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up

바다를 위해
쓰레기를 디자인하다 컷더트래쉬 임소현 대표
내가 선택한 진로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소현 대표는 공존의 방법을 찾았고, 그 길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진로라고 생각했던 디자인과 사랑하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현재 해양쓰레기를 디자인한다.

글. 백미희 사진. 김범기 영상. 현명진

디자인과 환경문제는 공존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를 꿈꾸던 임소현 대표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등 그야말로 디자인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랬던 그가 현재 ‘해양쓰레기’를 디자인하고 있는 것은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과 패션계의 반환경적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잠시 공부했는데, 여유가 생길 때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했어요. 그중에서도 축산업 문제를 다룬 <카우스피라시>와 해양오염 문제를 고발한 <씨스피라시>가 인상적이었죠.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겨서 한때는 비건의 한 종류인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실천하기도 했고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죠. 그런데 제가 사랑하는 ‘패션’이 반환경적인 성격이 강하더라고요.

패스트패션이 유행하며 의류의 평균 수명은 3개월 정도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에너지와 물, 화학약품이 사용되고, 이는 수질오염과 해양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킨다. 임 대표는 컷더트래쉬를 런칭하기 전, 이미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헌 옷을 파는 일이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17년, 큰 고민 없이 시작한 창업이었다.
“그때는 옷이 버려지는 게 문제니까 ‘헌 옷을 팔아보자’ 싶었어요. 당연히 운영은 잘되지 않았고, 이후에 ‘그대로 파는 건 안 되겠다’ 싶어서 업사이클 공방을 차렸어요. 그런데 업사이클 과정에서도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결국 공방을 접게 되었죠. 그즈음 사회적기업과 청년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 나갔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아이템 또한 해양쓰레기 업사이클링으로 변경하게 되었어요.”
컷더트래쉬 브랜드를 런칭한 것은 2021년 6월이었다. 해양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임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관이 있었다. 평소 바다에 가진 애정이 커서 개인적으로도 바다의 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

어머니가 제주도 출신이라서 어렸을 때는 매년 방학마다 제주도를 가곤 했어요. 바다는 저에게 치유의 공간이었죠. 내가 사랑하는 바다를 지키는 데 일조하면서 디자인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결과, 컷더트래쉬를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해양쓰레기, 패션 아이템이 되다

  • 컷더트래쉬는 ‘바다의 쓰레기를 감소시키다’와 ‘쓰레기를 재단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표현한 브랜드다. 해양쓰레기를 원단으로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데, 여수항만공사로부터 확보한 해양쓰레기를 세척해 그대로 원단으로 활용하는 업사이클 방식과 폐어구를 파쇄해서 공정을 거쳐 원사를 뽑아서 원단을 만든 뒤 제품화하는 리사이클 방식이 있다. 최근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유니폼이나 판촉물 제작 등의 의뢰가 자주 들어오는데 이때는 대부분 리사이클 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한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도 가방이나 티셔츠 등 제품을 판매 중이지만 현재 컷더트래쉬의 수익의 85%는 B2C나 B2B 매출에서 발생한다.
    디자인 철학도 명확하다. 아이템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5~6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 가방을 만들면 6번의 소비를 한 번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캠페인 제품을 만들 때는 환경문제를 드러내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무실 입구에 보면 고래 캐릭터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눈이 X자예요. 컷더트래쉬(Cut the Trash) 영문에 소문자 ‘t'가 두 번 들어가는데, 이 부분을 죽어가는 해양생물의 눈으로 표현한 거죠. 캠페인 티셔츠에도 해양 보호종이 죽어가는 모습을 캐릭터로 표현한 제품이 많아요. 다소 잔혹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진솔하게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집합적 에코 임팩트를 키우고파

  • 임소현 대표는 컷더트래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업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브랜드를 런칭한 직후 가장 난항을 겪은 부분도 원단으로 활용할 해양쓰레기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야심 차게 해양쓰레기를 디자인하겠다고 브랜드를 런칭했지만 해양쓰레기를 확보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어요. 직접 어촌에 찾아갔고 고기잡이하는 분들에게도 여쭤봤는데, 모르는 사람이 와서 그런 걸 물어보니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하루에 전화도 50~60통을 돌려보고 관련 업체도 찾아봤지만, 공급처를 찾을 수 없었어요.”
    다행히도, 당시 4개 항만공사에서 창업 아이디어 발굴 해커톤이 진행되고 있었고 해양쓰레기를 업사이클링·리사이클링하는 아이디어로 대상을 수상하며 여수광양항만공사를 통해 해양쓰레기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에코 임팩트를 키우기 위해 컷더트래쉬는 다양한 환경오염에 대한 의식 있는 기업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이전에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데 치중했어요. 그런데 더 다양하고 많은 기업에서 우리 원단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에코 임팩트를 키우는 일이더라고요. 앞으로 환경을 사랑하고 ESG 경영에 관심을 가진 더 많은 기업과 함께 연합해서 집합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데 주력해볼 생각입니다.

    회사 운영을 떠나 임소현 대표의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바로 ‘지속하는 것’. 디자인과 바다를 지키는 일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다. 수익성이 크지 않고,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지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환경을 지키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한다고. 임소현 대표는 이것을 평생의 숙제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