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의 그윽한 향기 속으로
낙동강의 유장한 품을 떠나 통도사에 도착했다. 순매원에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즐겼다면, 여기선 매화의 고매한 매력에 젖어 들 차례다. 통도사는 신라 자장율사(590∼658)가 선덕여왕 때인 646년에 창건한 고찰이다. 통도사가 자리한 곳은 양산 영축산(1,081m) 남쪽 기슭이다.
통도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약 1㎞ 되는 구간을 ‘무풍한송로’라 부른다. 소나무들이 마치 춤추듯 어우러져 걷는 내내 산림욕을 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계곡 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산책하기에 이만한 길도 없다. 일주문을 지나면 1,300여 년의 장구한 역사가 산세와 어우러져 특별한 풍광을 연출한다. 빛이 바랜 지 이미 오래된 단청과 나뭇결이 고스란히 드러난 처마, 기둥, 전각에서 세월의 무상함보다 고찰의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이니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속성처럼 보인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답게 규모가 대단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직선거리로 200m가 넘는다. 이 긴 구간에 홍매화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바빠진다. 먼저 천왕문을 지나 영산전(보물)에 앞에 있는 만첩홍매에 닿았다.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색을 뽐내는 모습이 치명적이다. 이 매화의 이름은 영취매다. 영취는 통도사가 자리한 산의 이름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다는 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도에는 영취산이 영축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취’를 ‘축’으로 읽어 영축산이라 부른다. 영취매 수령은 100년이 훨씬 지났다.
영산전을 끼고 돌면 영각 처마 아래에 자장매가 반긴다. 자장매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중창 때마다 연분홍 꽃이 피었다고 한다. 어림잡아도 수령이 370년이 넘었으니 지난한 세월을 이겨낸 모습이 대견하다. 꽃잎 색으로만 보면 자장매가 영취매 보다 옅은 분홍색으로 보이지만, 홑겹이어서 그리 보일 뿐이다. 정초에 자장매 아래서 소원을 빌면 한 해 좋은 일들이 꽃길처럼 열리고, 연인들은 백년해로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탓일까, 요즘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통도사에는 나이 많은 홍매 세 그루 외에도 백매와 산수유가 꽃을 피운다. 영각 옆에 핀 산수유꽃이 단청과 어우러져 더욱 화사하다.
영취매와 자장매에 취했던 정신이 돌아오면 이제 통도사의 진짜 보물을 챙겨보자. 통도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국보)은 조선 왕릉 정자각에서나 볼 수 있는 건축구조를 띄고 있다. 그 덕분에 대웅전, 대방광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 적힌 현판이 동서남북 순으로 걸려 있다.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한 것이다. 이외에도 통도사에는 보물인 동종, 삼층석탑, 봉발탑, 국장생석표를 비롯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방유형문화재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