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전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팔방미인의 도시, 대전

첨단 과학 기술과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사통팔달의 도시, 대한민국의 과학 수도 대전을 아이들과 함께 돌아봤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심 안팎의 명소와 더불어 도시재생을 통해 발현된 뉴트로 열풍의 현장까지,
꿀잼 도시 대전을 재발견해 보자.

📝&📷 박준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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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는 안녕, 피톤치드 가득한 산림욕

이른 토요일 아침, 맑은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 이곳은 대전 서구에 위치한 장태산자연휴양림이다. 1991년 전국 최초 민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었던 이곳은 2002년 대전시에서 인수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휴양림에 들어서자 가지런하고도 빽빽하게 들어선 메타세쿼이아가 우리를 반긴다. ‘살아 있는 화석 식물’이란 별명을 가진 메타세쿼이아는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식물 중 하나다. 1억 년 전의 공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온 나무라는 설명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잠시, 하늘 높게 뻗은 6,300여 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선사하는 웅장함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2018년 대통령 내외가 여름 휴가지로 다녀가며 더욱 유명해진 장태산자연휴양림을 본격적으로 만끽하기 위해 관리사무소 앞에서 출발하는 ‘대통령 방문코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2.5km의 산책코스는 걸음이 느린 아이들도 함께 산림욕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었고, 메타세콰이아와 더불어 밤나무와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등 천혜의 자연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했다. 숲속 하늘을 거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는 15m 높이의 ‘스카이웨이’와 높이 27m의 스카이타워에서 만끽하는 산림욕은 장태산자연휴양림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휴양림을 가로지르는 길이 140m의 출렁다리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 어른에게도 짜릿한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줬다.

뉴트로 감성의 중심, 소제동

장태산자연휴양림의 숲 내음을 한가득 머금은 우리가 향한 곳은 대전역이다. 과학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이견이 없는 대전은 사실 철도산업의 메카다. 식민과 수탈의 도구였다는 안타까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가져온 변화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선다. 시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풍속을 변화시킨 새로운 문명이자 대전이 근대 도시로 발돋움하는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기 때문. 아이들에게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 공사와 함께 탄생한 대전역의 역사를 설명하며 대전역의 동광장으로 내려왔다.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 한국철도공사(KORAIL)와 국가철도공단(KR) 본사를 뒤로 하고 사거리를 건너 좁은 골목에 접어들자 방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낡은 옛 관사촌이라는 수식어는 진부한 옛말이 되어버린 힙플레이스 소제동이다. 동구에 위치한 소제동은 본래 아름다운 호수, ‘소제호(蘇堤湖)’가 있던 자리로, 1927년 호수를 매립하고 철도 관료들과 기술자들을 위한 관사촌이 들어섰었다. 관사 건물은 당초 100여 채 이상이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다수가 사라졌고, 남아있던 40여 채는 해방 이후 지역 주민에게 불하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 소제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이른바 '대전의 익선동'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소제동에는 낡고 익숙한 것에 새로운 감성을 입힌 뉴트로 감성이 흐른다. 이색 경험을 향유하고 싶은 젊은 세대부터 복고에 향수를 느끼는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소제동의 좁은 골목길을 소요했다. 아기자기한 벽화 사이사이로 자리한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제동을 가로지르는 대동천은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니, 이듬해 봄 꽃놀이는 이곳 소제동에서 만끽하자며 네 식구가 함께 웃음꽃을 틔웠다.

밀가루 두 포대의 기적, 성심당

이제 대전의 원도심을 탐닉할 차례다. 대전역 서광장을 가로질러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과일과 채소 등 식자재뿐 아니라 의류와 잡화 등 다양한 장을 보러 모인 시민들 틈에서 우린 먹거리를 찾아 헤맸다. 먹음직스러운 떡볶이와 튀김, 호떡, 국밥을 뒤로하고 우리가 발들인 곳은 국수 메뉴를 파는 작은 식당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피폐했던 1950년대에 철도 운송의 주요 거점이었던 대전역에 미군의 식량 원조로 수입한 밀가루가 모이며 빵, 떡볶이, 칼국수 등 밀가루 음식이 대전의 대표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설명을 곁들여 아이들에게 설명하며 도톰한 국수 가락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든든한 한 끼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시장을 벗어나 은행교를 건넜다. 소제동이 대전의 익선동이라면, 은행동은 대전의 명동과 같다. 즐비하게 늘어선 각종 상점과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 젊음의 열기까지, 서울의 명동과 무척 흡사한 은행동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중심 도로의 하늘을 뒤덮은 영상 아케이드 구조물, ‘스카이로드’이다. 거대한 구조물로 덮인 널찍한 도로를 가로질러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굉장한 인파와 함께 ‘성심당(聖心堂)’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더운 여름에도 굴하지 않는 성심당을 향한 여행객들의 열정에 감탄하며 골목을 벗어나자 흡사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듯한 형상의 대흥동 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실향민이었던 성심당의 창업주 고(故) 임길순 대표는 대흥동 성당 주임신부로부터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대전역 앞에서 찐빵 노점을 열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성심당이 되었다고 한다. 성심당의 기적적인 창업 신화를 곱씹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移行)

옛 충남도청사의 '대전근현대사전시관'과 옛 충청남도 관사촌 '테미오래(Temiorae)'는 대전 원도심 여행에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관광 명소다. 먼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에 현존하는 근대 관청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옛 충남도청사 건물은 1932년부터 약 80년간 도청의 기능을 수행했다.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며 현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대를 상징하는 독특한 건축 양식에 힘입어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등 다양한 작품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우리는 대전의 탄생과 성장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관을 관람한 우리는 근대문화탐방로를 따라 테미오래로 향했다. 테미오래는 옛 충청남도 도지사공관과 관사 건물이 밀집된 전국 유일의 행정관사촌이다. 충남도청이 이전하던 2012년까지 무려 40명이 넘는 도지사들이 머물렀던 도지사 공관은 6·25 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거처로도 사용되었다. 도청 이전 후 닫혀있던 이곳은 2019년 4월,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예술 힐링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옛 도지사 공관과 더불어 테미체험관, 테미놀이터, 테미메모리, 테미갤러리 등의 다양한 테마의 근현대전시관으로 재탄생한 관사를 둘러보며 느낀 즐거움은 대전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 수목원

우리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근원지로 불리는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을 방문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체험관을 관람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5시 30분, 관람 종료 시각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과학관을 못다 둘러본 아쉬움을 뒤로하곤 10분 거리의 한밭수목원으로 향했다. 대덕구 대청댐 물 문화관에서 시작하는 대청호 오백 리 길, 장동산림욕장에서 시작하는 계족산 황톳길과 더불어 걷기 좋은 길로 대전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서구의 한밭수목원은 엑스포시민광장을 중심으로 동원과 서원으로 구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인공 수목원이다.
나란히 손을 맞잡은 어린 남매와 함께 한밭수목원 동원의 은빛여울길을 걸으며 하루를 돌아봤다. 이른 아침의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시작으로 대전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원도심과 과학 수도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신도심을 넘나드는 도시여행. 아이들과 팔방미인의 도시 대전의 이모저모를 재잘거리며 노을이 붉게 물든 서원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