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

나는 귀여운 게 싫다?
나의 묘한 취미 생활

누구나 한 번쯤 귀여운 동물이나 캐릭터에 ‘심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마트폰을 들여
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나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그러나 강인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나에게 이런 취미는 늘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늘 귀여운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 수소사업기획부 임건호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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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작은 반란

나는 남성 중심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다. 남중, 남고를 다니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적어도 내가 입학한 연도에는 그러하였다), 군대에서도 장교로 복무하면서 조직의 규율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며 항상 긴장 속에서 2년여의 군 생활을 보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는 감성적인 부분을 억누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익숙해지도록 요구받았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안의 어딘가에 귀여운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본능처럼 종종 나는 개, 고양이, 판다의 빙글거리는 눈망울이나 쿼카가 해맑은 미소를 짓는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들은 지친 일상 속에서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동시에 그런 위안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나는 왜 이토록 귀여운 것에 이끌리는가? 이것이 나에게 맞는 취미인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정상’인가?
언제부턴가 내 버킷리스트에는 판다, 쿼카, 코알라 등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는 일이 목표가 되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자문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이런 것들인가? 아니면 이것은 내가 억누르려고 했던 또 다른 자아의 표출인가? 귀여운 것들에 대한 애정은 방안에서만 행해지다가 어느 날 현실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푸바오의 탄생이 계기였다. 마치 숨기고 싶었던 본능이 들킨 듯했다.

한 마리 판다가 일깨운 감정

특히 푸바오가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았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비록 영상을 찍진 못 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고된 하루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24년 여름, 결국 나는 버킷리스트 ‘야생의 쿼카 만나기’를 이루기 위해 ‘쿼카의 섬’으로 불리는 호주 로트네스트섬(Rottnest Island)으로 떠났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기차와 배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쿼카를 만났을 때, 또다시 그 감정에 사로잡혔다. 쿼카가 무화과 열매를 먹는 모습을 보며 섭씨 39도에 육박하는 호주의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었고, 모든 순간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는 내게 또 다른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왜 나는 귀여운 것에 이렇게 집착하게 되었을까?

  •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나는 강인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부드러움과 순수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치 굳건한 성벽 안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내 안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 모순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이 두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이젠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귀여운 것에 대한 애정이 불편했다.
    귀여움은 단지 눈으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귀여운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행복감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귀여운 것에 대한 애정이 내 본래 모습과 충돌하는 듯했다. 귀여운 집게나 키링으로 꾸며진 내 책상은 업무 중 소소한 기쁨을 주지만, 나는 그 기쁨마저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로 귀여운 것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현실은 냉정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남자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의 취미를 유치하거나 어린애 같다고 비웃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남성이 감성적이거나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을 부자연스럽게 만들며,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진실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또한 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이를 억누르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필봉계주 다음 주자는
LNG 사업처 아프리카사업부 양선필 과장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