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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직장인을 위한 쉼의 기술
[글 이현주 임상심리 전문가, 심리학 박사, <나는 균형 있게 살기로 결심했다> 저자]
맡은 바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은 바람직한 덕목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서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알차게 사용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은 주변의 신뢰와 인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모든 시간이 완수해야 할 과제로만 채워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가 타버리듯이, 팽팽하게 바람이 찬 풍선이 쉽게 터져버리듯이 만일, 사람도 적절한 휴식 없이 일만 하게 된다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심리적 소진상태를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누적된 심한 피로감으로 매사에 무기력하고 의욕을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아웃 상태에 이르게 되면, 업무에 대한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고, 자신과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요즘 업무에 예전처럼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 차려 보면 멍하게 앉아있고는 하는데, 그런 제가 정말 한심해 보여요. 작년 말에 업무를 바꾸면서부터 일이 많아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휴가를 가도 회사로 돌아가면 일이 밀려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요.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몸은 퇴근을 해도 정신은 퇴근이 안 됩니다. 집에 가서도 업무 생각이 자꾸 나고, 오늘 마치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내일은 무얼 해야 하나를 미리 생각합니다. 생각이 많아서인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새벽에 자꾸 깨고, 한 번 깨면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잠을 못 드니 출근해도 머리가 맑지 않아요. 이러다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혹시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거나 하고 있다면, 내 안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자동차 연료램프가 들어오면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야 하듯이, 번아웃 경고등이 켜졌다면 쉼이 필요합니다. 시기적절한 휴식은 마음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서 동기를 회복시켜 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관성에 본인의 의지를 잃은 채, 지쳐 쓰러질 것 같지만 속도를 조절하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내담자를 종종 만납니다. 이제 좀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천천히 가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고, 잠시 멈추면 지금까지 쌓아온 평판과 성과에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어찌 하지 못하고 휩쓸려가는 것은 지금까지 천천히 가거나 멈추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빨리 가는 방법을 익히는 데에는 열의를 기울이지만 쉬어가는 방법은 딱히 배우려고 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할 일을 계획하지만, 주어진 시간과 나의 기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변 상황과 나의 현 상태를 기준으로 볼 때 지금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과연 현실적으로 타당한지를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표는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과 나의 현 상태를 고려하여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번아웃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궁극적 목표는 높게 설정했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속도를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단계적인 목표를 하나씩 이룰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긴장이 누적되지 않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충전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휴식이란 단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활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즐거움 목록을 작성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를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난 일주일 혹은 한 달 동안 가장 괜찮았던 하루를 떠올려서 그 날에 있었던 일을 확인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목록은 여러 가지 일수록 에너지를 충전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여행이나 쇼핑 같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특별한 활동이외에, 산책이나 좋아하는 음료나 음악 등과 같은 일상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할 수 있는 활동들이 포함된다면 목록을 활용하는 데에 더 효과적입니다.
번아웃에 이르도록 자신을 몰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취지향적이고 계획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을 강하게 지닌 경우에 목표를 향해서 가느라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것도 깨닫지 못하다가 번아웃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목표지향적이고 계획적인 경향이 뚜렷하다면 휴식시간을 계획에 포함하도록 합니다. 즐거움 목록 중에 업무 중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서 주기적으로 하는 것도 좋습니다. 처방전을 쓰는 것처럼, 번아웃 경고등이 켜졌다면 즐거움 목록 중에 적당한 것을 선택해서 ‘주 2회에 ○○분씩 하기’와 같이 자가 처방을 내려 보세요.
마음이 지치면 자신과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치우치게 됩니다.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균형을 잡으면 주관적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가 대체로 1.6:1.0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 더 비중을 두어서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모습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수행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와 함께 이루어낸 성과도 함께 생각하도록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자신을 칭찬하는 것도 부정적 방향으로 치우친 균형을 회복하는 데에 좋은 방법입니다. 자기 칭찬은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