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석탄에 수소를 첨가하여 석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효율은 대단히 낮지만, 역으로 그렇게라도 해서 석유를 생산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자원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낮은 공업 수준으로 인해 결국 포기하게 된다. 정어리를 이용하는 방안도 후보에 올랐다. 당시 엄청난 어획량을 보이던 정어리를 이용하여 기름을 짜내 난방유는 물론 선박 연료로도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 모를 엄청난 어획고를 보이던 정어리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어리기름으로는 연료의 자립은커녕 석유의 대체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당시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는 석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본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석유 탐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석유 탐사 기술도, 시추 기술도, 심지어 운까지도 부족했다. 30년 가까이 만주에서 유전을 찾던 일본은 결국 포기하고 만다. 이제 일본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미국의 조건을 받아들여 중일전쟁을 멈추고 점령지의 이권을 포기하고 종국엔 군국주의를 포기하거나, 다른 곳에서 석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협상 테이블 위에 조선의 독립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만주국만 있을 따름이었다.)
일본은 석유를 확보하기로 했다. 남방작전을 통해 동남아를 동시 침공해 각종 자원을 확보하면서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의 유전을 차지하고자 했다. 마침 당시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았던 연합국들은 유럽 내 전쟁으로 인해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필 인도네시아의 유전과 일본 본토 사이에는 미국령 필리핀이 버티고 있었다. 결국 일본 입장에서 거리낄 것은 단 하나, 미국의 태평양 함대였다. 태평양 함대의 기지였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서 궤멸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그렇게 일본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전쟁은 처음부터 석유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석유 자원의 중요도는 그 어떤 자원과도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특히 열강 중 하나가 되고자 군국주의 노선을 택하고 전쟁 특수로 경제를 팽창시키던 일본은 대공황의 타개책으로 만주국을 세웠고 이어 중일전쟁까지 일으키며 팽창 야욕을 드러냈다. 열강들이 즐비하던 당시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석유 자원은 필수였고, 안정적인 석유 공급망이 없던 일본의 약점은 바로 석유였다. 일본에 석유를 공급하는 미국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를 사용했다. 경제가 붕괴할 위기에 절박해진 일본은 석유 자원의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를 침공했고, 인도네시아 유전에서 공급되는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 태평양 함대를 공격한 것이다. 처음부터 국가 총력전으로 가면 미국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도 미국과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모습에서, 또한 진주만 공습 당시 유류저장고가 무사한 덕에 미국의 반격이 빠를 수 있었다고 분석하는 니미츠 제독의 말에서 석유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본이 그렇게 찾다 포기한 만주의 다칭 유전은 1959년 9월에 발견되어 중국에 석유를 공급한다. 어떤 역사학자는 만약 일본이 만주에서 다칭 유전을 발견하여 석유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태평양전쟁은 물론 중일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을 향한 수탈과 강제 동원의 이유가, 또한 사지로 몰아넣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땀과 희생의 이유가 석유 자원의 확보라는 점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최근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는 러시아를 바라보며 정말 역사는 반복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