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미얀마의 외딴 공간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더디고 경이롭다. 발로 노를 젓는 고산족들은 새벽 호수에 몸을 기대고, 불교 성지 바간의 사원들은 일몰 속에 숨을 고른다.
[글 사진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발로 노 젓는 인따족 사람들
미얀마 북동부 인레 호수의 새벽은 몽환적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수상 사원에서 흘러나온 불경 소리가 호수 위에 낮게 깔린다. 호수에 거주하는 고산족은 장대로 물을 내리치며 여명 속을 가로지른다. 평생 경험하지 못할 벅찬 아침이 그곳에 있다. 인레 호수는 해발 880m 고지대에 고즈넉하게 들어선 산정호수다. 길이 22km, 폭 11km의 호수는 미얀마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호수가 속한 미얀마 동북부의 샨 지방은 라오스 접경에 위치한 고산족들의 오랜 터전이다. 붉은 두건을 머리에 감싸거나 목에 굴렁쇠를 찬 부족과 마주치는 것이 이곳에서는 흔한 일과다. 인레 호수에는 동화 같은 호수마을 사람들이 현실로 등장한다. 인따족들은 호수에서 태어나 물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생경한 삶을 살아간다. 인따족의 미얀마 이름에는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인따족들은 노를 발에 걸어 젓는 독특한 풍습을 지녔다. 호수가 넓어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데 노를 젓는 이색 동작에는 노인, 아이가 따로 없다. 등교하는 꼬마들도 수로를 따라 한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의 아침을 맞는다.
인레 호수에 펼쳐진 삶의 단상
인따족들은 해 뜰 녘이면 고기를 잡고, 낮에는 수경재배를 하며 살아간다. 장대를 물 위에 내려쳐 고기를 잡는 모습은 불경 소리와 어우러져 묘한 정적을 만들어낸다. 나룻배에 도열한 채 장대를 내리치는 장면은 의식을 치르듯 거룩하다. 마을 곁으로는 수상 재배지가 늘어서 있는데 이들은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이용해 밭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뒤 토마토 등 야채를 재배해 자급자족한다. 수상 사원, 수상 시장, 직물공장, 대장간 등 물 위에는 그들만의 군락이 옹기종기 형성돼 있다. 호수 주변의 장터는 인근에 사는 고산족들이 유일하게 만나는 시끌벅적한 공간이다. 호수 일대에는 인따족 외에도 샨족, 카렌족, 빠우족이 거주하는데 다양한 외관의 부족들은 물과 산에서 난 생선과 곡물, 외부에서 들여온 잡화들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한다. 뙤약볕을 막기 위해 얼굴에 '타네카'라는 하얀 나뭇가루를 칠한 모습은 여인네들의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우기를 견뎌낸 호수는 수위가 높아지면 외부와의 통행은 잠시 더뎌진다. 부처를 배에 태우고 수상가옥을 순회하는 빠웅 도우 축제나 빠우족들의 잔치인 까띠나 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 때쯤이다. 인레 호수 일대는 1~2월이면 다시 야생화를 피워내며 트레킹 마니아들에게 아득한 산악 마을 풍경을 선사한다.
바간, 황토빛 사원에서의 명상
미얀마에서의 깊은 휴식은 중부 바간에서 완성된다. 바간의 불탑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마른 바람이 황토빛 사원과 탑 사이를 스쳐 지난다. 바간은 융성했던 미얀마 불교의 흔적을 간직한 곳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 중 한 곳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어깨를 견주는 불교 성지로 천 년 전 건설된 2500여 개의 탑과 사원들이 거친 땅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다. 11세기 바간 왕조 당시 전국에는 400만 개가 넘는 사원이 건립될 정도로 미얀마의 불교문화는 번성했다. 오랜 생채기를 지닌 바간의 탑들은 꼭대기로 연결되는 좁은 길을 통해 속세와 이어진다. 담마양지 사원, 아난다 사원 등 웅대한 사원들도 있지만 인적 뜸한 돌탑에서 홀로 만끽하는 시간 역시 엄숙하다. 이방인들은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에서 드넓은 평원과 시선을 맞춘다. 바간의 클라이맥스는 세산도 사원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수백 개의 탑 너머로 해가 지는데 장엄한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벌룬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방인도 있다. 해넘이로 이어지는 시간만큼은 탑 위에 기대선 사람들은 미동도 않고 말도 없다. 해가 저물고 침묵의 찰나 뒤, 불경 소리만이 나지막하게 들판 위를 맴돈다. 종교, 피부색과 관계없이 얼굴이 발갛게 물들 때까지 뭉클한 감동이 번져나간다.
도시의 변신 담아낸 옛 수도 양곤
미얀마가 소수민족과 불교문화로만 채색된 것은 아니다. 도시인의 일상은 최대 상업도시이자 옛 수도였던 양곤에 짙게 담겨 있다. 양곤의 단상은 묘한 대비 속에서 빛을 발한다. 양곤의 중심인 쉐다곤 파고다의 풍경과 신세대들이 몰려드는 인야 호수의 모습이 다르다. 서울의 강남 같은 골든 밸리와 양곤 강 건너 낙후된 '달라' 지역 역시 지독한 삶의 차이를 보여준다.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의 상징이자 성지처럼 여겨지는 탑이다. 높이 99m에 달하는 금빛 탑은 탑 외관이 실제 황금으로 단장돼 있다. 쉐다곤은 종교이자 삶터이고 휴식처이기도 하다. 큰방에서는 승려들이 수행을 하고 연인들은 경내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가족들은 불전 안에서 도시락도 먹고 낮잠도 잔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인들이 평생소원으로 꿈꾸는, 생전에 한번은 방문해야 할 메카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쉐다곤 파고다 옆에는 인공호수인 깐도지 호수가 들어서 있다. 깐도지에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면 양곤대학교 옆 인야 호수는 양곤 청춘들의 아지트다. 도심 사쿠라 타워 20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는 양곤의 패션리더들이 드나들며 환담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술레 파고다까지, 주말이면 공연이 열리고 인파로 북적이는 양곤의 번화가가 이어진다.
지구를 생각하는 미얀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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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이동수단
바간 등 유적지에는 '밍흘레'로 불리는 마차가 이동수단으로 쓰인다. 자전거 옆에 의자가 달린 싸이카 역시 단거리 이동 때 이용된다. 인레 호수에서는 노를 젓는 무동력 배들이 주요 교통수단이다. 관광객들 역시 공해와는 거리가 먼 현지인의 일상에 동참하는 일상이 요구된다. -
자연 친화적인 일상
미얀마 남자들은 치마처럼 생긴 론지를 즐겨 입는다. 여인들은 하얀 피부를 위해 나무껍질을 맷돌에 갈아 만든 타네카를 얼굴에 바른다. 대도시에는 화장품 상점들이 들어와 있지만, 아직도 주민들은 전통을 고수해 천연 자외선 차단제인 '타네카'를 이용한다. 현지인들의 소비에서 친환경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코끼리 개체수 보존을 위한 관심
미얀마는 아시아 코끼리의 주요 서식지 중 한 곳이다. 수컷 코끼리 중 1%만 상아를 가진 미얀마에서는 코끼리 가죽, 꼬리털, 이빨 등으로 장식품이나 약재 등을 만든다. 코끼리로 만든 기념품은 코끼리 개체수 감소와 연관 깊다. 환경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기념품 쇼핑은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