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양산

봄꽃 향기 가득한 곳
여기는 양산입니다

1년 365일 바쁠 순 없다. 하지만 봄이 시작될 때쯤이면 더없이 분주한 곳이 있다.
간절히 기다리던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꽃의 향기와 그 향기를 쫓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여행자의 마음이다.
소리 없는 계절의 변화를 봄축제로 변화시킨 경상남도 양산의 기찻길 옆 원동마을과 통도사를 찾았다.

📝&📷 임운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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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매화마을 순매원

강변을 달리는 기차 행은 얼마나 설렐까. 양산 원동면에는 낙동강 물줄기 따라 기찻길이 나 있다. 기차가 서는 원동역 주변에 만개한 매화가 꽃비처럼 흩날린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마음이 울컥한다.
매화마을로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을 먼저 떠올린다. 양산 원동매화마을은 광양 청매실농원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만의 매력이 있다. 낙동강과 기찻길이 어우러진 것. 시시때때로 지나가는 기차는 원동마을에서 봄을 잔뜩 실어 북쪽으로 실어 나른다.
원동면에서 매실(매화의 열매)을 재배한 것은 193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매실 재배에 적합한 곳을 물색하다가 이곳을 낙점한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매실 수요가 줄어들자, 재배면적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20여 년 전부터 매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금은 강변뿐만 아니라 인근 영포마을 산기슭까지 매실나무가 빼곡하다. 원동매화마을을 ‘순매원’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순매원이 원동면에서 가장 큰 매실 농장이기 때문이다.
원동매화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순매원 매실농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첫 번째 장소는 전망대가 설치된 곳으로 이른바 ‘S라인 철길’과 농원 전체가 넓게 펼쳐진다. 기차가 철길을 따라 마을을 향해 달려오자, 사람들은 “기차 온다”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동호회에서 출사를 나왔다는 한 남성은 스마트폰으로 기차 시각까지 확인해 가며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두 번째 장소는 전망대 맞은편에 있는 팔각정인데 낙동강을 좀 더 넓게 조망할 수 있으나 주변에 나무가 웃자라 첫 번째 장소만 못하다.
전망대에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봤다면 다음 순서는 매화를 좀 더 가까이 볼 차례. 비탈길을 따라 농원에 들어서면 매화향이 훈훈한 봄바람에 묻어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농원의 오솔길은 작업자들이 매실 수확을 위해 내놓은 길이라 잘 정리된 산책로가 아니다. 그래서 걷기에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시선이 꽃을 따라 이동하기 발아래 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농장 주인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닌데도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며 조붓한 길에 어린 편백을 심어두었다. 비록 아직은 키도 작고 품도 좁지만 먼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매화처럼 이 녀석들도 어느 순간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 양산시는 해마다 매화 개화 시기에 맞춰 3월 중순에 원동매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 낙동강과 기찻길을 마주한 원동 매화마을의 순매원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로 1421 원동순매실농원)

  • 순매원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걷는 탐매객

  • 순매원에는 백매가 가장 많다

  • 순매원의 만개한 홍매와 백매

  • 순매원을 찾은 부부 탐매객

양산 최고의 ‘뷰맛집’은 여기

양산 원동면에서는 순매원 이외에 화제리에 있는 임경대도 추천할 만하다. 임경대는 양산팔경에 이름을 올린 곳으로 낙동강이 시원스레 펼쳐져 ‘뷰맛집’으로 불린다. 게다가 순매원에서 임경대까지 가는 길은 양산에서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구간이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 도착한 임경대 일원. 산책로를 따라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청량감을 더한다. 나무데크가 놓인 산책로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가 완만해 몸이 불편한 여행자도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이동할 수 있다. 드디어 임경대가 있는 지점에 도착하자, 낙동강 서쪽 절벽 위에 자리한 임경대와 그 앞에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비상하는 용의 그림자처럼 구불구불 꼬리 치듯 흐르는 낙동강, 그 품은 넓고 길이는 한없다.
임경대에 있는 정자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자로 일명 고운대, 최공대라고 불린다. 이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최치원(857~?)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급제한 이후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정자 아래 절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랜 세월 탓에 확인할 수 없다. 대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시가 전한다.

  • 뷰맛집으로 불리는 임경대 (경남 양산시 원동로 285)

  •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 임경대 아래 낙동강변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 푸릇한 새순이 돋은 낙동강변

  • 임경대 가는 길목에 마주하는 시비

홍매의 그윽한 향기 속으로

낙동강의 유장한 품을 떠나 통도사에 도착했다. 순매원에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즐겼다면, 여기선 매화의 고매한 매력에 젖어 들 차례다. 통도사는 신라 자장율사(590∼658)가 선덕여왕 때인 646년에 창건한 고찰이다. 통도사가 자리한 곳은 양산 영축산(1,081m) 남쪽 기슭이다.
통도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약 1㎞ 되는 구간을 ‘무풍한송로’라 부른다. 소나무들이 마치 춤추듯 어우러져 걷는 내내 산림욕을 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계곡 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산책하기에 이만한 길도 없다. 일주문을 지나면 1,300여 년의 장구한 역사가 산세와 어우러져 특별한 풍광을 연출한다. 빛이 바랜 지 이미 오래된 단청과 나뭇결이 고스란히 드러난 처마, 기둥, 전각에서 세월의 무상함보다 고찰의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이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속성처럼 보인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답게 규모가 대단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직선거리로 200m가 넘는다. 이 긴 구간에 홍매화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바빠진다. 먼저 천왕문을 지나 영산전(보물)에 앞에 있는 만첩홍매에 닿았다.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색을 뽐내는 모습이 치명적이다. 이 매화의 이름은 영취매다. 영취는 통도사가 자리한 산의 이름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다는 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도에는 영취산이 영축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취’를 ‘축’으로 읽어 영축산이라 부른다. 영취매 수령은 100년이 훨씬 지났다.
영산전을 끼고 돌면 영각 처마 아래에 자장매가 반긴다. 자장매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중창 때마다 연분홍 꽃이 피었다고 한다. 어림잡아도 수령이 370년이 넘었으니 지난한 세월을 이겨낸 모습이 대견하다. 꽃잎 색으로만 보면 자장매가 영취매 보다 옅은 분홍색으로 보이지만, 홑겹이어서 그리 보일 뿐이다. 정초에 자장매 아래서 소원을 빌면 한 해 좋은 일들이 꽃길처럼 열리고, 연인들은 백년해로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탓일까, 요즘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통도사에는 나이 많은 홍매 세 그루 외에도 백매와 산수유가 꽃을 피운다. 영각 옆에 핀 산수유꽃이 단청과 어우러져 더욱 화사하다.
영취매와 자장매에 취했던 정신이 돌아오면 이제 통도사의 진짜 보물을 챙겨보자. 통도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국보)은 조선 왕릉 정자각에서나 볼 수 있는 건축구조를 띄고 있다. 그 덕분에 대웅전, 대방광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 적힌 현판이 동서남북 순으로 걸려 있다.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한 것이다. 이외에도 통도사에는 보물인 동종, 삼층석탑, 봉발탑, 국장생석표를 비롯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방유형문화재를 확인할 수 있다.

  • 영각과 어우러진 자장매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 약 1km 되는 ‘무풍한송로’

  • 영산전을 배경으로 만개한 영취매

  • 자장율사진영을 모신 해장보각의 현판

  • 통도사의 핵심 건물인 국보 대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