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칼럼

원가 반영 요금으로
에너지 소비 효율을 극대화해야

천연가스가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에 꼭 필요한 다리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화석연료 중에서 가장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 주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친환경 에너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연가스를 친환경적으로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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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윤택하게 해준 에너지 현대화의 과정

우리가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수도권에 액화천연가스를 기화한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1987년이었다. 이제는 전국적인 도시가스 공급망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공짜일 수는 없다. 액화천연가스를 운반하기 위한 저장탱크와 공급관로를 비롯한 사회기반시설(SOC)의 구축과 운영에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소비자도 연탄이나 등유보다 비싼 가스비를 부담해야 하고, 안전한 소비를 위한 시설과 수칙도 필요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우리의 생활환경이 놀라운 수준으로 쾌적하고, 깨끗하게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시 전체가 건강에 치명적인 연탄가스와 지저분한 연탄재에서 해방됐다. 본격적인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도 도시가스를 핵심으로 하는 ‘연료의 현대화’ 덕분이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도 달라졌다. 출력도 쉽게 조절할 수 있고, 환경 오염도 크게 줄어든 ‘천연가스 발전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류는 에너지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거칠고 위험한 야생에서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인간의 지능이 높아져서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도 에너지를 이용해 음식을 조리한 덕분이라고 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의 산업화도 ‘에너지 현대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의 발전이 언제나 깨끗하고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불은 처음부터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언제든지 재앙적인 화재로 돌변할 수 있는 ‘더럽고, 위험한 기술’이다. 실제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도시가 대(大)화재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배출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환경 오염도 걱정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순진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한 과제로 자리를 잡은 탄소중립도 더럽고, 위험한 화석연료의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천연가스가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연료처럼 보이는 이유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이 완전연소가 용이한 성분이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시내버스의 배출구에서 매연이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CNG 버스의 배출구나 도시가스 보일러 연통에서도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가 배출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한 온실가스이기 때문에 천연가스를 저장·운반·사용하는 과정에서 누출이 발생하면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온실 효과가 나타난다.
결국 천연가스가 ‘친환경 에너지’라는 주장은 섣부른 것이다. 사실 인간의 편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온전하게 ‘친환경’일 수는 없다. 다만 전통적인 에너지보다 가시적인 유해·오염물질의 배출이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일 뿐이다. 흔히 ‘청정에너지(Clean Energy)’로 알고 있는 전기도 생산·송전·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염이 발생한다.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오염의 정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에너지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기술이기에 에너지의 비효율적인 낭비는 용납될 수 없다. 더 안전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요금 정상화를 통한 합리적 에너지 정책 시행

어느덧 에너지 정책은 현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자리 잡았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국가 차원에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뜻하는 ‘에너지 믹스’를 선택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결정은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안보성 등의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오늘날 에너지 시장의 상황 또한 무척 복잡하다. 장작과 숯에만 의존하다가 석탄·석유·가스가 뒤엉킨 시장이 됐고, 이제는 수소 연료까지 등장하고 있다. 전기 생산 방식도 다양하다. 수력·석탄이 지배하던 발전 시장에 석유·가스·원자력·신재생이 더해졌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해진 에너지 시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이래저래 만만치 않다.
에너지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는 필수다. 에너지 가격의 결정에서 물가와 서민 경제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에너지 시장을 정치권에 맡겨둘 수는 없다. 오히려 에너지 요금을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다양한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소비는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무작정 절약해야 한다는 과거의 정책은 바뀔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고 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낮은 에너지 요금은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부추긴다. 더욱이 에너지 정책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나 농어민을 위한 산업 정책과 확실하게 구별해야 한다. 저소득층이나 농어민에 대한 지원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결국 에너지 소비 효율화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의 핵심 목표가 돼야 한다. 합리적인 요금 조정이 그 시작이다. 유명무실해진 가스 요금 ‘원료비 연동제’를 살려내야 하는 이유다. 또 천연가스를 직수입하는 발전사에 대한 특혜성 제도도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 직수입이 유리할 때는 이익을 챙기고, 불리할 때는 ‘평균요금제 원료비’를 통해 일반 국민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제도는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천연가스를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기반시설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튼튼한 재정 기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