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산책
인류의 오랜 벗인 반려동물은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영감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화가들은 종종 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새기기도 했을 터다. 동물들은 풍자화에서는 무엇인가를 상징하기도 했고, 초상화에서는 보호자에게 무한한 애정과 충심을 보이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림 속 반려동물을 통해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글 편집실 이미지 출처 한국데이터진흥원]
교감하는 동물, 개
브리턴 리비에르 | 공감 | 1878년작 | 캔버스에 유화 | 121.7×101.5cm | 런던 테이트브리튼 소장
하늘색의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한쪽 팔로 턱을 괴고 계단에 앉아있다. 언뜻 깊은 생각에 빠진 건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방금 억울한 일을 당한 듯 보인다. 소녀의 이 같은 감정은 위로하듯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강아지의 표정에서 짐작 할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브리턴 리비에르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로,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있는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절망에 빠진 듯 이마에 손을 얹고 힘없이 의자에 기대앉은 사내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고 있는 개의 표정이나, 볏짚 위에서 잠든 소년 곁에 웅크리고 앉아 보초를 서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강아지 등 그의 그림속 동물들의 갖가지 표정과 몸짓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 속 상황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동물들이 나오는 작품들 중에서도 아내에게 야단을 맞고 벌을 서고 있는 딸을 그린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그림 제목은 [공감]이다. 개들은 인간의 말을 직접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지금 감정이 어떠한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이 그림은 개의 교감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상황을 보는 것 같아 웃음 짓게 한다.
가족을 묶는 매개체, 고양이
페데리코 바로치 | 고양이의 성모 | 1575년작 | 캔버스에 유채 | 12.7×92.7cm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남자는 탁자에 손을 짚고 지그시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품에 안긴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 하고 아기는 엄마의 무릎에 기대앉은 아이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이는 고양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새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고, 고양이는 아이의 바람대로 손에 들린 새에 시선을 맞춰 상체를 들어 올리고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이들은 없지만 이들은 가족임이 분명하다. 평화로운 한 가정의 일상이 따뜻한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화가 페데리코 바로치는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 격이기도 하다. 주로 종교화를 많이 그렸다. 이 작품의 제목은 [고양이의 성모]로, 그림 제목에 고양이를 쓴 거의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남자는 성 요셉, 아내는 성모마리아, 품에 안긴 아기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이며, 큰 사내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화목한 가정을 더욱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끄는 데 고양이가 한 몫 하고 있는 듯하다.
충직과 수호의 상징
김홍도 | 모구양자 | 견본담채 | 90.7×39.6cm |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나라에서 개는 예로부터 집을 지키거나 썰매를 끌거나, 심부름, 사냥 등 인간의 삶에 다양한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특유의 충성심과 용맹성, 영리함이 매력인 동물인 개는 우리 문화에서 그대로 충직과 수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조상들은 개가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며 악귀를 쫓아 거주 공간을 수호하는 존재로 인식해 [동국세시기]에는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의 재앙이 나간다' '새해가 되면 부적으로 그린 호랑이는 대문에, 개는 광문에, 해태는 부엌문에, 닭은 중문에 붙인다'고도 기록돼 있다. 김홍도를 비롯해 이암, 이경윤, 김두량, 장승업 등 조선의 많은 문인화가들의 그림에도 종종 개가 등장해 민화 속 풍경을 더욱 정겹게 바꾸어 놓는다. 그림은 김홍도의 [모구양자]로, 새끼 두 마리가 노는 모습을 어미 개가 자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