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 개체군의 90% 이상이 서해안에서 번식하는 저어새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휘휘 저어 먹이를 찾는 저어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에 해당한다. 3월 말부터 7월까지 평균 3개의 알을 낳고 대만, 홍콩, 일본, 중국 동남부, 베트남, 필리핀에서 겨울을 나는 여름 철새다.
저어새는 1950년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1989~1990년 294마리까지 감소했고, 1994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저어새를 적색목록에 심각한 멸종위급종(CR)으로 지정했다. 저어새 수가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DDT 농약 때문이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조류팀은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2018~2027년)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267종 중 우선복원 대상종인 저어새, 황새, 따오기, 양비둘기의 보전을 위한 조사·연구 작업을 수행한다.
윤종민 팀장은 저어새가 국민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새라고 강조한다.
“멸종위기에 처한 새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주로 번식하는 새는 저어새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국립생태원은 2020년 12월, 저어새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함께 모으는 인천 저어새 공존협의체를 발족했다. 저어새 보전에서 인천은 핵심 지역이다. 저어새 번식 개체군의 90% 이상이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번식하고, 서해안 중에서도 인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저어새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인천 일대 12개 섬에서 국내 저어새 번식 개체군의 약 76%(1,400여 쌍)가 번식했다. 저어새 대부분의 고향이 인천인 셈이다.
2022년 6월 30일 한국가스공사-국립생태원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협력 업무협약 체결
올 6월에는 한국가스공사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저어새 보전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인천 LNG 생산기지 반경 30km 이내에 저어새 집단번식지 6곳이 있어 저어새 보전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올 하반기에는 인천 저어새 공존협의체에 가입할 예정이다.
“2022년 1월 기준 저어새는 6,162마리가 살아 있다고 추산합니다. 지자체, 시민들의 저어새에 관한 관심과 참여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저어새 수가 증가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에 한국가스공사와의 협력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 수하암과 각시암, 남동유수지 등 저어새 서식지의 환경을 개선하고 위협 요인을 관리하며, 한국가스공사 임직원 그리고 가족을 대상으로 저어새 생태교육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시민 참여형 전국 모니터링단도 운영해 저어새가 잘 번식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예정입니다. 국립생태원과 한국가스공사의 협력이 좋은 성공사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6,162마리에 불과한 저어새와 인간이 공존하려면
윤종민 팀장
2019년 5월 조류팀은 인천 강화군 각시암에서 저어새 알 10개를 구조해냈다. 많은 수의 저어새가 한정된 공간에서 둥지 자리를 두고 경쟁하면, 경쟁에서 밀린 저어새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 알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알들 역시 조류팀이 구조하지 않았더라면 썰물이 들어올 때 떠내려갔을 것이다.
조류팀은 알들을 부화시켜 4마리를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조류팀 황종경 전임연구원은 이때 저어새를 키우느라 무릎 통증을 얻었다.
“저어새는 만숙성이 있어 어느 정도까지는 어미새가 돌봐야 합니다. 미꾸라지와 새우를 갈아 먹이를 준비하고 방역복을 저어새 생김새와 비슷하게 꾸며 유조(새끼새)에게 밥을 줬어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역복을 입고 있어 힘들었지만,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서 먹이를 줘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먹이를 주사기에 넣어 한 마리씩 주거든요. 그런데 저어새가 어느 정도 크면 먹이를 안 먹겠다고 거부해요. 저어새와 씨름하다 보면 한 마리 밥을 주는 데만 30분이 걸렸습니다. 제 무릎 건강을 내주고 저어새를 키웠죠.”
조류팀은 인천 송도갯벌에서 구조한 유조 한 마리를 포함해 다섯 마리를 야생 적응 훈련을 거쳐 2020년 7월 강화군 선두4리 갯벌에서 방사했다.
“방사했을 때 황종경 전임연구원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아무리 훈련을 했다 하더라도 자연에서는 아무래도 적응 능력이 떨어집니다. 야생에서 자란 저어새와 경쟁했을 때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어새를 보낼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군대 보내는 마음이었다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또 1년 넘게 고생한 순간도 떠올라 눈물이 나왔습니다.”
올해 조류팀은 방사한 다섯 마리 중 세 마리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어새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매립·개발 사업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해양 오염, 번식지 내 포식자(수리부엉이, 너구리) 침입 등이다. 수리부엉이는 주로 저어새 새끼를 잡아먹고, 너구리는 알을 먹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저어새가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기에 경보기나 울타리, 포획 트랩 등을 설치해 수리부엉이나 너구리로부터 저어새를 보호한다.
저어새는 무인도에서 번식한다. 그러나 무인도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바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다. 조류팀은 저어새의 생존을 위협하는 쓰레기를 열심히 치우다 보면 저어새를 관찰하러 왔는지, 쓰레기를 치우러 왔는지 허탈해 질 때가 많다.
윤종민 팀장은 바다에 흘러들어간 플라스틱이 부서져 만들어진 미세플라스틱이 새들에게 끼치는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새들에게 가장 위험하다는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자료가 없어요. 앞으로 이 부분도 주목해야 합니다.”
황종경 전임연구원
황종경 전임연구원은 해양쓰레기 중 하나인 낚싯줄에 저어새가 걸리면 매우 치명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낚싯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저어새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부리를 저어서 먹이를 찾을 때 낚싯줄에 걸릴 수 있거든요. 이번에 출장 가서 본 저어새는 다리와 부리에 낚싯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풀어주려 했는데 날아가 버려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낚싯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팽팽하게 감겨버려요. 다리에 감기면 괴사해 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부리에 감기면 먹이를 먹을 수 없어 죽음에 이릅니다. 지난주에 본 저어새 역시 조만간 폐사할 확률이 높습니다.”
1년에 100일 이상 저어새를 관찰하는 황종경 전임연구원은 저어새를 볼 때 반가움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저어새가 겨울을 나고 다시 우리나라 서해안을 찾았을 때 반가워요. 살아서 돌아왔구나. 그러면 이제 번식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어요. ‘올해는 피해가 발생하면 안 되는데’하면서요.”
윤종민 팀장은 저어새를 생각하면 저어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저어새는 우리나라가 좋다고 돌아오는 새입니다. 그런데 저어새가 돌아올 동안 사람들은 저어새 서식지의 갯벌을 매립하고, 건물을 올려요. 조류팀에서 ‘공공의 법칙’이라는 표현을 슬로건처럼 자주 쓰는데요, ‘공유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과 새는 다 엮여있어요. ‘불청객’으로 여겨지는 떼까마귀만 해도 인간이 이용하는 공간은 넓어지고, 서식지는 좁아져 부딪히는 문제거든요.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는 나가야죠. 저어새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제 공유와 공존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럼에도 윤종민 팀장은 저어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갯벌 매립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해양쓰레기 증가…. 저어새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저어새가 건강히 살고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해 저어새 보전 업무를 할 필요가 없어질 때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멸종되면 손 쓸 수가 없다.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1만 마리에 부족한 6,162마리가 살고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