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수도이자 우리나라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천년의 도시. 얼마 전부터 경주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석굴암과 불국사 등 문화재 중심에서 카페와 갤러리가 즐비한 감성의 거리로 탈바꿈된 것. 오랫동안 서라벌 곳곳을 누비며 데이트를 즐겼다는 신혼부부의 발길이 이번엔 젊음이 넘치는 황리단길로 향한다.
모든 여행자들을 품은 마음의 고향. 경주가 태어난 곳이 아닐지라도 이곳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부에게도 이곳 경주는 나름 의미가 있다.
“경주는 사시사철 찾는 단골 데이트장소랍니다. 아내와 저는 13년도에 입사한 동기인데요. 비교적 오지인 삼척LNG기지에서 근무하며 지내다보니 서로를 챙겨주는 그런 마음이 통한 것 같아요. 실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와이프를 첫 눈에 보자마자 반했지 뭐예요(웃음).”
권오덕 과장의 입가엔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4월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에게 오늘 여행은 연애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 여행에서 부부가 처음 찾은 포토존은 경주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첨성대. 천년 이상 우아한 곡선을 유지하고 있는 구조물을 배경으로 부부는 영원한 애정을 기약한다.
“8년 동안 연애하면서 경주를 참 많이 찾았어요. 특히 첨성대 주변엔 벚꽃이 정말 유명해서 봄에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겼죠. 주변이 평지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편하고, 여러 유적지와 볼거리가 모여 있어서 여행하기는 참 좋은 환경이죠.”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는 인왕동의 들판에서 유경혜 대리는 봄날 같은 신혼의 상큼함을 간직하고자 한다. 제주의 오름처럼 수많은 왕릉이 즐비한 이곳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시내와 가깝고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어 자가용 없이도 손쉽게 여행이 가능하다. 경주박물관과 동궁과월지, 천마총, 미추왕릉, 교촌마을, 경주계림, 경주석빙고 등의 유적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이곳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겨울에 찾는 경주의 매력이란, 드라마세트장처럼 한옥이 많은 이곳이 눈으로 덮일 때예요. 골목길을 걸을 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즐겁기도 하고,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신기하기도 하거든요. 계절마다 해바라기, 핑크뮬리 등으로 예쁘게 장식하며 사시사철 언제든지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이곳을 찾는 이유인 것 같아요.”
유경혜 대리에겐 경주 여행이 언제나 즐겁다. 연인이 된 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곳을 찾는다는 부부에게 단비가 내리는 지금도 낭만이 가득하다.
한겨울에도 경주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건 대원릉 주변이 개발되면서부터다. 낡은 옛건물을 개조해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고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유적지 바로 옆 허름한 한옥거리가 핫플레이스로 거듭나면서 그럴 듯한 이름도 얻었다. ‘황리단길’이란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란 뜻에서 유래한다. 황리단길의 가장 큰 메리트는 첨성대, 대릉원과 인접해 있고 시내에서 도보로 15분 만에 닿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젊은이들의 당일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몇 년 만에 경주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걸 보면 경주가 확실히 젊어진 느낌이에요.”
카페거리를 걸으며 권오덕 과장은 고풍스런 도시의 새로운 변화에 만족하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는 사색과 여유가 필요할 때 와이프와 함께 가끔씩 한적한 곳을 찾는다고 한다. 어깨가 부딪히는 번잡한 거리를 피해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우들을 위해 그는 불국사 주변을 추천한다. “불국사 주변은 단풍 질 때가 너무나 예뻐요. 결혼 전 자전거를 타고 오르며 고생한 적이 있는데 다리가 튼튼(?)하다면 누구나 도전할 만한 곳입니다(웃음).”
유경혜 대리는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로 경주 바닷길을 권한다. “월성원전 주변은 개발이 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요. 해안도로 중간 중간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어서 차를 마시고 사진 찍기에도 정말 좋아요.”
권오덕, 유경혜 부부는 지금도 애정이 넘치는 연애시절을 경험하는 중이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젊음이 공존하는 경주로 사우들을 초대한다.
입사 동기이자 룸메이트인 이들에게 여행은 우정을 다져주는 일상의 재료가 되었다. 호수 건너 바다를 마주한 평택에서 틈틈이 산책길에 걸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그들에게 이번 여행의 주제는 ‘멋진 20대 마무리하기’. 친자매처럼 돈독한 이들의 일기장에 또 한 번 신나는 여행기로 채워진다.
바다와도 같은 거대한 호수. 그 앞에 서자마자 마음이 시원하게 적셔지더니 갈증도 순식간에 해소된다. 2018년에 입사한 박상은, 임승희 주임이 올해 첫 여행지로 꼽은 곳은 서쪽바다를 길게 품은 평택. 근무지와 일치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일상으로 자리 잡은 여행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해 사택에서 가까운 장소를 코스로 정했다.
“시간 날 때마다 많이 여행을 다니려고 해요. 카메라도 새로 장만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승희 언니와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싶어요.” 회사 밖에서 박상은 주임이 임승희 주임을 부를 땐 직함이 필요 없다. 이들이 룸메이트가 된 지 4년째, 이제는 말하지 않더라도 ‘척하면 척’ 서로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다정한 자매가 되었다.
“박 주임을 처음 봤을 때 항상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어요. 성격이 매우 밝고 낯을 가리지 않는 타입이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사려 깊은 그의 마음씨 덕분에 아무런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매가 손을 마주 잡고 처음 찾아간 곳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수도사(修道寺). 9세기에 지어진 수도사는 평택에서도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 사찰음식 체험행사와 템플스테이를 열며 길손들을 맞는다. 운이 좋으면 인심 좋은 스님으로부터 공짜로 산나물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하니 사월초파일에 맞춰 봄날의 식객으로 이곳을 찾으면 좋을 일이다. 수도사에는 원효의 깨달음을 가상으로 체험하는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다. 아쉽게도 겨울에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봄날을 기약해본다.
수도사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 이들은 평택호를 향해 차를 몰았다. 요상한 것은 평택호를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평택호는 경기도 평택과 충남 아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안성천의 바닷길에 방조제가 놓이면서 형성된 인공호수로, 행정상의 공식 이름은 ‘아산호’다. 평택시가 호수 주변에 관광단지와 수변공원을 조성하면서 사람들에겐 평택호란 이름이 더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바다만큼이나 큰 평택호의 물길을 막은 아산방조제는 바다쪽으로 조금씩 물을 흘려보낸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바다쪽에는 플랑크톤과 유기물이 많아 물고기들이 많이 모이고, 그런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러 모래톱엔 겨울철새들이 띄엄띄엄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다. 아산방조제와 연결된 평택호관광단지는 평택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로 ‘계두봉 3.1운동 만세 시위지’부터 국악의 아버지인 지영희 선생을 기리는 ‘한국소리터’와 공룡화석전시장, 자동차극장 등 온갖 구경거리가 가득하다.
“이곳은 저희가 즐겨 찾는 산책코스예요. 입사 직후엔 시간이 맞다 싶으면 둘이서 참 많은 곳을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근무형태가 바뀌면서 예전만큼 시간을 못 내고 있어요. 사우 분들이 평택에서 맛집을 찾고 싶으면 미군기지 주변을 적극 추천합니다. 이태원처럼 외국 느낌도 나고 구경할 곳이 많거든요.”
이들이 여행을 다닌 곳은 평택 뿐 만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베트남을 찾아 자유여행을 즐길 정도로 친자매 이상의 우애를 다지고 있단다. 비행기를 타고 지도 밖을 나서는 해외여행 말고도 틈틈이 산책을 통해 여행의 묘미를 즐기고 있으니, 벤치에 앉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묵은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것만 같아 즐겁기만 하다.
“얼마 전 제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저에게 사택을 양보하고 박 주임이 집에서 먼 길을 출퇴근했거든요. 그 후 박 주임은 자신이 감염됐을 때도 저를 사택에 머물도록 배려하고 정작 자기는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저의 편의를 봐줬어요.”
임 주임은 사택을 비우면서까지 자신을 보살펴준 박 주임이 고맙기만 하다. 박 주임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마음껏 찡찡대고 투덜댈 수 있는 사람은 언니뿐”이라며 “임 주임을 친언니처럼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
잘 정비된 호수 산책로를 걷다보면 물 위에서 기러기들도 함께 날아오른다. 데크를 따라 호수 안쪽으로 올라가면 루브르박물관을 본 따 만든 평택호예술관이 나온다. 유리 피라미드로 지붕과 첨탑을 만든 것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 어렵지 않게 이곳을 찾을 수 있다. 평택호예술관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2월부터 재개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평택호예술관을 등지고 앉아 임승희 주임은 “스물아홉 살 박 주임이 20대를 근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더 많은 여행을 다니며 알찬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박 주임도 언니의 손을 잡으며 “룸메이트로 지내는 동안 앞으로도 예쁜 동생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고 싶다”며 올 한해를 계획해본다. 룸메이트가 오늘 걸은 평택호수 산책길은 호수만큼이나 그 우정이 깊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