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의 이번 랜선여행지는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세비야였다. 직원들은 실시간 영상을 통해 한국보다 7시간 느린 오후 1시의 세비야 풍경과 만났다. 세비야 랜선여행의 시작은 산타크루스 지구였다. 산타크루스 지구는 한국인들이 세비야를 여행할 때 거의 찾지 않는 곳이지만, 이곳 좁은 골목들에 세비야의 진짜 매력이 숨어 있다.
산타크루스 지구 골목에서 세비야의 왕궁 알카사르의 성벽을 만날 수 있었다. 성벽 단면을 보니 성벽 안에 동그란 관 2개가 들어있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이 관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수로나 배수관일까요?”
“주배관망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한국가스공사에서 일하는 분들답게 정답에 가까운 내용이 벌써 나왔네요. 답은 상수도관입니다. 성벽 안 상수도관은 알카사르의 저수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길은 스페인어로 물을 뜻하는 ‘AGUA’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산타크루스 지구 깊숙이 들어갈수록 오렌지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세비야에는 오렌지나무 4만 그루가 가로수로 심겨져 있다고 한다.
“봄에는 흰 꽃이 피고, 겨울에는 오렌지 열매를 맺습니다. 또 사계절 내내 초록 잎을 볼 수 있어요. 오렌지 맛은 어떨까요? 관상용이라 매우 신 맛이 나서 아쉽게도 먹지는 못합니다.”
산타크루스 지구 골목의 건물들은 흰 바탕에 빨간색 또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독특한 매력을 뿜고 있었다. 외벽 하부에 둥그런 돌들이 박혀있는 건물도 보였는데, 이는 지나가는 마차에 벽이 긁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박아놓은 커다란 맷돌이었다. 또 맷돌 수가 권세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해서 당시 사람들은 누가 많은 맷돌을 설치하는지를 두고 경쟁했다.
마차 이야기를 하면서 산타크루스 지구를 걷다보니 김호영 가이드의 추천 맛집 Las Teresas가 등장했다. 그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하몽을 소개하면서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 감칠맛이 있고, 바게트와의 궁합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걷고 있는 이 길, 정말 좁습니다. 산타크루스 지구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햇빛 차단인가요?”
“네, 맞습니다. 힌트를 드리려고 ‘태양을 피하는 방법’ 노래를 부르기 전에 정답이 나왔네요. 건물들이 좁은 간격으로 들어선 이유는 바로 이슬람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슬람인들이 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해 오랜 기간 점령했기 때문에 세비야 곳곳에 이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세비야는 가톨릭과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죠.”
가까이 붙은 건물들은 그늘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간격이 좁기 때문에 현재 산타크루스 지구 건물들은 거주 목적이 아닌, 여행자 숙소, 식당과 카페, 기념품 매장 등으로 활용한다.
중앙에 분수가 있는 공원이 화면에 등장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세라믹 타일로 장식한 공원 의자에서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록 잎이 빽빽한 오렌지 나무와 유럽풍 건물, 그리고 야자나무와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요. 저는 이 모습을 ‘세비야스러운 풍경’이라고 표현합니다. 유럽 다른 도시를 갔을 때 이 같은 풍경은 만나보기 어려워요. 세비야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모습이라 할 수 있죠.”
랜선여행 중간, 물이 아래로 흐르는 작은 분수를 보며 잠시 ‘분수멍’을 즐기기도 했다. 이제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의 면모를 살펴볼 차례. 카르멘이 군인들로부터 도망친 길이라고 적혀진 곳이 나타났다. 오페라 ‘카르멘’은 세비야를 배경으로 만들어졌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돈 지오반니’ 역시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다.
오페라 ‘카르멘’ 속 음악을 들으며 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 건물인 세비야 대성당은 1400년대 100여 년의 공사를 거쳐 완성됐다. 황금 1.8톤을 입힌 황금제단이 눈길을 사로잡는 세비야 대성당에는 스페인의 황금기를 열었던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는데, 스페인 4개 왕국 왕들의 동상이 콜럼버스의 관을 짊어지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 일부는 이슬람 사원을 활용해 건축했다. 히랄다 탑이 대표적인데, 그물을 닮은 모양으로 장식한 알모하드 건축양식의 미나레트(첨탑)를 증축해 총 98m의 종탑을 완성했다. 히랄다 탑에 오르면 세비야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세비야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하는 알카사르는 세비야 대성당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페인 왕족의 숙소로 사용한다.
발걸음은 어느새 헌법의 길로 이어졌다. 스페인은 한국과 비슷하게 내전과 독재를 경험했다. 그래서 스페인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헌법을 주제로 길이나 광장을 조성했는데, 세비야에도 헌법의 길이 있다. 헌법의 길은 무선 트램과 관광용 마차가 지난다. 이곳에서도 오렌지나무 가로수를 볼 수 있다.
이번 랜선여행은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떠난 과달키비르 강가에서 마무리됐다.
“세비야는 이밖에도 스페인광장, 메트로폴 파라솔 등 명소가 많습니다. 타파스와 종합 예술인 플라멩코도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세비야에서는 최소 3박을 추천 드립니다. 한국가스공사 직원 여러분들을 세비야 현지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다음에 만나요(Hasta luego)!”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Hasta luego!”
“오늘 랜선여행을 참고해 세비야 여행계획을 세워야겠어요. 30℃가 넘는 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