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CIPE
머뭇거리는 봄과 성큼 다가온 여름이 사이좋게 펼쳐지는 5월의 어느 날, 가족은 '자연' 속으로 길을 나섰다. 짙어진 초록의 향연, 따스한 햇볕 한 자락, 싱그러운 바람한 조각이 기다리는 5월의 숲.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이 가족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글 박향아 사진 김지원]
비 온 뒤 맑음, 여행 시작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서혁이와 서원이의 얼굴도 '잔뜩 흐림'이다. 며칠 전부터 가족 여행을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으니, 이런 마음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만 할 터. "비 오는 숲도 낭만 있다"는 아빠의 위로도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가족 여행은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던 서혁이와 서원이가 석 달 만에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장진웅 과장이 대구 본사에서 평택기지본부로 근무지를 옮겼다. 자연스레 가족도 삶의 터전을 대구에서 평택으로 옮겼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서혁이도 정든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면서 서혁이는 아직 새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당연히 새로운 선생님도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다. '유튜브 계정(https://www.youtube.com/channel/UCep2LibKJyHsK1SABBo-MYg)을 만들어 게임 영상을 올리는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알차게 채워가려 노력 중이지만, 늘지 않는 구독자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도 속상하기만 하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해서 친구도 없는데,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어야 해서 너무 슬퍼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랑 소통하려고 유튜브 계정도 만들었는데 아직은 제 방송을 봐주는 사람이 별로 없고요." 낯선 동네로 이사 와 친구도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안타까운 것은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 평소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기에 이 상황이 더 안타깝다. 장진웅 과장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계절마다 변하는 우리네 산과 바다를 찾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가족은 틈이 나는 대로 자연 속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두 아이가 워낙 뛰어노는 걸 좋아해요. 아내도 복잡한 도심보다는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자연을 좋아하고요. 그래서 주말에는 되도록 야외로 나가려고 하는데 코로나19로 한동안 나들이를 못했거든요. 오늘 여행은 답답할 텐데도 집에서 잘 지내준 아이들과 회사 다니랴 아이들 돌보랴 바쁜 나날을 보낸 아내, 그리고 맞벌이인 우리 부부 대신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신 장모님을 위한 저의 작은 선물입니다." 그런 아빠, 남편, 사위의 마음을 아는지 오늘의 목적지인 '무주 향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자마자 맑게 갠 하늘. 반가운 햇살과 함께 가족의 행복한 여행이 시작됐다.
함께 걷는 발걸음, 차곡차곡 쌓이는 행복
휴(休)라는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나무 옆에 기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진정한 쉼은 자연으로 나무 옆으로 다가가는 것. 자연 속에서의 휴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연휴양림인 만큼, 가족도 무주 향로산 자연휴양림에서 1박 2일의 '쉼'을 즐길 생각이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숲으로 뛰어가는 아이들과 혹시나 넘어질까 "천천히뛰라"며 아이들을 타이르는 할머니,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뒤따르는 엄마 아빠까지, 숲으로 향하는 가족의 발걸음에서 기분 좋은 리듬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무주에서 나고 자란 장진웅 과장에게 향로산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해가 질 때까지 숲을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두 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저기 호수 안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고, 깊은 숲속으로 가면 다람쥐와 토끼들도 사이좋게 살고 있다"며 두런두런 추억을 꺼내놓는다.
"정말요?" "토끼가 살고 있어요?"라며 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과 신나게 숲을 달리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칼싸움도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장진웅 과장은 두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이고 싶다. 아내 지혜 씨는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남편을 보며 "좋은 아빠일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척척 잘 해내는 자상한 남편"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도 집에 오면 두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설거지 청소도 저보다 깨끗하게 잘해요. 요즘은 아이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장모님을 위해서 퇴근 때마다 좋아하시는 음식을 꼭 사 들고 온답니다."
장진웅 과장의 장모님께서도 "100점 아빠, 100점 남편, 100점 사위"라고 자랑을 늘어놓는 걸 보니,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 맞나 보다. 산과 호수 그 사이로 그림처럼 이어진 오솔길을 걷는 내내 가족은 많이 떠들고 많이 웃었다. 발밑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과 그 위를 맴도는 나비의 춤사위, 저마다의 모양으로 자리 잡은 돌멩이까지, 멀리서 봤을 땐 같은 풍경들의 연속인 듯했지만 그 안에 들어서자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태양이 뜨겁게 느껴질 때쯤이면 여전히 푸른 나뭇잎은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듯 예쁜 벤치가 반겨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가족까지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
숲을 즐겁게 마주하는 또 다른 방법
작은 오솔길을 거쳐 가족이 향한 곳에는 숲속을 달리는 작고 특별한 열차가 있는 곳. 무주 향로산 자연휴양림의 정상까지 가족을 안내해줄 모노레일이다. 열차가 서서히 산길을 오르자 양옆으로 펼쳐지는 초록의 향연. "나무가 뒤로 달려가는 것 같다"는 서원이의 얘기에 숲속은 가족의 웃음으로 가득 찬다.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시기엔 묘한 신경전이 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미련과 서둘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 양보할 수 없는 줄다리기 덕분에 가족은 봄꽃과 여름 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그러데이션을 만끽하는 중이다. 두 계절이 마주할 때 숲을 찾은 가족을 위한 자연의 선물이다. '사락사락'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서서히 느려지고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향기에 할머니는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난다"고 했고, 어린 서원이는 "초록 공룡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의 무릎을 걱정하는 서혁이의 어른스러움이 엄마는 한없이 기특하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오늘의 '쉼'을 누리는 가족을 바라보는 정진웅 과장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숲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다시 돌아가면 두 아이는 다시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장모님은 아이들을 돌보시느라 고생하셔야겠죠. 우리 부부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하며 출퇴근을 해야 할 테고요.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이 함께 보낸 1박 2일이 앞으로의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날이 오겠지요. 일단은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찰칵!' 향로산 정상에 선 가족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오늘을 기억할 사진 한 장. 오늘 찍은 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래겠지만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오늘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