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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구입한 모래가 정말 좋다. 털에 잘 묻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무엇보다 보송보송한 감촉이 오래가는 게 마음에 쏙 든다. 좋아, 앞으로는 이걸로 쭉 정착하겠어! 해외 직구로 구매하고 가격도 비싸지만 지인 씨는 반려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며칠 뒤 지방으로 이틀간 출장 가 있는 동안 반려묘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어 사촌 동생에게 잠시 맡기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양이 건강에 좋다며 새로 나온 수제 간식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 고양이들은 도도해서 하루 이틀은 주인 없이도 곧잘 지낸다던데, 지인 씨의 반려묘는 사람을 잘 따르는 전형적인 '개냥이'다. 지인 씨가 출근하면 가지 말라고 문 앞까지 쫓아 나와 울고, 퇴근하면등을 비비며 반겨준다. 꼬리까지 흔들었다면 강아지로 착각할 정도다.
고양이들도 점점 강아지처럼 변하는 걸까?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
유지현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공인회계사(AICPA)를 취득했다. 포스코 인사부와 현대건설 재정부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류학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생물인류학 연구실에서 마음과 행동의 진화에 관해 연구 중이다. [비협력자에 대한 처벌과 평판: 처벌의 비싼 신호 보내기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인간의 집단 협력과 처벌의 공진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강아지 주인이 먼저인가, 고양이 집사가 먼저인가?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고양이는 약 300만 년 전에 최초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보다 더 전부터 존재하던 사자, 호랑이 표범 등 대형 고양잇과 동물을 포함한 고양잇과 동물의 공통조상 역시 지금의 고양이와 더 유사한 모습이었다. 반면 개는 늑대, 여우, 너구리 등 개과 동물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타난 종이다. 개는 길어야 3만 년에서 1만 7천 년 전 사이에 회색 늑대에서 분기하여 새로운 종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개의 진화는 다른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다. 바로 인간 때문에 새로 생긴 종이라는 점이다. 개가 가축화된 시기는 3만 년에서 1만 7천 년 전 사이로 학자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농업 혁명 이전, 인류가 아직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에 회색 늑대 중 일부가 가축화되어 나타난 새로운 종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개는 인류가 최초로 길들이고 가축화한 동물이다. 반면 고양이는 사람들이 농경을 시작하고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게 되면서 쥐가 창고에 모이게 되고, 쥐를 찾아 사람들의 거주지로 야생 고양이가 내려오면서 공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이의 가축화 증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9천 5백 년 전 것으로 키프로스에서 발견됐다. 결국, 고양이가 개보다 먼저 진화해 지구상에 출연했으나 강아지의 주인이 고양이 집사보다 더 먼저 있었던 듯하다. 개는 인간이 가축화에 성공한 가장 최초의 동물일 뿐만 아니라, 태생 자체가 인간의 가축화에 의해 새로 생겨난 종이다.
모글리와 아켈라: 회색 늑대에서 개로
알고 있는가? [정글북]에서 부모를 잃은 아기 모글리를 거두고 키운 아켈라가 바로 회색 늑대라는 것을. 한때 개의 조상으로 여우와 늑대, 야생 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적도 있었지만, 현대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개는 분명 가축화된 회색 늑대다. 마지막 빙하기 후기에 지금의 개가 된 회색 늑대의 일부가 수렵 채집을 하던 유라시아 대륙 인구 집단 중 하나 또는 몇몇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초기 유전자 분석 결과는 개의 동아시아 단일 기원을 암시했으나, 고고학적으로는 유럽 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더 오래전에 개가 출현했다는 화석 증거들이 다수 발견돼 늑대가 어디서 처음 가축화되어 개가 되었는지는 수수께끼였다. 2016년에 고대 개와 현대 개의 모든 염기 서열을 분석해 개의 조상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가축화되었고 이후 동아시아 고대 개가 유럽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유럽 고대 개와 교배하며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졌다는 가설이 유력해졌다.
어린 왕자와 여우: 누가 누구를 길들였나?
"네가 나를 길들이면 정말 근사할 거야! 제발 나를 길들여줘, 부탁이야!" 여우의 부탁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개는 모든 동물 중에 가장 먼저 인간과 공생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동식물을 길들여 목동과 농부가 되기 전, 회색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을까? 그 당시 인류는 아직 동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사실도,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가축화는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으로, 인간이 먼저 야생 늑대를 포획해 의도적으로 가축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구를 선택한 것일까? 인류학자인 엘리스 로버츠에 따르면 늑대가 가축화된 종인 개로 진화한 과정에 인간의 의식적인 의도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늑대 중 일부가 인간 거주지 근처에서 음식 찌꺼기를 뒤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는 캠프 근처로 자주 접근해왔고, 몇몇은 적극적으로 사냥꾼을 따라다니며 사냥감을 함께 쫓기도 하면서 사냥에 성공하면 내장이나 뼈 같은 부산물을 얻었을 것이다. 누가 누굴 길들인 걸까? 늑대가 사람을 선택했든 사람이 늑대를 선택했든지 간에, 이 관계는 인간의 운명을 바꾸고 몇몇 늑대를 개로 바꾸었다.
정말 여우를 길들인 사람
1959년 러시아의 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는 어린 왕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은여우를 길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매 세대 가장 순한 여우들을 선택해 그들끼리 교배시켰다. 열 세대가 지나자 매우 순한 여우들이 전체 집단의 20% 정도가 되었고, 서른 세대가지나자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이 실험은 2006년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 실험 집단의 거의 모든 여우가 개와 같은 정도로 인간에게 친근하고 순한 행동을 보였다. 그런데 순한 행동만을 선택적으로 육종하였음에도 여우의 행동뿐만 아니라 털 색깔이 다양해지고 다리와 주둥이가 짧아졌으며 두개골이 넓적해지는 등 생김새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또 순한 암 여우들은 번식 주기가 짧아졌으며, 성적으로 더 빨리 성숙했다. 가축화된 여우는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매우 낮았고, 세로토닌 수치는 높았다. 낮은 코르티솔 수치는 가축화된 동물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또한 높은 세로토닌 수치는 공격성 억제와도 관련이 있다.
인간, 스스로를 길들인 동물
신기하게도 우리와 우리가 길들인 동물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존재한다. 개, 그리고 길들여진 은여우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조상들보다 뼈가 가늘어지고 얼굴이 납작해졌으며, 번식 주기가 짧아지고 유아는 천천히 자란다. 또, 송곳니가 작아지고 공격성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형질들을 '가축화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감소와도 연관이 있다. 인간 집단이 점차 커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공격적인 사람은 다른 집단 구성원에게 배제되어 추방자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공격적인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관용적이고 관대한 사람이 사회적 파트너로 선호되고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졌다면, 그 형질이 인류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졌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망에 의존하며 더 가까운 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길들이게 된 것이다.
공감의 동심원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듯 그들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연구가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신체적, 심리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밝혀왔다. 반려동물의 존재는 아이들의 공감 능력, 사회적 통합 능력을 증가시키고 공격성을 낮춘다. 친근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코르티솔 수준을 감소시키고, 옥시토신, 도파민, 엔도르핀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반려동물과 유대가 강한 어린이의 경우 사회적 유능감과 공감 점수가 높은 경향이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 요양원 환자들에게 6주간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게 하자 우울증 증상이 크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과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길들여진 가축, 야생의 동식물 모든 종은 지구 생태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존하고 있다. 피터 싱어는 역사상 인류는 거듭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존재, 윤리적 행위의 대상이 되는 다른 집단의 범위를 넓혀왔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인류의 '공감의 동심원'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일까? 한때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짐승 취급하고 죽이거나 노예로삼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를 지나 우리는 모든 인간의 천부인권을 논하며 반려동물은 이제 또 다른 가족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하에 동물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종 차별주의를 넘어 우리 마음속 공감의 동심원을 크게 확장시킬 때다.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영화 셋
아름다운 여행
도시에 사는 14살 토마는 엄마가 업무 바빠지면서 조류학자 아빠가 머무는 생태습지로 보내진다. 따분하게 지내던 토마가 어느 날 농장을 둘러보다가 새끼 기러기의 탄생을 보게 되고, 그들은 소중한 친구가 된다. 아빠와 토마는 그들을 데리고 안전 항로 개척을 위해 노르웨이로 간다. 하지만 당국의 방해로 토마와 기러기 가족은 유럽대륙을 가로지르는 위대한 여행을 감행한다.
하치 이야기
대학교수인 파커는 퇴근길에 우연히 길 잃은 강아지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다. 품종이 일본 견인 데 착안해 '하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강아지를 극진히 보살피는 파커. 그런 마음이 통한 걸까? 하치는 파커의 출근길을 배웅하고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기차역에 나와 그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파커가 강단에서 강연 중 쓰러지고, 하치는 오지 않는 주인을 매일같이 기다리는데….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혼자가 된 제임스는 힘든 상황을 잊고자 마약에 손을대고, 이후 그의 삶은 나락에 빠진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약을 끊지만 삶은 변한 것이 없다. 버스킹 공연으로 근근이 먹고 살던 그는 우연히 상처 입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제임스는 고양이를 치료해주고 발견했던 장소에 데려다놓지만 어느새 고양이는 그의 공연 길에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