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거대한 고목들이 반겨준다.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들이다. 첨단 수소연료전지차를 타고 쾌적하게 드라이브 왔지만 고목 앞을 걸으며 경외감을 느끼고,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고택과 잘 정돈된 토담, 돌담을 지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국의 미를 느낀다. 낮게 쌓은 돌담의 기와를 만지며 마을 어귀를 지날 때 디지털의 시대를 살지라도 인간은 결국 아날로그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350년을 묵묵히 살아온 고목들을, 7년 아니 70년 뒤에도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이 보고 만지고 그늘에서 뛰어놀며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400년을 관통하는 삶의 조화를 지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첨단 과학 기술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수소 원소를 기반으로 하는 수소경제가,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 운동이 과거의 유산을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서성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장소, 잠시 생각을 비우고 머물고 싶은 마을인 옻골마을을 떠나 대구의 명산 팔공산으로 간다. 대구에 와 본 적 없는 사람도 다들 한 번은 들어봤을 팔공산 케이블카이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시작했지만 마지막 정상 근방에서는 아찔한 마음이 든다. 팔공산 케이블카 정상 해발 800m에서 들이마시는 가을 공기의 상쾌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직 걸음이 익숙지 않은 어린 아기도, 몸이 불편해 등산이 무리인 어르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팔공산이기에 방문객들의 소원과 염원을 담은, 동전으로 뒤덮인 바위가 있나보다. 도저히 붙을 수 없는 곳에 붙어 있는 동전들이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니 의외로 간단한 트릭을 발견했다. 간절한 소원의 마음을 입으로 뱉어(?) 부린 마법으로 이해했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졌다. 거인의 팔근육의 핏줄같이 뻗어 나온 산줄기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황금빛 저녁이다. 오늘따라 아기와 함께한 가족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아기들은 오늘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나중에 자신과 꼭 닮은 아이와 또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그때도 팔공산의 식생이 변하지 않은 채 지금의 모습이면 좋겠다. 상쾌한 해발 800m의 공기를 똑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옻골마을의 아름드리 고목처럼, 수백 년이 지나도 시대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같은 경험을 선사해주기를. 첨단의 미래에 현재를 살아갈 우리 자녀들도 이 자연 앞에서는 우리와 동일하게 경외감을 느끼고 아날로그적 사고를 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