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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편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에 존재하는 낯선 풍경
장한나 작가
부산현대미술관이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기획전 <그 후, 그 뒤,>를 열고 있다. 생명을 지탱하는 바다 환경에 초점을 맞춰 바다로 흘러들어온 환경오염의 예후적 징조를 추적하고 해양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질문하는 전시다. <그 후, 그 뒤,>전에 참여 중인 장한나 작가를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장한나 작가는 인간의 편리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에 의해 버려진 플라스틱을 추적한다.
[글 임영현 사진 박형준 ]
“석유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플라스틱이 자연으로 흘러 들어가면 파도에 깎여 모양이 변하기도 하고, 생명체가 플라스틱을 거주공간으로 삼기도 합니다. 자연과 인공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지점에 있는 것들을 지구에 나타난 새로운 돌이라는 뜻으로 ‘뉴 락(New Rock)’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부산현대미술관 <그 후, 그 뒤,>전에는 장한나 작가의 대형 설치작품 ‘뉴 락 표본 2017-2021’이 전시되어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신안, 제주, 울산, 한강 등 전국에서 수집한 플라스틱을 붙여 풍화작용을 거치며 새로운 암석이 된 ‘뉴 락’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공장에서 생산을 마쳤을 땐 반듯한 모양이었을 스티로폼을 뚫고 식물이 자라고, 부표는 불에 그을렸는지 처음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돌에 붙어 자라는 따개비나 홍합, 굴 등은 이제 플라스틱을 생태공간으로 삼았다. 돌인지 플라스틱인지 판단할 수 없는 따개비나 홍합은 플라스틱에 정착해, 플라스틱과 하나가 된다. 쓰고 버려진 현수막, 그물 같은 합성섬유도 전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자세히 보아야 어떤 용도로 사용된 플라스틱이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지만, 수집물 중에는 원래 용도를 현재 상태로는 알 수 없는 플라스틱들도 있다. 장한나 작가는 무게를 느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그래도 알 수 없을 땐 구멍을 뚫어 가루가 나오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플라스틱이 맞는지 확인하지만, 돌인지 플라스틱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플라스틱이 자연의 일부가 된 ‘뉴 락’의 모습은 기묘하고도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수조 안, 커다란 조개껍데기 안에 핑크색 따개비가 붙어 있다. 조개껍데기는 사실 커다란 부표 조각이고, 해초로 보였던 물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섬유 뭉치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장한나 작가는 원자력발전소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울산을 방문했다가 원전 옆,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바닷가에서 너무나 많은 쓰레기들을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 쓰레기들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쓰레기들을 찬찬히 살펴보려 한 적은 없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매끈한 물건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손에 들어보고 나서야 스티로폼이 돌처럼 딱딱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뉴 락’의 발견이었지만, 당시 장한나 작가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제주에 머물렀을 때 해양 쓰레기들을 다시 보게 됐고,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뉴 락’을 수집해 나갔고, 석유와 플라스틱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환경문제가 심각함을 알고 있지만 당장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이렇게나 심각한 환경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무기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장한나 작가는 환경문제가 어렵다거나 불편하다는 느낌 대신 사람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설치작품이든 영상작품이든 사람들을 환경문제에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들 수 있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을 생각이다.
“화석연료인 석유를 정제하면 부산물로 나프타가 나옵니다. 이 나프타로 플라스틱을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플라스틱을 생산할 나프타를 얻기 위해 석유를 생산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석유를 계속 생산하면 수송용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없어요. 결국 산업에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면, 플라스틱을 생산할 때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재활용을 강조하지만, 석유에 의존하는 비율을 낮춰야 환경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한나 작가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뉴 락’을 계속 수집하고,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이 분야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도 쌓으려 한다.
“기술 발전으로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계 바늘을 과거로 돌려 지금의 이익을 포기하자고는 할 수 없어요. 환경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무섭습니다. 관심이 생기면, 그 관심을 아주 조금씩 이어나가면 됩니다. 환경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해 나간다면,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또 제 작품이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2022년 3월 1일까지 여는 <그 후, 그 뒤,>전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 그 뒤,>
기간 | 2021년 10월 29일~ 2022년 3월 1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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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무료 |
장소 |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