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칼럼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통한
조화로운 에너지 공급 체계 실현

균형 있고 조화로운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가 꼽힌다.
에너지 구성의 '마지막 단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온실 배출량이 가장 적은 화석연료에 해당하기 때문.
탄소 중립이 에너지 정책에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가스의 중요성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 수급 정책을 위해 필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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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한 조건

한국은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등 주력 수출 산업의 대부분이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에는 에너지 수입액이 약 2,172억 달러(약 300조 원)에 달했고, 가격이 다소 안정된 2023년에도 약 1,703억 달러(약 236조 원)를 기록해 각 전체 수입액의 29.7%와 26.9%를 차지했다. 동해 가스전 고갈 이후 국내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지 못해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총수입액의 25~30%를 에너지 수입에 사용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항상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즉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안보의 조건으로 “중단 없는 공급(Reliable Supply)”, “이용 가능성(Accessibility)”, “수용할 수 있는 가격(Affordability)”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공급(Sustainable Supply)”이 추가됐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이 있는데,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자원안보 진단체계의 대응력 지표가 좋은 참고 자료다.
진단체계 구상안의 대응력 지표는 크게 비상 대응력, 상시 대응력, 그리고 인프라 측면으로 나뉜다. 비상 대응력은 에너지 위기 발생 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자원개발률, 비축 물량, 비상시 반입 물량, 위기 대응 숙련도 등을 평가한다. 상시 대응력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으로, 수입원 다변화, 외교 및 국제협력, 자원 R&D 규모, 규제 대응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프라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 시설이나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지를 의미하며, 비상 대응 시스템 구축과 안정적인 인적자원 공급으로 평가한다.

탄소 중립 시대에 걸맞은 국가 에너지 안보 체제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안보 평가와 대비는 단일 에너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즉, 석유, 천연가스, 석탄, 재생 에너지 등 개별 에너지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평가 체계이다. 물론 개별 에너지원의 안보가 확보되면 전체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에너지원의 안보가 전체 에너지 시스템의 안보를 온전히 담보하지는 않는다. 또한 탄소 중립 시대를 위한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 통합이 진행될 것이며 현재도 천연가스와 전력 시장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전체 에너지 시스템 측면에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변화(Diversification)와 유연성(Flexibility)을 언급하고 있다. 즉, 가능한 한 여러 에너지원으로 전체 에너지 시스템을 구성하고, 시스템 내에서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할 때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은 이러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 결과 석유 37.7%, 석탄 25.0%, 천연가스 19.5%, 원자력 12.3%, 신재생 5.5%로 에너지원 구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에너지 부문의 탈탄소화를 추진하며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 유리한 천혜의 환경과 견고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재생 에너지 발전 비용은 화석연료보다 높고,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탄소 중립 시대에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균형(Balance)과 조화(Harmony)이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 천연가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균형과 조화를 실현하는 에너지원, 천연가스

1978년 가스사업법 제정과 1983년 한국가스공사 설립, 1987년 수도권 첫 도시가스 공급 이후 천연가스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믹스 구성에서 마지막 단추 역할을 해왔다. 정책적으로 석유,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 공급 계획을 수립한 후 남은 부분을 천연가스로 채워온 것이다. 이는 천연가스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인프라를 포함한 총공급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유연성이 높다는 이유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천연가스가 액화와 재기화, 수송에 필요한 설비와 인프라로 인해 제약 조건이 높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인프라가 완비된 상황에서는 유연성이 높은 에너지원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생산자와 구매자를 특정하지 않고 여러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중계하는 포트폴리오 사업자들이 늘어나면서, LNG를 포함한 천연가스 시장의 유연성이 더욱 확대됐다.
무엇보다도 기동 소요 시간이 짧은 가스터빈 발전의 특성에 의해 천연가스 화력발전은 전력 시장에서 중요한 유연성 자원으로서 상당 기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재생 에너지 발전의 간헐성과 원자력 발전의 경직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해 두 발전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돕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는 석탄이나 원자력보다는 비싸지만, 풍력이나 수소보다는 저렴한 에너지원이며, 전국에 공급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또한 화석연료 중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어 탄소 중립 시대에서도 오랜 시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천연가스의 중요성을 반영한 새로운 장기 수급계획의 필요성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이러한 천연가스의 중요도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을까? 현재 정부는 제16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 수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15차 수급계획에서 한국의 천연가스 기준 수요가 2023년 4,509만 톤에서 2036년 3,766만 톤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으며, 특히 발전용 수요가 이 기간 1,180만 톤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민간 발전회사의 직수입 물량을 제외한 우리나라 천연가스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가스공사는 이러한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의 전망을 기준으로 도입 계획을 수립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천연가스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하에서는 유리한 조건으로 대규모 물량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균형 있고 조화로운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한국이 처한 에너지 수급 조건과 탄소 중립 목표 그리고 에너지 안보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도 중요한 천연가스의 역할을 신중하게 반영해 제16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