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愛온도
삶은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이뤄진다. '알베르토 몬디'라는 이탈리아인이 한국행을 택하고 또 뿌리내린 것은 수많은 선택이 이끈 결과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학교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남들이 원하는 대학에서 가장 그럴듯한 전공을 마치고 안정적인 회사에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남들과는 다른 공부가 하고 싶어 당시에는 인기도 없는 중국어를 택했고, 유학을 결심하고 선택한 도시 또한 이방인에게 익숙한 대도시가 아닌 중국 랴오닝성 남쪽 끝에 자리한 다롄이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한눈에 반해 한국행을 결심한 것도, 이후 한국에서 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들도 그에겐 달콤한 꿈같다. 누군가는 지쳐 익숙한 삶으로 되돌아갔을 법한데 그는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선택의 순간마다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 김승희 사진 김재이]
알베르토 몬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주의 작은 중세 도시 미라노에서 나고 자랐다. 베네치아국립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강원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한국에 거주 중이다. 철학과 문학, 축구와 음악, 그리고 여행을 사랑한다. 2014년부터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17년에는 이탈리아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이탈리아의 사생활》을 펴냈다.
- Q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A
-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촬영이나 행사는 많이 취소됐지만 다행히 방송 일정 때문에 바쁘게 생활하고 있어요. 최근 대한민국의 모범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어, 이탈리아 방송국에서 한국 상황을 소개하는 인터뷰도 진행했어요. 또,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Q
- 고향인 이탈리아도 한국처럼 코로나19 확산세가 좀 꺾였다고 들었는데, 가족이나 친구 분들은 모두 건강하신가요?
- A
- 다행히도 저희 고향에는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어요. 부모님이 타국에 있는 저희 가족 걱정을 많이 하셨죠.
- Q
-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멀리 떨어져 살게 돼서 이탈리아가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 A
- 한국에서도 14년째 살고 있어서 이젠 외롭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긴 하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그리웠어요. 요즘은 시대가 바뀌고 SNS 등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져서 대학 동기들은 물론, 고향 친구,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도 거의 매일 연락하고 지내요. 부모님과도 매일 화상통화를 해서 지금은 곁에 있는 것 같아요.
- Q
- 1년 전에 <널 보러 왔어> 라는 제목의 책을 내셨더라고요. 책 소개 잠깐 해주세요.
- A
- 4년 전, '비정상회담'에 출연할 당시 이탈리아 생활과 문화를 소개하는 <이탈리아의 사생활> 이라는 책을 냈어요.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한국에 대한 책도 내면 좋겠다고 출판사 쪽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근데 첫 책과 비슷한 형식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한국인들에게 한국 생활을 소개한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한국의 관계,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자서전 같은 이야기가 됐어요. 책 제목의 '너'라는 존재는 제 아내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지칭한 거예요.
- Q
- 책 속의 주인공은 모험심도 강하고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 A
- 맞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미래의 목표를 정하기보다 순간순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았기에 먼 나라인 이곳 한국에 정착해 살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사교적이기도 하고요. 이탈리아 사람들 모두가 저처럼 친화력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웃음) 성격인 것같아요. 저희 가족 중에서는 아버지가 특히 사교적이세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집보다는 밖에 나가길 좋아했고,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했어요.
- Q
- 현대인들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 A
- 음, 그건 한국문화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친해지고 나면 그관계에 최선을 다하려는 '정' 문화는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강하고 유교문화의 영향도 커서 연장자나 윗사람을 존중하는 모습도 보기 좋은데, 어느 한편으로는 서열문화나 눈치문화 같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어색하다' '서먹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떠올려보면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말 자체가 없거든요. 이탈리아인들은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저도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아보니까 가끔씩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웃음)
- Q
- 인간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것 같아요. 혹시 노하우가 있으세요?
- A
- 긍정적인 면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큰 힘이 아닐까 싶어요. 완벽한 친구도 완벽한 동반자도 없잖아요. 그러니 최대한 상대의 단점보다 좋은 점을 보는 거죠. 이탈리아 속담 중에 '친구를 찾는 자는 보물을 찾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친구의 안 좋은 점을 보기보다 내 삶의 보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면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질 거예요.
- Q
- 책에서 한국사회의 '남성 혐오' '여성 혐오' 문제의 원인을 친구문화에서 찾은 게 인상적이었어요.
- A
- 이탈리아를 비롯해 서구권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성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데, 한국에서는 친구가 동성에 한정돼 있는 게 특이했어요. 서로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깊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성끼리 남성끼리 편을 나눠 싸우는 것도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없는 상황이에요.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그렇지 않은데 특히 온라인상에서 집단으로 볼 때 혐오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 같아요. 활발히 소통하고, 그래서 서로의 어려운 점을 이해한다면 혐오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 Q
- 친구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 A
-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말은커녕 영어도 제대로 못해서 막막했어요. 다행히도 그때 하숙집의 룸메이트 형이 중국어를 잘 해서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상대였는데, 그 형이 정말 잘 챙겨줬어요. 제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가 마침 장마철이라 매일 비가 와서 우울하기도 했고 수중에 돈도 별로 없어서 힘들었는데 형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걸 스물다섯 살 되던 해, 한국에서 지낼 때 알게 됐어요. 아직은 낯선 나라에서, 일어나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고 몸에도 쥐가 나서 잘 움직일 수 없을 땐 너무 막막했어요. 그때 춘천에서 알게 된 친한 형이 의사였는데, 그 형 때문에 당뇨병에 대해 알게 됐고, 형의 응원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어요. 어려울 때마다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Q
- 친구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 A
-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친구 사이에는 조건이 없잖아요. 반대말을 찾자면,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 Q
- 사회적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책 인세 전액을 '안나의 집'에 기부하겠다고 한 것이나 지금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엘레멘트도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식인데, 지금 관심사는 뭐예요?
- A
- 지금 제게 가장 큰 관심사는 가족이죠. 가족을 위해서는 좋은 사회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환경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환경 보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요. 최대한 물이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생활 속에서 노력해요.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살고 있잖아요. 아들한테 미안해 죽겠어요. 사회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그저 일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정도예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게 제 목표예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살죠. 시간 낭비하지 않고 제 시간을 잘 활용해서 제 곁의 소중한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님의 추천작
- 음반 :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
- 가수 : 핑크플로이드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핑크플로이드가 1973년 발표한 콘셉트 앨범으로, 곡 하나하나 따로 듣기보다 앨범 전체를 들을 것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선율은 물론, 가사도 주옥같다. 광고나 영화 등을 통해서도 종종 소개되기도 해 대중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핑크플로이드는 자신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을 리스트로 정리해, 시간, 돈, 광기, 죽음 같은 무거운 주제로 이 앨범을 채웠다.
- 영화 : 트레인스포팅
- 감독 : 대니 보일
영화는 물론 책으로도 수도 없이 접했다는 이 작품은 '선택'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크게는 착한 사람으로 살지 나쁜 사람으로 살지, 사회 규칙을 지키면서 살 것인지 마음 내키는 대로 살 것인지를. 담배나 술, 운동등은 나의 몸을 위한 선택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은 어떤 선택들의 합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 책 : 나폴리 4부작
- 저자 :엘레나 페란테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으로, 서로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인 릴라와 레누의 유년기, 사춘기, 장년기, 노년기까지의 빛나는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는 이 책이 흥미로운 이야기로도 가치가 있지만 나폴리의 근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82년생 김지영]의 유럽 버전으로, 과거 여성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