수 있는 워크숍이 운영일(목~일)에 따라 1~2회 2회 열린다. 수업은 수리 분야와 수선 분야로 나뉜다. 수리 분야에선 전자제품, 우산, 콘센트, 아이폰 배터리 교체 등 다양한 워크숍이 열려왔다. 특히 우산 수리 수업은 전문 우산 수리 기술자를 초청해 강사양성과정을 별도로 진행했을 만큼 인기였다. 수선 분야에선 색색의 실과 바느질법이 발휘되는 재봉 수업과 금 간 도자기를 리폼해 꾸미는 킨츠키 공예 수업이 성황이었다. 수강생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며, 고쳐 쓰기가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법일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종종 자체적으로 수리하기 어려운 물품을 가져오면 수리상점 곰손이 대행해 전문 기술자에게 의뢰를 맡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뤄지는 활동들이 과연 환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폐기물을 줄인다고는 하지만 너무 사소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강희영 공동대표는 “이곳에서 이루어진 활동들이 결국엔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커질 수 있다”라고 답했다. 실제 워크숍을 거친 수강생들은 수리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배운 기술을 다른 수강생들에게 직접 가르치기도 하고, 수리권 보장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말이다.

수리 기술을 직접 배우다 보면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와 어떤 과정을 거쳐 사용되는지 자세히 알게 돼요. 어떤 에너지자원과 재료를 사용하고 실제 부품의 가격과 생산비용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말이죠. 사물의 전체를 들여다보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나와 환경을 연결해 포괄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자연히 수리권이 잘 보장된 제품을 찾게 되죠. 이 모든 과정은 환경운동으로 이어지고요. 고쳐 쓰려는 노력이 작지만 아주 중요한 한 조각인 셈이죠.

수리권을 통해 되찾은 연대의 힘

수리상점을 운영하는 데는 정서적 이유도 크게 작용한다. 옹기종기 모여 우산수리기술을 가진 70대 어르신이 예술에 가까운 솜씨로 물건을 고치는 모습이나, 재봉틀 강사의 솜씨 좋은 바느질로 에코백이 앞치마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리상점 곰손의 운영진들은 이렇듯 크고 작은 사람 간의 교류를 바라보면 잊힌 기술, 동네에 하나씩 있던 전파상을 되살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한다. 물건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키우는 수리 문화가 작은 물건 하나에도 이야기를 담아내고, 사람 사이의 인정을 되살리고 있는 것 아닐까. 강희영 공동대표는 결국 환경 운동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힘이라고 말한다.

사람들과의 연대의 가치가 좋아 수년간 이 일을 해왔어요. 함께 뭔가를 고치다 보면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죠. 그러한 협동의 힘이 작은 일부터 시작해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슈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데에 큰 힘이 돼요. 우리가 사비를 들여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매주 마라톤 회의를 하는 것도 그러한 연대의 힘이 좋아서예요.

전문 기술자가 아니기에 수리 워크숍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강사를 섭외하고, 공간을 운영하는 데에 아직은 경제적인 부침이 적지 않다. 하지만 6명의 곰손지기들은 수리상점 곰손의 활동이 수리권을 체계화하는 일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더 힘을 내보려고 한다. 다른 지역에 있는 리페어 카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한국은 2023년 ‘순환경제사회법’이 개정되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촉진법 20조에 들어가 있는 수리권에 대한 부분이 다소 미흡하다고 한다. 수리상점 곰손은 이를 더 구체적이고 체계화하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전국적으로 수리상점 곰손 같은 리페어 카페가 더 많아지고 활발히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수리 공간을 기점으로 수리권과 관련된, 더 넓게는 환경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시민의 힘으로 개정하고 현실화시키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