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스위스 알프스에서는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에 머물며 아침을 맞을 것을 권한다. 새벽녘 어렴풋이 눈을 뜨면 산등성이로 별과 달이 내려앉고, 아이거 봉우리가 마을을 응시하며 하얀 거인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린델발트, 휘르스트를 연결하는 산과 길목에서는 스릴과 감동의 액티비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아이거 봉우리 배경의 산악 마을
그린델발트는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를 등지고 들어선 마을이다. 아이거를 배경으로 등반가들의 도전과 사랑을 담아낸 산악 영화가 바로 [노스페이스]다. 눈 덮인 봉우리 아래로는 세모 모양의 샬레 가옥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봉우리를 연모했던 산악인들과 각종 액티비티의 모험담은 나무 지붕을 스치는 바람에 포근하게 뒤엉킨다. 그린델발트 일대는 봄, 가을이면 트레킹, 겨울이면 스키천국으로 변신한다. 거리의 상점 역시 레포츠 마니아를 위한 용품들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전율을 좇는 이방인들은 그린델발트에서 자전거를 타고 인터라켄까지 질주하기도 한다. 빙하가 녹은 뤼취넨 계곡에는 래프팅 마니아들이 몰려든다. 가슴 서늘한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그린델발트 인근의 마르마르브루후 협곡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 내리꽂힌 협곡 사이에는 120m 높이의 점프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협곡 사이에서 뛰어내리는 점프는 '캐니언 점프'로 일컬어지며, 아래로 급강하한 뒤 매달린 줄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협곡 사이를 가로지른다. 서약서에는 '엄마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모른다'는 내용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적혀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패러글라이딩 촬영지
그린델발트에서 연결되는 휘르스트는 산악지대의 액티비티가 한데 모인 곳이다. 휘르스트를 향하는 곤돌라 아래 정경은 계절의 흐름과 초록의 알프스가 담겨 있다. 샬레풍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가운데 산악열차들이 마을을 에워싸며 고즈넉하게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곤돌라 종착점인 해발 2,168m의 휘르스트역에는 하루 묵을 산장이 있고, 등산화도 빌릴 수 있으며, 산장 앞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휘르스트역 정상에는 이 일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출발 포인트가 자리 잡았다. 해발 2,000m 넘는 곳에서 활강해 수천m 설산 속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은 인터라켄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패러글라이딩과는 떨림이 다르다. 휘르스트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배경으로도 나왔다. 드라마 속 패러글라이딩 장면을 촬영했던 알프스 명소가 바로 휘르스트다. 윤세리(손예진 분)가 봉우리 사이로 활강하는 장면과 리정혁(현빈 분)과의 마지막 재회가 설산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드라마의 흔적은 알프스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린델발트 아래 호수마을 이젤발트는 리정혁이 호숫가 선착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장소로 선착장일대는 마을 아이들의 다이빙 명소이기도 하다. 튠 호숫가 시그리스힐의 출렁다리는 윤세리와 리정혁이 조우하는 장소로 나온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호수마을 이젤발트
↑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휘르스트역 정상 패러글라이딩
↑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휘르스트역 정상
↑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휘르스트역 정상
설경 감상하며 바흐알프 호수 트레킹
휘르스트역에서는 바흐알프 호수까지 트레킹 코스가 펼쳐진다. 베르너 오버란트 알프스의 산과 마을에는 70여 개, 200km의 트레킹 루트가 흩어져 있다. 그중 그린델발트 트레킹의 백미는 바흐알프 호수까지걷는 길이다. 산행길은 키 작은 풀과 야생화로 가득 채워진다. 이곳은 낮은 평균 기온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 아득한 풀밭은 알프스의 젖소들에게는 귀한 터전이 됐다. 바흐알프 호수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에는 족히 5m는 됨직한 나무 기둥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다. 눈이 쌓일 때를 대비해 길을 표시하려고 꼽아놓은 것인데 높이를 보면 이곳의 적설량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왕복 3시간가량인 트레킹은 설산을 담아낸 바흐알프 호수를 만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갈 길을 멈추고 호수의 정경에 넋을 잃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봄, 가을 트레킹을 즐겼던 일부 코스는 눈이 내리면 스키 슬로프로 바뀐다. 휘르스트 일대는 보더들의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 12월 시작되는 이곳 스키. 보드 시즌은 4월까지 이어진다.
내리막길, 빙하 위 즐기는 이색 체험
휘르스트 산행의 재밋거리는 하산길 곳곳에 숨어 있다. 휘르스트역에서 슈렉펠트까지는 휘르스트 플라이어를 타고 케이블에 매달려 800m거리를 시속 84km로 하강할 수 있다. 3륜 마운틴카트와 자전거로 그린델발트까지 내리막길을 1시간가량 유유자적 달리는 것도 흥미롭다. 소가 풀을 뜯고 방울 소리가 들리는 알프스의 전원마을이 바이크 옆으로 느리게 흘러간다. 오솔길을 따라 알프스 마을을 달리는 기분은 '중독의 재미'를 안겨준다. 그린델발트에서 산악열차로 이동하면 여름, 가을에도 빙하에서 독특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공간이 숨어 있다. 융프라우요흐 정상에 펼쳐진 알레치 빙하는 총 22km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돼 있다. 빙하에서 진행되는 진귀한 체험은 빙하 하이킹이다. 해발 3,000m 이상 고지에서 묀히요흐 산장까지 빙하 위를 걸어서 산장에 도착하면 초대형 마운틴커피를 음미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발이 빙하에 푹푹 빠지고, 심장 박동이 높아질수록 시원하고 짜릿한 하이킹은 전율로 다가선다. 빙하 하이킹 초입의 스노우펀 지역에서는 스키, 눈썰매 등 계절을 뛰어넘는 빙하 위 레포츠가 진행된다. 빙하 위에 외줄을 묶어 200m가량 날아보는 짚라인 역시 신선한 쾌감을 전해준다.
지구를 생각하는 스위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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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투기 금지
그린델발트와 휘르스트의 트레킹 코스를 걷다 보면 비닐봉지, 담배꽁초 등을 발견하기 힘들다. 역 앞의 지정된 장소가 아니면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흡연을 하지 않는 것이 두루 정착돼 있다. 스위스의 친환경 이미지는 이곳 주민들의 노력과 습관에서 출발한다. 외지인들도 이런 친환경 일상에 함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환경을 고려한 시설물 설치
스위스 알프스의 곤돌라와 액티비티 시설들은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돼 있다. 설치물들은 기존의 산림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곤돌라 기둥 하나를 세울 때도 환경을 고려한 점이 돋보인다. 모든 시설물은 친환경 테스트를 통과해야 운영이 가능한 점 등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
건강과 자연을 위한 전자파 차단
스위스 사람들은 휴대폰 전자파를 공해로 간주하며 무분별한 전자파에 대한 경계심도 높다. 수면 중에는 와이파이를 끄거나 전화기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스위스 곳곳에서 5G기지국 설치를 반대하는 시위까지 열렸다. 스위스 알프스에서는 잠드는 시간만이라도 전자파를 멀리하는 친환경 습관에 동참해 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