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愛지혜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0년 6월 말 주민등록 인구·세대 현황 분석'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1인 가구는 총 876만 8,414가구로 전체 가구 중 38.5%를 차지했다. 비율만 놓고 보면 1인 가구가 가구 유형에 있어 주류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독거노인의 증가와 20·30대의 비혼 추세를 종합하면 1인 가구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결혼은 비주류가 됐다.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 변화할, 그리고 필요로 하는 느슨한 연대로서의 새로운 가족 형태를 전망해본다.
[정리 편집실 참고도서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김용섭 지음]
느슨한 연대의 필요충분조건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등 '관계'가 지닌 장점은 일부 취하되 연결이 주는 부담과 복잡함을 덜어내고자 하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약한 연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는 기존 관계에 대한 재해석과 변화를 요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결혼관의 변화다. 결혼관이 바뀌면 가족관이 바뀌고 출산과 자녀에 대한 태도도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으며, 미국을 거쳐 지금은 대한민국도 그 변화에 접어들고 있다. "2030년이면 결혼 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다." 세계적 경제석 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이러한 변화를 10년 앞둔 현재, 유럽에서 결혼은 이미 비주류가 됐고 동거가 결혼을 대체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혼인율은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도 사라졌고, 가족 제도로서의 결혼은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가 됐다.
역대 최저 혼인율은 가족이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 제도를 기피하는 것일 뿐, 우리는 여전히 관계를 필요로 한다. 시대는 변화했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뀌었는데 가족 제도는 아직까지도 과거에 머물러 있기에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느슨한 연대로서의 새로운 가족 형태가 필요한 이유다.
다양한 가족 형태의 출현
우리에게는 함께 어울리고 의지해 살아갈 존재가 필요하다. 다만 이제는 그 존재가 혈연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시대가 됐다. 과거 가족은 하나의 경제 단위이고 노동 기반이었다. 결혼이 제도화된 것도 이런 배경과 연관이 있다. 수직적인 권력 구조였던 기존 가족 제도에서 탈피하고자하는 2030세대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평등한 관계가 가족의 핵심이 됐다. 젠더 뉴트럴(성별을 벗어나 한 개인에게 집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트렌드가 된 시대, 가족에 대한 관점에서도 젠더 뉴트럴이 요구되는 셈이다. 더 이상 출산과 대를 잇는 것만이 가족의 기본 조건이 아니다. 동물도 가족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인가구가 큰 비율을 차지하는 오늘날에는 연인 간의 동거뿐 아니라 친구, 이성, 동성 간의 다양한 동거가 이뤄지고 있다. 싱글맘끼리의 동거, 노인들끼리의 동거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이 같은 동거는 모두 법적 제도와 무관해,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이미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 유럽에서 동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1970년대로,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결혼과 동거에 대한 관점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1990년대 들어서는 동거에 대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됐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1999년 프랑스는 시민연대 협약이라는 의미의 '팍스'를 도입했다. 팍스는 정식 결혼은 아니지만 세액 공제를 비롯해 유산 상속, 출산 휴가, 육아휴직 등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보장 받는 등 느슨한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다. 동거보다는 법적 구속력이 강하지만, 한쪽이 협약을 파기하는 것으로 관계의 법적 효력은 끝난다. 또한 이혼처럼 계약을 맺거나 해지할 때 법적 기록이 남지 않는다.
프랑스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면서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이 상승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유럽에서는 동성 커플의 동거 문제와 관련해서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스웨덴은 1988년 동거법을 제정했는데,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동등하게 임신, 출산, 보육, 양육 등에서의 권리를 부여해 아동 수당을 받거나 출산 휴가를 가는 것에서 차별이 없다. 네덜란드도 1998년에 동반자 등록법을 만들어 동성 커플이나 동거 커플도 결혼 커플과 같은 법적의무와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유럽 여러 나라의 관공서 서류에는 가족 형태 표기란에 기혼, 비혼, 동거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가족 형태의 다양성 확보는 개인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1인가구의 높은 증가세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출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고려해 4인 가구에 맞춰져 있는 정부의 복지·조세 정책에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