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筆鋒繼走)

내 마음속 추억여행 1순위,
남미 여행

writer 수소사업운영처 수소인프라설계부
남영재 직원

군 시절 내내 답답했던 내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남미 여행에 대한 갈망이었다.
‘전역하면 꼭 여행 가야지’를 입에 달고 살았고, 남미 가이드북을 구매해
저녁마다 읽으며 ‘방구석 남미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전역 후 2019년 1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미여야 했던 이유
나는 항상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 ‘지금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에 대해 집중해왔다. 그러다 시간이 많은 대학 시절이 긴 기간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남미의 대자연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고, 바닥에서 잠을 자도 끄떡없을 만큼 건강한 20대 초반에 남미를 다녀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미를 선택했다. “엄마, 저 남미 가요. 비행기 표도 다 끊었어요.” 부모님이 허락해 주지 않을까 봐 표를 끊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취직하면 갚는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부모님께 250만 원을 대출해서, 모아두었던 250만 원까지 총 500만 원의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정말 꼼꼼히 여행을 준비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 진짜 왔구나’ 느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우유니 소금사막은 여행을 가기 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다녀온 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해가 뜨면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끝없는 사막과 하늘이 물에 비쳐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그리고 밤에는 우주가 나를 삼킬 듯한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아직도 쏟아질 것 같은 별과 은하수를 본 그 밤이 잊히지 않는다. 차에서 내려 사막 한가운데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리고 물에 비친 수없이 많은 별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같이 갔던 일행 모두 싸구려 포장마차 의자를 침대 삼아 누워 박효신의 ‘별 시’를 들으며 2시간이 넘게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래에는 추억이 담긴다고 했던가. 나는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날 밤 그 하늘이 생각이 난다.
페루 쿠스코
남미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물렀고, 떠나기 싫었던 도시다. 내가 쿠스코를 떠나기 싫었던 건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면, 유럽 중세시대와 잉카 제국 한가운데쯤의 공기가 느껴진다. 이 공기와 따뜻한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나는 처음으로 여행 일정을 변경했고, 무려 9일이나 쿠스코에 머물렀다. 쿠스코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 해가 지면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만드는 것처럼 가로등 불빛이 모여 온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낭만적인 파리의 비 오는 밤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밤마다 뒷동산에 올라,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던 그 몽환적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BTS의 인기
남미에서 정말 놀랐던 것 중 하나는 BTS의 인기였다. 남미 국가들의 도시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중앙 광장에서 BTS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도시 가게에도 BTS 모자가 걸려있고, 길을 지나다니다 보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일이 정말 많다. 그 순간만큼은 BTS가 된 것처럼 사진을 찍어주며 연예인의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행복을 만나는 길이 계획과 다를지라도
남미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여행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막에 내린 3년 만의 비 때문에 홍수가 나 공항에 갇히기도 했고, 국경 넘어 시위대에 막혀 음식 없이 하루 넘게 도로 위에서 버틴 적도 있다. 비행기를 놓쳤을 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날들은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공항에 갇혔을 때 만났던 친구들은 남은 여행 전부를 동행하는 인연이 되었고, 시위대에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불안에 떨며 전화했던 대사관에 여행 마지막 날 초대를 받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수행해내야 했던 내 삶의 태도에 여유와 너그러움이 함께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때 사진을 뒤적거리며 낄낄대는 나를 보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그때의 공기와 온도를 다시 느끼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꼭 다시 찾아가 설렘을 또 한번 느껴보고 싶다.
다음호 필봉계주(筆鋒繼走)의 주인공은 해외사업운영처 북방사업부 박소민 직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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