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KOGAS는

밴드 음악이 선사하는 특별한 밤 한국가스공사 제주지부 사내 밴드
‘세렝게티’의 공연 현장

한국가스공사 제주지부에는 낮엔 직장인으로, 밤엔 밴드로 변신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사내 밴드 동아리 ‘세렝게티’의 멤버들이다.
바쁜 일과 속에도 결코 음악을 놓지 않는 이들이 최근 직장인 밴드 대회에 출전해 본선 무대에 오르게 됐다.
여름밤의 낭만이 가득했던 대회 현장을 직접 찾았다.

📝 이수정  📷 김도형   🎬 신현균

scroll Down

Scroll Down

밴드 동아리 ‘세렝게티’가 만들어지기까지

한국가스공사 제주지부 사내 밴드 동아리 ‘세렝게티’가 지난 8월 17일 중도일보가 주관한 직장인밴드대전에 참가해 본선 무대에 올랐다. 대전 우리들공원에서 치러진 이번 대회엔 총 59팀이 출전했으며 이중 10팀이 무대에 올랐다. 참가한 5명의 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회 당일 제주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대전에 도착했다. 세렝게티 팀은 10팀 중 가장 먼 곳에서 온 팀이었다.

세렝게티가 처음 결성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11월, 제주지사 설비보전부 직원 3명이 모인 조촐한 연말 회식 자리였다. 우연히 나온 밴드 음악 이야기는 다룰 수 있는 악기 얘기로, 그것은 곧장 사내 밴드를 결성하자는 다짐으로 번졌다. 그날의 다짐은 다음날 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세렝게티”라는 이름으로 실현됐다. 이름을 작명하는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원래는 ‘완전히 우연에서 시작된 뜻밖의 발견’이라는 뜻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로 지으려고 했어요. 꼭 저희 밴드가 만들어진 모습이 담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전달과정에서 멤버 한 명이 세렝게티로 잘못 들은 거죠.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이참에 ‘음악이라는 초원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며 자유롭게 뛰어놀자’라는 뜻을 새롭게 담았죠.”

3명에서 시작된 사내 아마추어 밴드는 어느새 제주지사를 대표하는 동아리가 됐다. 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더라도 누구든 가입할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췄고, 적어도 한 번, 무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 활동의 부담을 줄였다. 현재 밴드 멤버는 3명에서 20명 가까이 늘었다. 고승덕 차장은 세렝게티를 통해 대학 시절 동아리 가입 오디션 탈락으로 좌초됐던 밴드 음악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켰다. 그는 밴드 멤버들에게 아마추어리즘의 산증인이라고 불린다.

“베이스 기타를 제 손으로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 날을 기점으로 마치 가슴에 불이 붙은 듯, 밴드 연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맹렬히 연습하다 보니 기타를 끌어안고 잠드는 날도 부지기수죠. 이젠 밴드 활동이 제 삶의 유일한 활력소입니다.”

김태현 과장에겐 세렝게티는 인생 4번째 밴드다. 대학 시절, 제대 후, 어학연수 시절까지 변화의 구간마다 밴드를 결성했던 그다. 이번 기회로 김태현 과장은 10년 가까이 장롱에 고이 모셔뒀던 기타를 다시 꺼내게 됐다고 한다. 손목도 예전 같지 않고, 체력도, 실력도 많이 달라졌지만, 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10년 전보다도 더 뜨겁다.

“아마추어 밴드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밴드를 새롭게 시작하게 됐는데요. 밴드가 해체될 때마다 매번 눈물의 작별을 했던 것을 기억하기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인생에 몇 없을 경험을 더 생생히

직장인 밴드의 경우 대부분 가정이 있어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도 하고, 업무 활동으로 시간이 빠듯하기에 자연히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점심시간 틈틈이 모여 합주 연습을 하고,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할애해 자신들의 열정을 증명한다. 지금까지 밴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도 이렇듯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있었다. 고승덕 차장은 특히 밴드에서만큼은 모두가 동등해야 함께 ‘화합’할 수 있기에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밴드는 전체적인 합이 중요해요. 그러다 보니 연주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어울려 가는 게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틀린 부분을 바로잡고 고치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없어야겠죠. 적어도 밴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는 직원들의 직급이나 소속에 개의치 않고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어요.”

점심시간 제주지사 직원들 앞에서 선보인 몇 차례의 사내 공연, 2022년과 2023년 공연장에서 치른 연말 무대만으로는 이들의 끼와 열정을 모두 보여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대에 올라 연주를 선보일 때 밀려오는 희열과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데, 인생에 몇 없는 경험을 더 생생히 맛보기 위해 이들은 더 큰 무대를 꿈꾸게 됐다.

“여러 직장인 밴드 대회를 물색하던 중, 대전에서 열리는 대회를 발견하게 됐죠. 7월 중순, 예선전에 공연하는 영상을 보내고 발표날 전화를 기다렸는데 대전 지역 번호인 042로 전화가 왔어요. 얼마나 떨었는지 4년 전 승진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쁘더라고요.”

이들이 선곡한 곡은 80년대 미국식 하드록의 대표곡인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이다. 영화 《토르》의 OST 곡으로 사용됐을 만큼 대중적이면서도 난이도가 꽤 있는 곡인데, 보컬을 맡은 이진환 과장이 액샐 로즈와 보컬 톤이 비슷했던 것도 선곡 이유 중 하나다. 대회에 오진 못했지만 멀리서 응원하고 있을 세렝게티 동아리원들 모두 한마음으로 이들을 응원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수상에 대한 기대보다도 최대한 무대를 즐기고, 준비했던 것을 후회 없이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세렝기티 밴드에게 이번 무대는 지금까지 있었던 공연 중 가장 큰 무대이다.

뜨거웠던 막판 결승전, 최종 우승은 ‘안전총괄실’

어느덧 저녁해가 저물고 직장인 밴드 대전의 2부가 시작됐다. 무대 앞 관객석은 대전 시민들로 빽빽했다. 8시 40분, 2부의 3번째 팀의 연주가 끝나자, ‘세렝게티’ 팀이 마침내 무대에 올랐다. 이진환 과장은 “폭염 속에서 일하는 한국가스공사 임직원들을 대표해 평소 현장에서 착장하는 긴 팔의 작업복과 헬멧, 안전화,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다”라며 “제주도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값은 꼭 벌어서 돌아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여름밤과 잘 어울리는 일렉 기타의 시원한 사운드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기타 선율에 맞춰 이진환 과장이 몸을 배배 꼬며 율동을 선보이자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5명의 직원 모두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심취한 듯한 진지한 표정이었다. 장갑을 던지는 퍼포먼스, 우렁찬 기타연주, 록 밴드다운 메인보컬의 샤우팅을 지나, 팀원들은 일렬로 무대 중앙에 모여 준비해온 단체 안무를 선보였다. 드럼 박자에 발맞춰 앞뒤로 오가는 짧은 안무였지만, 다른 밴드 팀에선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퍼포먼스에 관중석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의상, 안무, 연주 등에서 아마추어 밴드다운 신선함과 순수한 열정이 돋보였다”라며 “직장인들의 애환과 자부심이 묻어난 공연이 무척 감동적이었다”라는 심사평을 전했다.

세렝기티 팀은 아쉽게도 수상 하지 못했다.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에 모인 5명의 주인공들. 공연을 마치고 다들 땀 범벅인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들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추구해 이루어본 사람만이 가지는 긍지와 기쁨이 한가득 차올라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