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愛가면

LOVE KOGAS 그곳愛가면

소크라테스는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는 이가 있더라도 그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기까지는 칭찬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은 제 쓰임을 제대로 찾을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중요한 일에 쓸 줄 알았던 부자들의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가리켜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도 각 지역마다 돈이 지닌 미덕을 제대로 보여준 부자 가문이 있었다. 그들의 미담을 품은 명소를 소개한다.
[글 편집실]

Seoul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 죽는 것은 가치가 있다
우당 이회영 기념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은 가문의 활약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조선 시대 명재상 이항복의 10대손으로,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으로 나라가 패망에 이르자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집단 망명했다. 당시 처분한 재산은 현재 가치로 2조 원에 달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모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은 물론 망명 한인들을 위해 8개의 학교를 세우는 등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사용됐다.

서울 명동성당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우당 선생의 생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일제강점기 때 토지조사사업으로 강제 수용돼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대신 생가 터에서 멀지 않은 신교동 쪽에 우당기념관이 자리한다. 기념관에는 신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당 선생의 활동 기록과 유물 등이 6개 코너에 전시돼 있어 그가 이 땅에 남긴 숭고한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다.

위치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0길 17 유니온빌

↑ 우당기념관 전시물사진

↑ 왼쪽 : 우당6형제분 그림, 오른쪽 : 우당기념관 내부

Gyeongju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자가 없게 하라
경주 교동 최씨 고택

300여 년간 12대에 걸쳐 부자 가문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 가문은 '부자도 길어야 삼대를 못 간다'는 말에서 비켜나 있다. 경주 최씨의 종가인 교동 최씨 고택은 오랜 세월 부를 이어온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최부자 육훈'에서 알 수 있는데, 권력의 탐닉을 막기 위해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한 것을 비롯해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 것,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 것,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등의 가훈이 그것이다. 올바른 부자의 정도를 걸었던 최씨 가문 덕분에 조선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택은 지나칠 수 없는 경주의 명소가 됐다. 고택은 총 99칸으로 지어졌으며 현재는 큰 사랑채와 안채, 솟을대문과 곳간 등만 남아 있으나, 곳간은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최씨 가문의 당시 부의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위치 :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40

↑ 왼쪽 : 최부자댁 전경, 오른쪽 : 최부자댁 풍경

↑ 최부자댁 안채

Jeju

사람을 얻었으니 잃은 것은 없습니다
김만덕 객주

정조 때 제주도에 살던 여성 기업인 김만덕. 드라마를 즐겨본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물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좀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대 조선 땅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자 제주의 자랑이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설움을 딛고 객주를 운영하면서 해상 유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룬 김만덕은 어렵게 일군 재산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들을 위해 쾌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794년 제주도에 거듭되는 재해로 추수를 앞둔 도민들의 살길이 막막해졌는데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까지 풍랑에 침몰하자 김만덕이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내놓아 도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했다고 한다. 당시 김만덕이 운영하던 객주의 터가 제주시 건입동에 자리하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시의 객주 모습을 재현해 체험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김만덕 객주'가 자리한다. 김만덕의 생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객주에서 요기를 한 뒤 객주 터를 둘러보고 인근의 김만덕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