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란싼 왕조의 첫 번째 수도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700m의 도시는 불교사원과 프랑스 식민 시기의 빛바랜 건물이 오랫동안 웅크려 있었다. 고립과 단절은 루앙프라방의 앳된 모습을 지켜냈고, 도시 전체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세계유산도시의 새벽 탁발행렬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완벽하게 그들만의 것이다. 승려들의 탁발과 새벽시장이 뒤엉킨 루앙프라방의 하루는 단아하다. 빛바랜 담벼락 너머에서 닭이 울고, 장작이 피어올린 연기 사이로 아침식당들이 문을 연다, 새벽 탁발은 해 뜰 무렵이면 찾아드는 루앙프라방의 의식이다. 탁발에 나선 승려들은 맨발에 말이 없다. 엄숙한 새벽 공양 시간에는 여행자들도 몸을 낮추고 오래된 도시의 일부가 된다. 주민들은 손으로 한 줌 떼어낸 찹쌀밥 '카오냐오'를 스님들의 발우에 정성스럽게 담고, 이방인들이 들고 온 바게트나 과자봉지도 허물없이 뒤섞인다. 새벽 탁발은 큰 구경거리가 됐지만 '나눔'을 중시하는 가치마저 퇴색되지는 않았다. 낮이 되면 루앙프라방은 한 꺼풀 모습을 바꾼다. 촘촘히 들어선 게스트하우스와 간이 세탁소들, 여행자들의 아지트인 시사방봉 거리의 작은 갤러리와 커피숍들이 익숙하게 다가선다. '욕망이 멈춘 땅', '오랜 호흡이 담긴 도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등의 수식어들만큼이나 배낭여행자들에게 루앙프라방은 다채로운 이미지로 채워진다.

시사방봉 거리, 벽안의 이방인들

루앙프라방 일대의 80여 개 사원에 천여 명의 승려들이 있다는데, 사원들은 웅대하거나 그리 오랜 세월의 퇴색한 모습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고 해가 지면 장터가 들어서는 길목 한편에, 삶의 한 단면처럼 황금빛 담벼락은 들어서 있다. 식민세력이던 프랑스에 의해 새롭게 단장된 왓 마이 사원의 지붕끝자락에는 장터 천막이 함께 내걸리고, 옛 왕실의 장례식을 주관하는 유서 깊은 왓 씨엥통 사원은 메콩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에 소담스럽게 앉아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도시를 빛낸 결실은 이물스러움도 낳았다. 숙소와 식당과 네온사인 간판이 세워졌고 골목 곳곳은 리모델링 열풍이 불었다. 여행자들의 입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베이커리도 등장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뒤 유명세를 탄 한 빵집은 벽안의 청춘들에게 인기 명소가 됐다. 빵 한 조각과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을 느림의 미학이 깃든 이곳에서 조우하는 것은 생경하다. 여행자들은 파리지앵이라도 되는 듯 다리를 꼬고 볕이 든 쪽을 바라보며 커피와 머핀 조각을 입에 넘긴다. 도시가 관대해 보이는 것은 그 모습마저도 담대하게 받아들여서다.

꽝시폭포, 메콩강, 푸시산 비경

여행자들이 빠져나간 오후의 루앙프라방은 한적하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호객행위는 대부분 '꽝시폭포'로의 유혹이다. 40℃를 육박하는 뙤약볕 아래 루앙프라방의 청춘들은 긴 시간을 꽝시폭포에서 보낸다.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하늘빛이다. 비키니를 입고 활보하는 여인들, 줄을 타고 웅덩이로 뛰어드는 근육남들, 계곡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거나 라오 맥주를 들이키는 여행자의 모습들이 또 다른 태평성대다. 외곽으로 나서면 메콩강을 거슬러 4,000여 불상으로 채워진 팍우 동굴까지 이채로운 마을들이 어우러진다.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마을, 베틀로 라오스 전통 천을 짜는 파놈마을, 전통주를 만드는 마을 등은 각각의 주제를 지닌 채 길가에 도열한다. 해 질 무렵, 도심 한가운데 솟은 푸시산의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루앙프라방은 붉은 지붕과 사원들이 엇갈리고 메콩 강이 단아하게 에돌아 흐르는 산속 소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는 강 너머로 스러지는 일몰이 아름답다.

배낭여행자의 아지트 방비엥

루앙프라방이 문화적 향취가 짙었다면 남쪽으로 이어지는 방비엥은 라오스의 자연이 뒤엉킨다. 쏭강이 에워싸고 흐르는 마을은 루앙프라방 이전에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였다. 방비엥의 인상들은 비로소 황금빛 사원들로부터 벗어난다. 게스트하우스 평상에만 앉아 있어도 수려한 산세와 강물이 차곡차곡 겹친다. 나무다리를 오가는 이방인들 아래로 물길을 거슬러 한가롭게 주민들이 다슬기를 채취한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산자락에는 방비엥 체험의 진수인 종유 동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방비엥의 강변에서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진행된다. 높이가 채 50cm가 안 되는 탐남동굴은 물길에 누워 튜브를 타고 탐방하는 수중동굴이다. 머리에 전등을 달고 줄을 붙잡아 이동하다 보면 그 귀한 종유석이 손에 잡힌다. 다른 나라 같으면 천연기념물 정도로 지정됐을 수억 년 세월의 자연들이 외지인의 손길을 받아들여 반질반질하다. 미니 트럭인 쏭테우를 타고 방비엥 외곽으로 나선 뒤 쏭강을 따라 내려오는 카야킹과 튜빙(튜브 타기)도 한껏 여유롭다. 해가 저문 뒤 방비엥의 여행자 거리에는 이방인들의 모터사이클이 달리고, 햄버거와 피자가 팔리고, 강렬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다. 라오스의 현재 수도인 비엔티안은 관문이자 세상과의 완충지대 성격이 짙다. 비엔티안의 국내선 공항에 들어서면 라운지에는 긴 간이의자가 있고, 작은 매점에서 직접 만든 쌀국수를 파는 정겨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입국장에는 승려 우대 표지판이 버젓이 내걸려 있다.

동남아시아 유일한 내륙국가의 수도는 식민과 전쟁, 이념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다. 메콩강 줄기는 이곳에서는 경계가 된다. 강 너머는 태국 농카이 지역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본뜬 빠뚜사이 개선문 등이 이 도시의 육중한 볼거리다. 번잡한 비엔티안의 단상들은 그동안 시리게 다가섰던 라오스인들의 삶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