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수소차 타고 떠난
짧은 대구 탐방기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photographer하지홍

화려하게 장식된 꽃들 탓일까.
동대구역 앞의 커다란 꽃바구니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이 조형물이 담고 있는 섬뜩한 정보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하다.
형형색색 꽃이 피어 있는 화단 앞에는 커다란 전광판에 6년 298일의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다.
독일 베를린과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설치된 기후시계이다.
6년 298일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여유량을 시간으로 환산한 양이다. 이대로면 7년이 못 되어 여유량은 0이 되고,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은 1.5도 상승하게 된다. 기후학자들이 저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마지노선이다.
1.5도 선을 돌파하면 세계 인구 50%를 차지하는 적도 주변국은 인간 생존 한계온도를 초과하게 된다. 또한 여름에 북극 해빙은 없어지고, 아마존 열대 우림은 빠르게 파괴되고,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아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테인이 방출된다. 곧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겨우 6년 298일 남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직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수소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독자분들도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기후시계를 확인해보시라. 6년 298일보다 줄어들었다면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한다. 부디 동대구역을 방문한 9월 27일보다는 여유가 생겼기를.)
6년의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세상이 많다. 대구혁신도시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본사 방문을 서둘렀다. 신도시 느낌이 완연한 지역에 접어들면서 시야가 트이고 여유가 생겼다. 자전거 하나로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저 멀리 스키점프대같은 건물이 보인다. 대구는 눈이 잘 안 오니 스키점프대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혼자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가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한국가스공사 본사이다.
친환경 수소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소 공급이 필수이다. 그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기관이니만큼 본사 건물 곳곳에는 친환경 설비들이 눈에 띄었다. 스키점프대에 대한 이야기는 취소다. 태양광 발전 설비와 지열 시스템을 이용한 자체 에너지 조달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다만 9월 말의 청명하고 쾌적한 날씨에는 지열에너지 덕을 볼 필요가 없는 듯하다. 일 년 내내 온도가 일정한 지하수를 이용해 열교환을 하면 지하수 온도도 달라진다. 가을엔 지하수 온도를 유지해주는 땅속 요정들도 잠시 쉴 수 있겠다.
친환경 에너지를 다루는 기업의 친환경 용사 직원들도 결국 대한민국 직장인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커피의 마법으로 내일의 에너지를 빌려와서 오늘을 살아간다. 공사 본사 1층에도 어김없이 카페가 있다. 그럼 그렇지, 일회용품 어쩔 거야? 번뜩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일회용 컵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카페 빅핸즈는 다회용기 시스템인 레빗(Rebit)을 사용한다. 빅핸즈를 운영하는 단체인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은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레드리본군과는 달리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레빗 컵을 반환할 때 이 다회용컵을 사용함으로써 절약한 탄소의 양을 보여준다. 기후시계를 뒤로 돌리는 데 기여하면서 커피도 즐길 수 있는, 심지어 참 예쁜 (불투명 레빗에서 새로 나온 ‘크레이지’) 레빗 컵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음은 수소연료전지차 넥쏘 시승이다. 공사 본사를 나와 잠시 주행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공사 H2U 수소 충전소가 있다. 대단히 깨끗해서 역시 친환경 수소 충전소라고 생각했는데, 준공한 지 몇 달 안 된 충전소였다. 대구혁신도시 내 충전소로 인해 대구혁신도시에 근무하는 분들의 수소차 구입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는 것이 필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충전소 건설은 수소차 구입으로 이어지고, 수소차 보급의 확대는 또 다른 충전소 확충을 불러온다. 동시에 그레이수소가 더 친환경적인 블루수소, 그린수소로 바뀌면서 기후시계의 바늘을 거꾸로 돌릴 것이다.
충전소 2층에는 수소 홍보관이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홍보관에 들어서면 로봇이 안내를 해 준다. 움직임이 조금 굼뜬 것 같지만 그래도 친절하다. 단, 로봇은 알고 싶은 항목을 누르면 관련된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직접 알아보라고 안내해준다. 미래에도 공부는 직접 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필요한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있는 그런 일은 실현이 어려운 듯하다.
홍보관은 규모는 작지만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RFID 내장 큐브로 KOGAS에 관한 이야기도 보고, AR 체험을 해서 이메일로 영상을 보낼 수도 있다. 실제 사용되는 수소 충전 건과 동일한 모형으로 직접 충전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묵직한, 단단함이 느껴진다. 미래 사회의 모형까지 보고 나면 홍보관 체험은 끝난다. 대부분 홍보관이 그렇듯 초등학생 자녀들과 같이 방문하면 흥미롭게 관람하고 체험하며 미래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근방의 옻골마을로 드라이브가기로 했다. 시승한 넥쏘는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다. 특히 신호 대기 중의 고요함은 시동이 꺼진 것과 동일해서 출발할 때마다 소리 없이 강한 전기모터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며 속도를 맞추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아도 별다른 소리 없이 속도계 바늘만 올라간다. 집 근처에 충전소만 있으면 보조금 많이 주는 지금 구매하고 싶어진다.
경주 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거대한 고목들이 반겨준다.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들이다. 첨단 수소연료전지차를 타고 쾌적하게 드라이브 왔지만 고목 앞을 걸으며 경외감을 느끼고,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고택과 잘 정돈된 토담, 돌담을 지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국의 미를 느낀다. 낮게 쌓은 돌담의 기와를 만지며 마을 어귀를 지날 때 디지털의 시대를 살지라도 인간은 결국 아날로그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350년을 묵묵히 살아온 고목들을, 7년 아니 70년 뒤에도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이 보고 만지고 그늘에서 뛰어놀며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400년을 관통하는 삶의 조화를 지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첨단 과학 기술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수소 원소를 기반으로 하는 수소경제가,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 운동이 과거의 유산을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서성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장소, 잠시 생각을 비우고 머물고 싶은 마을인 옻골마을을 떠나 대구의 명산 팔공산으로 간다. 대구에 와 본 적 없는 사람도 다들 한 번은 들어봤을 팔공산 케이블카이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시작했지만 마지막 정상 근방에서는 아찔한 마음이 든다. 팔공산 케이블카 정상 해발 800m에서 들이마시는 가을 공기의 상쾌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직 걸음이 익숙지 않은 어린 아기도, 몸이 불편해 등산이 무리인 어르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팔공산이기에 방문객들의 소원과 염원을 담은, 동전으로 뒤덮인 바위가 있나보다. 도저히 붙을 수 없는 곳에 붙어 있는 동전들이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니 의외로 간단한 트릭을 발견했다. 간절한 소원의 마음을 입으로 뱉어(?) 부린 마법으로 이해했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졌다. 거인의 팔근육의 핏줄같이 뻗어 나온 산줄기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황금빛 저녁이다. 오늘따라 아기와 함께한 가족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아기들은 오늘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나중에 자신과 꼭 닮은 아이와 또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그때도 팔공산의 식생이 변하지 않은 채 지금의 모습이면 좋겠다. 상쾌한 해발 800m의 공기를 똑같이 공유하면 좋겠다. 옻골마을의 아름드리 고목처럼, 수백 년이 지나도 시대를 초월하여 모두에게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같은 경험을 선사해주기를. 첨단의 미래에 현재를 살아갈 우리 자녀들도 이 자연 앞에서는 우리와 동일하게 경외감을 느끼고 아날로그적 사고를 할 테니까 말이다.
오늘의 대구 여행 정리
동대구역 기후시계
동대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 편에 꽃바구니 모양을 한 기후시계가 보인다. 기후시계는 하단에 있다.
한국가스공사 본사·H2U 대구혁신도시 수소 충전소
대구혁신도시에는 한국가스공사 본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수소 충전소 자체 브랜드인 H2U 수소 충전소가 있다. 로봇이 안내하는 수소 충전소 2층 홍보관은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듯하다.
옻골마을
옻골마을은 경주 최씨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큰 나무와 토담, 돌담이 특징이다. 옻골마을 내 하나 밖에 없는 식당은 화요일에, 카페는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팔공산 케이블카
대구를 대표하는 팔공산. 10월 말 또는 11월 단풍철에 케이블카에 오르면 울긋불긋 단풍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웹진 <KOGAS> 추천 대구 여행지
수성못
대구 대표 관광지. 수성못을 중심으로 수성유원지가 조성돼 있다. 음악분수가 있어 야경명소이기도 하다.
앞산공원
대구에서 가장 큰 자연공원. 팔공산처럼 앞산공원에도 케이블카가 있어 대구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둘레길도 조성돼 있다.
대구수목원
2,000여종 이상의 식물이 심겨져 있다.
9월부터 1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일부 시설의 견학이 제한된다.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무료. 대구수목원 가까이에 제로 웨이스트 카페 그린그루브 본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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