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수빈 사진. 김범기 영상. 김지혜
늦은 시간까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야트막한 오르막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던 지난 6월 25일. KOGAS의 직원들이 저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촌 언덕에 위치한 지속가능 미식연구소 아워플래닛을 찾았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식사로는 흔히 ‘채식’을 떠올리지만, 이곳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미식 여행이 펼쳐질 예정이다.
장민영 요리탐험가가 반갑게 맞이해 주던 아워플래닛의 첫인상은 유난히 따스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월에 담겨있단다. “아워플래닛이 있는 이 건물은 거의 100년이 된 건물이에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바위는 마치 자연을 옮겨 놓은 듯했는데 이 또한 1층에서부터 이어지는 진짜 바위라는 장 탐험가의 말에 참여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참여자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두리번거리며 아워플래닛을 살펴 보기도 했다. 특히 오늘 다이닝의 예고편처럼 한편에 진열된 ‘수박’ ‘발효 비지’ ‘건가오리’ 등 식재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워플래닛의 시그니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로컬 오딧세이’에서는 한 지역을 테마로 정해 그 지역의 식재료와 식문화를 두루 소개하는 시간이다. 이 특별한 강의를 위해 평소에도 파인다이닝을 즐기며 음식에 대한 맛과 기억을 기록하는 취미가 있다는 자칭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 김서윤 주임, 결혼서약서의 내용 중 하나가 ‘제철음식 챙겨 먹기’였을 정도로 음식과 요리를 사랑한다는 손인주 대리 부부, 색다른 요리로 힐링을 하고 싶다는 김대건 주임뿐만 아니라 음식으로 지구를 지킨다는 메시지가 흥미로워 참여하게 되었다는 서하은 대리 등 각양각색의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워플래닛이 선보이는 로컬 오딧세이가 특별한 이유는 음식과 환경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수박’처럼 계절에 나는 음식을 즐긴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겨울에 수박을 기르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당연히 탄소 발생과도 연결돼죠. 일상에서 제철 로컬음식을 즐긴다는 건 가장 편하고 빠르게 지구를 지키는 방법이랍니다.”라는 장 탐험가의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듣던 이들은 테이블에 놓인 요리 소개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음식에 대한 기대를 키워갔다. 그 시간, 주방에서는 김태윤 셰프와 서하람 요리사가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서둘러 다이닝이 시작되었다.
오늘 로컬 오딧세이에서 소개할 지역은 ‘경남 거창’이다. 참여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동네인 거창의 식문화와 그곳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해 총 여섯 가지 음식을 맛볼 예정이다. 가장 먼저 준비된 음식은 ‘발효 비지 후무스’. 중동 지역에서 즐겨 먹는 소스인 후무스는 병아리콩을 삶아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오늘 아워플래닛에서 준비한 후무스는 조금 특별하다. “거창에서는 비지를 발효해서 먹는 문화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발효 비지와 밤콩을 활용해 만든 후무스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중동 지역 음식과 거창 식문화의 낯선 조합을 즐기기 전 인증샷은 필수.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오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짧게 셔터를 누르고는 곧장 맛을 보기 시작했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입맛을 돋워볼 차례. 거창은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이 둘러싼 분지로 과일이 특히 맛있는 동네다. 그중에서도 특산품으로 통하는 복수박과 포도로 만들어 상큼한 맛이 일품인 가스파초가 준비됐다. 여기에는 영월에서 난 토종토마토인 ‘그린 지브라’라는 종을 활용했는데, 생소한 종류를 선보인 데는 천편일률화되어 가는 생태계의 다양성을 회복하고픈 아워플래닛의 마음이 담겨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가 중요해요. 다양한 종류를 알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보셨으면 해요.”라는 말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가스파초를 한술 크게 뜨는 참여자들. 이내 입안 가득 여름의 맛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쌈밥 두 개가 가지런히 식탁에 올랐다. 우엉잎쌈과 배춧잎쌈 안에는 거창에서 즐겨 먹는 특별한 장이 들어 있다. 우엉잎쌈에는 거창에서 만능장으로 통하는 고추지릉장이, 배춧잎쌈에는 ‘싱기’라는 해조류로 만든 막장이 숨어 있다. 처음 듣는 음식에 쌈을 한입 베어 물어 안을 살피는 사람들. “쌈은 베어 물지 말고 한입에 드시길 추천해요! 장이 한쪽으로 밀리거든요.”라는 장 탐험가의 말에 남은 쌈 반도 부랴부랴 마저 입에 넣고는 진지하게 맛에 집중했다. 평소 장 종류를 좋아한다는 손인주 대리와 남편 오명진 님은 “저희 최애 장은 강릉에서 먹어보았던 고기볶음 고추장이에요. 그런데 오늘 먹어본 싱기막장도 굉장히 색다르고 맛있네요.”라며 만족을 드러냈다. 서하은 대리 또한 “평소 우리가 먹는 한식은 매우 한정적인데 색다른 한식을 맛본 것 같아요.”라며 공감했다.
이후 돼지목살 구이에 구운 초리조와 감자, 제철과일인 자두를 곁들여 먹는 음식과 건가오리, 반건홍합 등으로 맛을 낸 탕면 등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빈티지 와인, 맥주 등 취향에 맞는 술을 페어링하며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 갈 즈음, 디저트가 테이블에 올랐다. 오늘의 마무리를 책임질 디저트는 브랜디에 푹 적셔 맛을 낸 바바 케이크 한 조각. 입안에 사르르 퍼지는 상큼함에 미소와 함께 로컬 오딧세이가 막을 내렸다.
평소 여러 식재료를 두고 비교하며 먹기를 좋아한다는 김서윤 주임은 “셰프님의 제안에 따라 음식을 먹어보는 귀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김대건 주임 또한 익숙하지 않은 동네인 ‘거창’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며 웃음을 띄웠다. 다음 로컬 오딧세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7월에 선보일 로컬은 ‘울릉도’에요. 자세한 안내는 인스타그램으로 공지가 될 테니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라는 말에 이들은 다음을 기약하는 듯 눈빛을 주고받는다.
‘요리’에 남다른 애착을 자랑하는 이들이기에 한 접시 안에 깃든 아워플래닛의 노력과 정성을 잘 안다. “단숨에 뚝딱 나온 요리가 아닐 거예요. 로컬 식재료를 아워플래닛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도 대중적인 맛을 내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습니다.”라는 서하은 대리. 아워플래닛이 전하고픈 메시지가 이들 모두에게 잘 닿은 듯했다. 오늘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미식에 동참하게 된 11명의 KOGAS인들. 세상의 변화를 위해 힘을 모으는 이들에게서 초록빛 향기가 퍼지는 듯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한식이었어요!”
인천기지본부 계전보전부 서하은 대리, 황금주 님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난 웹진에서 아워플래닛이 소개된 기사를 보게 되었어요. 식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평소 한식을 좋아하는데 비지로 만든 후무스, 싱기막장 등 새로운 음식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철 음식의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인천기지본부 계전보전부 손인주 대리, 오명진 님
거창 쌈밥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특히 쌈에 들어간 ‘싱기막장’은 또 사서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평소 제철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는 이유는 최상의 신선도와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환경’과도 맞닿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맛도 있고 의미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천기지본부 설비운영2부 김인학 과장, 장규빈 님
고기와 감자의 조합은 평소에도 종종 즐겼었는데, 고기에 과일을 곁들인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오늘 돼지고기 목살과 자두를 함께 먹어보니 별미더라고요.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를 활용해 전통 음식부터, 이국적인 맛이 느껴지는 음식까지 다채로운 미식의 즐거움을 전하려는 셰프님의 노력이 느껴져서 더욱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