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서울까지, 시내버스로 423km
부산에서 시내버스만 타고 환승하면서 서울까지 가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 도전은 단순히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대입 수능 시험이 끝나고 성인이 된 마지막 겨울방학, 저는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자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서울에서 시내버스만 타고 부산 여행’의 글을 보고는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이야 ‘부산-서울 시내버스’가 대중화되어서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후기가 많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 가는 글이 딱 하나 있었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시내버스로 이동하는 방법’은 아무 정보도 없었습니다. 막연해 보이는 이 도전은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제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 글의 정보를 바탕으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의 노선과 시간표를 찾아보았습니다. 경기도, 대전, 대구, 울산 등 대도시의 경우엔 대부분 같은 노선의 반대 방향으로 버스가 다니고 배차 간격도 짧아서 괜찮았지만, 중간중간 작은 마을을 지날 때는 노선도 다르고 배차 간격도 60분에서 하루 3대까지 다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냥 KTX 타고 갈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한번 시작했기에 끝까지 해본다는 생각으로 더욱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배차가 넓은 지역을 기준으로 시간대를 맞추고 여유시간을 더해가며 우리만의 노선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월 중순, 책가방만 하나 메고 출발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날, 부산에서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가 반이었고, 시간이 꼬여 줄줄이 버스를 놓칠까 하는 걱정이 반이었습니다. 그렇게 울산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 5시에 오는 울산 첫차를 타며 본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들뜬 마음으로 시내 풍경과 지역 경치를 보며 달렸습니다. 기점에서 종점까지, 버스에서 내리면 다음 버스를 타고 다시 기점에서 종점까지를 반복했습니다. 버스 한 대당 1시간~1시간 반은 기본이었고, 노선이 길거나 차가 막히는 시간대에는 2시간까지 걸리기도 했습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버스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모습과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먹는 그 지역의 간식거리가 열정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울산, 경주, 영천, 경산, 대구, 칠곡을 지나 구미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미 무을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버스 시간이 1시간 남아 마을회관 옆 식당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다 먹을 때쯤 타려 했던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그 버스는 하루 3대 지나가는 버스였기에 다음 버스는 3시간 후에 올 예정이었고, 계획된 경로를 가지 않는 다른 버스는 최소 1시간 후에야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급하게 계획을 수정하고 다른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회관 옆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정도 꼬였고 주변에 마땅히 할 것도 없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우리는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는 생각으로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다른 버스에 탑승했고, 수정된 계획으로 계속 버스를 옮겨가며 늦은 새벽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뿌듯함보다는 피곤함이 더 컸지만, 돌이켜보면 소중한 추억거리를 많이 쌓은 도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