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
계속되는 주문, A는 고객들의 주문을 사장에게 보고한다. 사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주문받은 상품들을 준비한다. 매년 늘어나는 주문 건수, 한번 맛을 본 고객들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 사장은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한정된수 량의 상품만 판매하기에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고객도 생긴다. 그래서 상품이 나올 시기가 되면 고객들로부터 먼저 문의가 오기도 한다. 때를 놓치면 다음 상품이 준비되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글 강원지역본부 김준성 주임]
영업사원 A의 은밀한 영업 방식
A가 하는 일은 얼핏 간단해 보인다. 단 한 번만이라도 고객이 상품을 사게 만드는 것. 상품을 한 번이라도 맛본 고객들은 그황홀함을 잊지 못하고 이내 먼저 상품을 찾게 된다. 때문에 이후로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품이 팔린다. 하지만 검증되지도, 인터넷이나 정해진 사업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판매되지도 않는 상품에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A는 지인들에게 먼저 자연스럽게 상품을 권했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 가 기회를 봐서 은밀히 상품을 권해본다. 첫 시도에 상품에 손을 대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바로 구매하지 않는다. 이럴 때 절대로 두 번, 세 번 권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것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다. 절대로 강권하지 않고 지나가듯이 자연스럽게, 상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오게 되어있다. 다음에 있을 더욱 완벽한 기회를 위하여 일보 후퇴.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한 번 더. 이때 첫 시도에 상품을 맛봤던 고객들이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이 옆에서 자연스럽게 한마디 거들어 줄 수 있도록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 직접 상품을 접해본 고객이 거들어주는 한마디는 A의 백 마디 말보다 큰 힘을 지닌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고객을 늘려간다. 고객이 늘다 보면 사장이 생산하는 다른 상품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먼저 물어보는 고객이 생기기도 한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A는 사장이 생산하는 다른 상품들도 고객 들에게 권해본다. 기존 상품에 대한 신뢰가 쌓여있는 고객들은 비교적 쉽게 다른 상품들도 요청한다.
무급으로 사장을 돕는 4명의 영업사원들
고객들의 주문을 사장에게 보고하는 SNS 대화방에는 A를 포함한 4명의 영업사원과 사장, 그리고 사모가 함께 있다. 사장은 실적이 좋지 않다고 다그치지도 않지만 반대로 실적이 좋다고 보너스를 지급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상품을 아무리 많은 고객에게 팔더라도 A가 사장으로 부터 받는 별도의 월급이나 수고비는 없다. 그렇지만 A는 매년 다른 영업사원들과 실적을 비교하며 경쟁적으로 상품을 팔고 있다. 다른 영업사원들보다 실적이 좋을 때는 사장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고 실적이 좋지 못할 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책하며 다음 상품이 나올 시기엔 기필코 더욱 많은 상품을 판매하리라 다짐한다. A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장의 손에 길러졌다. 사장은 비록 본인도 풍족히 살진 못했지만 A를 먹이고 입히며 공부를 시켰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보내주었다. 사장 덕분에 A는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도 꾸리게 되었다. A는 자신과 다른 길을걷게 만들고자 했던 사장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A의 성장에 사장이 뿌듯해하는 만큼 A 또한 자신을 키워준 사장의 희생과 사랑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자랐다. 어떻게 하면 사장에게 자신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장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A는 사장이 판매하는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A도 사장이 생산하는 그 상품에 손대본 적이 있기에, 그 상품이 안겨주는 황홀한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품질은 좋지만 그에 비해 열악했던 판로 때문에 사장은 항상 적자를 보고 있었다. 이에 A는 사장의 손에 함께 길러진 B, 그리고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영업사원이 되길 자처했다. 그렇게 4명의 영업사원이 사장의 사업에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에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너희들까지 이 일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했지만, A의 뜻은 완고했다. 사장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A가 그동안 사장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의 반대에도 A는 다른 영업사원들과 함께 사장의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상품을 팔수록 자신이 사장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은 A를 점점 더 열정적으로 상품판매에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월급도 받지 않으면서 실적에 열 올리는 이상한 영업사원, 그리고 판매실적이 전혀 없어도 질책하지 않는 이상한 사장. 남들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관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 이 이야기는 부친의 귀농으로 여러 농산물을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한국가스공사 강원지역본부 김준성 주임(등장인물 A)의 이야기입니다.
※ 다음호 필봉계주 주자는 강원지역본부 안전환경부 안영진 주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