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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 나가는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명대사는 배우 송강호 씨의f애드리브로 탄생했다고 한다. 촬영 전 봉준호 감독이 "이 부분에서 좀 더 대사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고 송강호 씨의 고심 끝에 빛을 보게 된 대사라는 것이 뒷이야기다. 요즘 방영 중인 한 예능프로그램 제목도 [밥은 먹고 다니냐?]란다. 국민 엄마 김수미 씨가 나와서 세상살이 고단한 출연자들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며 국밥을 대접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는 밥 먹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끼니를 챙기는 것이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였던 배고팠던 시절의 상대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우리 정서에 남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
유지현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공인회계사(AICPA)를 취득했다. 포스코 인사부와 현대건설 재정부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류학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생물인류학 연구실에서 마음과 행동의 진화에 관해 연구 중이다. <비협력자에 대한 처벌과 평판: 처벌의 비싼 신호 보내기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인간의 집단 협력과 처벌의 공진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밥은 식사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 우리말에서 흔히 가족은 식구(食口)와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면서 그 정의 또한 다양해지고 있지만, 식구의 사전적 정의는 꽤나 명료하다. 식구란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이다. 식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혈연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함께 밥을 먹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짧은 대화에서 "밥 한 번 먹자"를 남발하기도 한다. "밥은 먹었니?" 하는 말에서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면 "밥 한 번 먹자"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밥 한 번 먹자는 사람치고 진짜 밥 한 번 먹는 사람을 못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지인들에게 말뿐이라도 그렇게 밥 한 번 먹자고 졸라대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멀리 떨어진 독일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독일어에서 '동무(Genose)'의 어원은 '같은 빵 덩어리를 먹은 자(gileibo)', 즉 빵을 나눠먹은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밥처럼 유럽 문화권에서 주식은 빵이요, 빵은 곧 식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식사를 함께하고 나면 친구가 되는 것이다. 특히 낯선 사람, 라이벌, 또는 적대적 관계였던 사람이 새롭게 친구나 파트너가 되는 경우, 신뢰할 만한 우정이나 친교를 맺는 방법으로 함께 먹고 마시는 것 이상 확실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멋진 식사가 인간에게 준 것은 식구와 친구만이 아니다.
식단과 인지 혁명
미식평론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 주면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신이 만약 인류학자에게 새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 알려주면 그 종의 뇌 크기와 지능을 알려줄 것이다. 약 600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신체 크기나 뇌 용량이 현재의 침팬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반면, 200만 년 전쯤 호모 하빌리스의 뇌는 오늘날 유인원의 2배에 이르렀으며, 이후에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면 뇌가(아직 현생일류보다는 약간 작지만) 더욱 커지고 신체 크기는 거의 현생 인류와 비등하게 된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뇌는 어떻게 호모 에렉투스의 뇌로 커지게 된 걸까? 뇌가 커지면 사는데 도움이 되니까 커졌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동물들은 인간처럼 큰 뇌 없이도 잘 살아간다. 뇌가 마냥 좋기만 한 기관이라면 지구상 대부분의 동물은 다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렇게나 큰 뇌로 진화한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뇌는 사실 매우 비싼 기관이다. 우리 몸의 기초 대사량의 약 20%를 뇌가 혼자 다 사용한다. 이렇게 에너지 비용 측면에서 비싼 뇌를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만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인류학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견해는 육식 가설, 또는 사냥꾼 인간(man-the-Hunter) 가설이었다. 호모 속의 식단이 채식 위주에서 점차 고열량 음식인 '육류'비중이 높아지면서 대뇌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사고 능력의 비약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영양 섭취의 상당 부분을 육류로 해결한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현생 인류에서 200만 년보다 더 전, 호모 하빌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간 내내 고기는 식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육식 의존도는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육식 동물과 같은 강한 턱과 이빨, 빠른 다리가 없는 인간이 사냥에 성공하고 이를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는 집단으로 무리 지어 협력해야만 했다. 이렇게 협동 사냥으로 얻은 고기는 집단 구성원들과 나눠 먹어야 했다. 바야흐로 인간의 사회성, 호혜주의의 태동이다.
인간, 불로 요리하는 동물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에 따르면, 뇌가 큰 호모 속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바로 불을 이용한 화식(火食)이다. 불을 이용하여 요리를 발명하고 그 맛에 탐닉한 순간, 인류의 역사가 격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리하는 자, 지구를 지배한다!". 바야흐로 먹방을 넘어 쿡방의 시대인 지금은 "요리하는 자, 예능을 지배한다!"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요리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지 이해한다면, TV, 유튜브, 블로그에 왜 이렇게 많은 요리 프로그램과 정보가 넘쳐나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을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라 할 정도로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동물도 기억과 판단력이 있으며 인간이 지닌 능력을 모두 어느 수준까지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리하는 동물은 없다. 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한다는 것이 지구를 지배하는 것과 도대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밥과 쌀의 차이
인간의 신체 기관 중에서 대형 유인원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은 뇌와 소화기관이다. 체중을 감안한 뇌 크기를 나타내는 뇌 중량 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가 2.0, 인간은 5.8로 월등히 인간의 뇌가 크다. 반면에 인간의 위, 소장, 대장 등 전체 소화관의 부피는 지금까지 측정된 모든 영장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작다. 우리 소화관의 무게는 몸집을 고려해 비교했을 때 약 60% 정도에 불과하다. 작아진 장 덕분에 인간은 하루 에너지 소모량의 10%를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막대한 에너지 비용이 드는 큰 뇌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소화기관에 할당되는 에너지 예산을 이처럼 대폭 삭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작은 입과 치아, 소화관은 부드럽고 열량이 높으며 섬유질의 함량이 낮고 소화가 잘 되는 '익힌 음식'의 특성에 적응한 결과다. 화식, 즉 불을 이용한 요리를 통해 음식을 가공하면서 소화기관의 크기가 줄어들면서도 소화 효율은 높이고 대사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함으로서 대뇌화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익히지 않은 단단한 생쌀을 먹는 것과 물에 끓여서 부드럽고 끈끈해진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을 비교해 보시라. 사냥꾼 인간 가설과 화식 가설 중 배타적으로 하나만 맞는 설명일 필요는 없다. 호모 속 진화의 특징인 대뇌화와 인지혁명은 성공적인 사냥을 통해 높아진 육식 의존도, 불을 이용한 요리와 음식 가공을 통해 소화 효율이 대폭 향상됨에 따라 발생했을 것이다.
먹는다는 것, 그 참을 수 없는 즐거움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즐거움 중 하나다. 오죽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다. 행복 심리학의 대가인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 연구팀은 한국인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조사해 행복을 측정해보고자 했다.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즐거운 지를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를 이용해 물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 할 때.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음식과 사람이며,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라고 말이다. 오늘 저녁 퇴근 후, 가족, 친구, 연인 누구든 소중한 사람들과의 식사를 나누며 새삼스럽게 행복을 만끽하길 바란다.
음식을 통해 행복을 찾는 영화 셋
리틀 포레스트
남자친구와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자신만 낙방해 자존심이 상한 혜원은 고달픈 도시에서의 삶을 잠시 접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며칠 머물다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친구 재하,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다 보니 어느새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직접 요리해 먹는 즐거움을 통해 아픈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 시대 청춘의 이야기다.
아메리칸 셰프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고 싶지만 번번이 레스토랑 사장에게 메뉴 결정권을 빼앗긴다. 평소와 똑같은 메뉴를 내놓은 그날, 유명 음식 평론가가 몰래 식당을 다녀가고 SNS에 혹평을 남기자 칼은 그와 설전을 벌이다 레스토랑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이혼한 아내의 권유로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하는 칼. 그는 그동안 소원했던 아들과 미국 전역을 일주하며 명성을 얻는데….
심야 식당
도쿄 번화가의 뒷골목에 조용히 자리한 밥집. 식당 이름도 '밥집'이지만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만 영업을 해, 단골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메뉴는 몇 가지뿐이지만 손님이 원하는 요리가 있다면 주문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이 식당만의 특징.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을 품고 이곳에 찾아오고, 그들이 주문하는 요리는 삶을 위로한다. 고단한 일상 끝에 만나는 밥과 인생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