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녹색은 위대하다
들풀부터 그린수소까지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수소는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활용까지는 비용이 든다
수소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에너지원이다. 연소 시 1g당 143kJ라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졌는데 이는 기존 화석연료보다 3~4배나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수소는 대단히 가볍다보니 같은 질량일 때 화석연료에 비해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기존 연료보다 낮은 것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수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압축하고 냉각하는 등의 추가적인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즉 수소의 활용은 근본적으로 계속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그럼에도 수소를 활용한 경제 시스템의 청사진을 그리는 이유는 일단 생산된 수소는 청정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수소는 연소하더라도 수증기만 생성되는데 심지어 이를 이용하는 수소연료전지 전기 자동차는 오히려 공기를 정화하는 것을 장점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수소는 사실 화석연료와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화석연료는 말 그대로 묻혀있는 연료를 직접 얻는다. 석탄도, 석유도, 천연가스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도 광산에서 얻는다. 그러나 수소는 어딘가 저장된 곳에서 채굴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는 지구에선 수소 분자의 형태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단히 가벼운 기체이자 높은 반응성 때문이다.
수소는 생산이 필요한 ‘에너지 전달자’이다
지구의 그 흔한 물도 수소의 산화물이고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많은 탄소 화합물들이 수소를 가지고 있지만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수소를 뽑아내야 한다. 즉 수소는 그대로 채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높은 효율의 에너지를 수송/전달해서 청정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에너지 전달자’에 더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소를 뽑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소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의 친환경성을 이야기할 때 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런 자동차의 운행 과정이 깨끗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소를 얻는 과정이 정말 친환경적이었는지, 전기차를 충전하기 위한 전기는 결국 화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수소가 청정 에너지원임을 언급할 때 ‘일단’ 생산된 수소라고 단서를 단 것이 이 때문이다. 만약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이 친환경적이지 않다면 수소 중심의 수소경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모습과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소의 세 가지 색 - 그레이, 블루, 그린
수소는 생산하는 방식에 따라 색으로 구분한다.
때로는 8~9가지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크게 3가지 그레이, 블루, 그린은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 특히 천연가스를 리폼해서 만들어지는(스팀 개질 공정 – SMR) 수소는 그레이수소라고 한다. 그레이수소는 수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수소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블루/그린수소만 이용하도록 제한한다면 인프라 구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요 없는 기술 개발에는 자본이 몰리지 않는 법. 아직은 그레이수소를 통해서만 산업적으로 수소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린수소는 수소경제의 핵심으로, 결국 이뤄내야 하는 지향점이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만을 이용하여 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만든 수소로 친환경적이다. 물에서 수소를 얻어내는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태양광, 풍력, 조력, 파력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에 탄소 배출이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재생에너지의 생산 단가가 높고 전기분해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 연구 중인 방식이기도 하다. 현재 그린수소 생산량은 전체 수소 생산량의 0.1% 미만이다. 그레이수소 방식에서 그린수소 방식으로 한 번에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산업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낮은 생산 단가와 안정적인 생산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 중인 블루수소는 그레이수소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며 서서히 그린수소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방식이다. 그레이수소처럼 천연가스의 리폼(SMR)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되,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를 포집(CCS)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린수소로 가기 전 거쳐 갈 기술로, 현재 활발하게 연구 중에 있다.
그린수소,
왜 녹색으로 지칭했을까?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적 생산 방식의 수소를 왜 녹색으로 지칭했을까? 친환경의 대명사로 녹색을 사용했기에 그린수소가 친환경 수소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왜 녹색이 ‘환경’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식물 때문이다.
식물의 잎은 녹색이며 이는 자연의 대명사이다. 식물의 잎이 녹색인 이유는 엽록체 때문이다. 엽록체는 광합성이 일어나는 장소로 빛을 통해 영양분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엽록체에는 빛 에너지를 전자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색소인 엽록소가 있는데, 엽록소는 녹색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대로 반사해버린다. 그래서 우리 눈에 녹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인류는 아직 인공적으로 광합성을 일으키는 엽록체와 같은 장치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 장치가 있다면 햇빛이 쏟아지는 곳에 물과 이산화탄소만 공급하면 당분이 마구 만들어 질테니 식량 문제도 해결되고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길가다 흔히 보게 되는, 존재도 모르고 부지불식간에 밟고 지나가는 잡초들도 다 할 수 있는 광합성을 아직 인류는 인공적으로 하지 못하며 심지어 그 원리를 완전히 밝혀내지도 못했다.
광합성으로 생명을 있게 한 빛이
환경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린수소의 이름에 붙은 녹색은 자연, 환경, 식물을 의미했겠지만 더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광합성은 빛을 받아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과 산소로 만드는 과정이지만 그 원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파장의 빛을 받으면 엽록소를 중심으로 한 안테나가 그 빛 입자를 흡수해서 전자를 들뜨게 한다.
이 고에너지 전자는 일련의 회로를 지나가며 수소 이온의 농도 차이를 만들어내고, 물의 높이차이로 물레방아를 돌리듯이 이 수소 이온의 농도 차이로 일종의 ‘풍차’를 돌리면서 에너지원인 ATP를 합성한다. 이 에너지원으로 당을 합성하는 것이다. 이때 빛을 이용해서 전자를 들뜨게 하고 그 들뜬 에너지로 분자의 반응을 기계적으로 매개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린수소의 생산방식에서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를 이용한 전기분해 대신 빛을 이용해서 직접 물을 광분해하면 어떨까? 그러나 광촉매는 보통 효율이 낮고 금속 촉매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환경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최근 국내 연구팀에 의한 비금속 기반의 질화 탄소 광촉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금속을 사용하지 않아 유해성도 낮고 비용도 저렴한 장점은 물론 기존의 질화 탄소 광촉매 방식보다 수소 생산 성능이 10배 이상 높아지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빛을 이용한 광촉매 방식이 그린수소 상용화를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광합성을 통해 온 지구의 모든 생명을 있게 하고 수십억 년을 먹여 살린 빛이 그린수소 생산방식을 통해 지구의 환경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저 빛”이라는 말은 인터넷 밈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빛을 지칭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오, 빛은 그저 빛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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