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GAS ESSAY
길들여지는 것에
대하여
[글 전북지역본부 안전환경부 유경혜 주임]
고양이를 키운다고?
“고양이는 어떨까?”
취업을 하며 졸지에 1인 가구가 되어버린 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외로움을 호소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복닥복닥 살아온 터라 그 빈자리와 허전함을 알고 있기에 나도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것을 제안하니 돌아온 물음이 저 모양인 것이다.
어떻겠느냐고? 싫다. 나는 절대 싫다. 동글동글 착한 눈에 애교 많은 강아지라면 몰라도 고양이라니! 내가 그간 만난 고양이들은 한결같이 예민하고 사납고 무섭게 생겼었다. 나는 언니가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그 집에 찾아가지도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다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시무룩해진 언니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객지에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그 모습이 상상되었다.
결국 마음이 약해져 버린 나는 언니와 함께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고양이는 외로움도 안 타서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좋고, 손도 많이 안 간다니 언니를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또 유기 고양이의 새끼를 데려온다니 차마 더는 말릴 수가 없었다.
데려온 녀석은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다. 보송한 털이 빽빽한 아기 고양이의 이름을 ‘구름’이라 붙여주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견된 일인 듯 나와 구름이는 만날 수 없는 양극단 같았다. 고양이가 종종종 뛰어다닐 때면 눈은 가렵고 콧물을 주르르 흐르는 게 나도 몰랐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언니가 구름이를 데리고 올라간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와의 한 집 생활
하지만 문제는 몇 년이 지나고 나타났다. 언니가 내려와서 나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이다. 우선 고양이를 받아주는 집을 찾기가 힘들었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도 막막했다. 알레르기 약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했고, 집도 고양이 집인지 사람 집인지 알 수 없는 형체가 되어가는 것도 답답했다. 그러나 구름이도 가족인 걸 어쩌겠나. 나는 져주는 마음으로 그 둘과 동거를 시작했다.
구름이는 못 본 새 정말 많이 커져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반 작은 반려견 이상으로 커서 처음에는 만지기도 무서웠다. 시작점에서의 나와 구름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간식을 줄 때만 잠시 만나는 사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다 보니 구름이가 서서히 나의 냄새를 맡고, 내 옆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문 앞으로 마중을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마중 나오는 고양이라니! 나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구름이는 날마다 나를 부르고 배를 까뒤집으며 애교를 부렸다. 골골송을 들으며 고양이가 애교가 없고 까칠하다고 생각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들은 그냥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던 것일 뿐이었다.
또 내가 고양이와 함께하며 알게 된 사실은 고양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구름이만 봐도 눈만 마주치면 놀아달라고 조르고 집을 비운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과 떨어져 있으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또 책임감 없이 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구름이를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점프력도 좋은 고양이가 하늘 높이 점프하거나 빠르게 뛸 때면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서로를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과정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안 좋은 점이 많았지만 구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게 좋았다. 매일 낮에 혼자 집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일을 하면서도 궁금하고 걱정될 때가 많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구름이가 딱히 하는 것은 없었지만 낮에 햇살에 누워 잠을 자거나 평온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또 놀아주는 시간도 길어져서 내 마음도 더 편안해졌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이 가장 마음이 아플 때가 아이가 아플 때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구름이가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다. 지병이 도지고 계속 집에서 토를 하는데 언니나 나나 병원에 데려가는 것 이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말을 못 하니 얼마나 아픈지 알 수도 없고 해줄 수 없다는 게 미안한 것 이상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차라리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말이 어떤 건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나아서 자려고 누운 내 배 위에 올라갈 때면 무겁고 방해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나와 함께 살을 맞대고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구름이와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동안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생각하는 게 많아진 것 같다. 나는 소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데 소설 속에서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들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과 관계는 얽혀있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미 나는 구름이에게 길들여진 것 같다. 고양이의 수명은 인간에 비해 너무도 짧아서 구름이가 앞으로 함께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바랄 뿐이다.
※ 다음호 KOGAS ESSAY의 주인공은 전북지역본부 설비운영부 오승아 대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