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심리학
"아야!"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돼 요 며칠 야근을 했더니 허리가 뻐근했는데, 의자에 앉아있다 일어서자 갑자기 찌릿한 통증이 밀려온다. 허리에 손을 얹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으니 옆에 있던 팀원들이 와서 걱정해준다. 다행히 통증은 곧 사라졌지만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이러다 허리 디스크(정식 명칭: 추간판 탈출증) 생기는 거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퇴근길에 바로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받고 나서 의사 선생님 내려준 처방은 바로 운동! 아직 외관상 큰 이상은 없지만, 과체중에 근육량도 너무 부족해 이대로 두면 척추가 오롯이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결국 디스크가 터질 위험이 높단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운동하라고. 그러고 보니 정말 땀 흘리며 운동한 기억이 최근은커녕 요 몇 년 새를 되짚어 봐도 없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이참에 정말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그런데, 무슨 운동이 좋을까?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최초의 뇌와 운동
사실 머리만 쓰면서 살아도 될 것 같은 디지털 시대에 운동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하지만 생명체에 최초의 뇌가 생긴 이유가 움직임을 정교화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움직이는 동물은 대부분 뇌(또는 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중추신경계)가 있는 반면, 움직이지 않는 식물은 뇌가 없다. 또, 산호같이 운동성이 없는 하등 동물도 중추신경계가 없다. 우리에게 가장 큰 교훈을 주는 동물은 바로 멍게다. 멍게는 빛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신경계를 가진 올챙이 같은 형태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멍게는 정착할 표면을 찾아서 몸을 부착시키고 나면 즉시 신경계를 흡수해 제거한 채로 남은 평생을 산다.
두 발 걷기와 인류의 시작
약 60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최초의 호미닌, 즉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분기한 첫 번째 종으로 구분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큰 두뇌, 불이나 도구의 사용, 언어능력 같은 것들이 아니라 바로 두 발 걷기 능력 때문이다. 사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현생 침팬지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두 종의 골반 뼈와 대퇴골은 확연하게 다르다. 인류의 선조의 선조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분명하게 두 발 걷기를 했던 증거를 화석으로 남겼다. 그 후 수백만 년이 흐르고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는 이름부터 '곧선사람(또는 직립원인)'이다. 뇌 용량이 현생인류에 근접한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욱 완전한 형태의 두 발걷기 능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집단사냥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호모 에렉투스가 두발로 걷는 것뿐만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에도 능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장거리 달리기 선수
인간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데 적응한 대부분의 영장류보다는 단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지만, 토끼, 가젤 같은 네 발 달린 동물들에 비해서는 느린 편이다. 이들을 잡아먹는 치타나 사자 같은 육식동물의 단거리 달리기 속도와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다. 총이나 활도 없던시절, 인류의 조상은 어떻게 네 발 달린 동물들을 사냥했을까? 아직까지 전통적인 사냥과 수렵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이들의 사냥은 길게는 몇 날며칠에 걸쳐 이뤄진다. 이들은 사냥감의 발자취를 좇아 뛰고 또 뛴다. 사냥감의 대부분은 단거리 달리기에 능하지만 오랫동안 달리지는 못한다. 인간은 달리기를 할 때 유산소 호흡을 하므로 오랫동안 뛸 수 있다. 사냥꾼들은 달리고 또 달려서 결국 사냥감이 지쳐 더이상 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를 노린다. 약200만 년 전에 시작된 장거리 달리기는 우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가지 생리적, 또 해부학적 증거는 인간이 호모 속으로 진화한 이후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장거리 달리기 능력도 함께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모여 있는 헬스장에 가보면, 러닝머신이 가장 인기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사람들 가운데 단거리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다소 느리더라도 한두 시간쯤은 거뜬히 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도구 사용과 던지기
혹시 당신이 침팬지나 고릴라와 운동경기로 겨루게 될 일이 생긴다면, 씨름이나 레슬링은 피하는 게 좋다. 대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마라톤이라면 승산이있다. 만약 침팬지 친구가 달리기는 딱 질색이라고 거절한다면 투포환을 제안할 것을 추천한다. 녀석도 동그란 공을 멀리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경기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무조건 이긴 경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냥을 위해 장거리 달리기에 알맞은 신체적 특성이 오랜 세월 진화한 것처럼, 인간의 몸은 던지기에도 해부학적으로 적응돼 있다. 이는 인간과 계통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촌인 침팬지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형질이다. 침팬지를 포함한 일부 영장류가 가끔 주위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지만, 인간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던질 수는 없다. 이는 우리 팔이 해부학적 구조로 볼 때 던지기에 적합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던지기'는 어린아이들의 발달과정 중 하나다. 던지기 욕구가 강한 아이들 중에는 남자아이들이 많다. 던지기 능력은 아마도 사냥을 위해 진화한 듯하다. 인류는 처음엔 돌을, 나중에는 창을 던져 대형 동물들도 사냥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냥할 일이 없어지자 던지기 욕구를 가진 인간은 공을 던지기 시작한다. 야구와 농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 중 하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스포츠가 다른 동물들의 구애 의식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야구, 축구, 체스, 컬링 같은 다양한 스포츠는 동물들의 생물학적 구애 의식처럼 고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가 선수의 특정 능력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 운을 배제하고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게임 룰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관중들에게 정보가 투명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짝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것에는 수긍이간다. 하지만 스포츠는 이성 간에 짝 선택뿐만 아니라 집단 내부의 결속과 단결, 또는 리더십이나 팔로워십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발명된 장치이기도 하다.
러너스 하이
러너스 하이는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30분 넘게 달리게 되면 행복감이 밀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설마 하겠지만, 이 느낌이 얼마나 강력한지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할 정도라고 한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게 되면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고 피로가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 기분이 든다. 정말 믿지 못하겠다고? 그냥 운동하라고 하는 소리 아니냐고? 러너스 하이는 심리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신체 생리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운동을 하면 뇌는 우리 몸이 고통을 잊고 오랫동안 달릴 수 있도록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그리고 이 효과는 감정과 쾌감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전두엽과 변연계에서 유의미하게 관찰되었다. 러너스 하이는 아마도 우리 선조들이 장시간 사냥을 위해 달리면서 함께 진화한 뇌의 특성일 것으로 추측된다. 엔도르핀의 진통 효과와 쾌감으로 오랫동안 달릴 수 있었던 선조들만이 저녁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러너스 하이는 꼭 달리기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수영, 사이클, 야구, 축구 등 지구력과 유산소 호흡을 요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서든 경험할 수 있다. 못 믿겠거든 한 번 해보시라.
스포츠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영화 셋
뚜르드 프랑스: 기적의 레이스
프랑수아는 어린 시절, 사이클 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인 뚜르드 프랑스 대회 출전을 꿈꾸던 선수였지만 현재는 자전거 판매회사에서 일한다. 그에게 대회는 못 이룬 꿈이 됐지만 우연한 기회로 스텝으로 참가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상황은 꼬여 회사에서도 해고되고 가족마저 자신을 버린 상황. 모든 걸 잃은 그는 마지막 바람을 담아, 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선수들보다 먼저 21개 구간을 완주하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친다.
4등
실력은 뛰어나지만 대회만 나가면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 선수 준호는 1등에 집착하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국가대표 출신의 새로운 수영 코치를 만나게 된다. 대회 우승은 물론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 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코치는 어쩐 일인지 준호를 연습시킬 마음이 없는 듯 보여 준호는 불안하다. 하지만 대회 당일, 준호는 1등과 0.02초 차이로 첫 은메달을 목에 거는데,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블라인드 사이드
불운한 가정에서 태어나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커가던 마이클 오어. 건장한체격과 남다른 운동 신경을 눈여겨본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상류 사립학교에 진학하지만 성적 미달로 운동은 시작할 수도 없게 된다. 급기야 마지막 위탁가정에서조차 머물 수 없게 된 마이클. 방황하는 그를 발견한 리 앤은 그를 보살피며 보호자를 자처한다. 마이클은 이 가정에 뿌리내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