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PORT
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찾은
인류 생존의 법칙
살면서 기적을 찾을 때가 있다. 그러나 기적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은 조상의 후대들이기 때문이다. 전쟁, 질병, 식량 부족 등 여러 가지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선대들로부터 생명이 이어져 왔기에 우리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그렇다면 선대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스의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를 통해 인류 생존의 법칙을 찾아본다.
[글 편집실]
왕국을 무너뜨린 최초의 질병, 천연두
미라로 발견된 이집트 람세스 5세의 얼굴에선 천연두 농포(고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천연두는 대(大)피라미드 시대부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천연두를 접한 적이 없었던 아스테카 왕국은 스페인 군대를 통해 전파된 천연두 때문에 멸망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스페인 군대는 결국 집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매장을 대신했다.
이처럼 왕국 자체를 멸망시킨 최초의 질병, 천연두는 왕조를 바꾸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천연두로 인해 스튜어트 왕조가 막을 내렸고, 하노버 왕조가 새롭게 들어섰다. 당시 독일 하노버 공국의 선제후였던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앤 여왕의 왕위 계승자로 선정된 데는 천연두에 걸렸다 나았다는 이유가 한 몫을 했다.
인류 최초의 백신은 천연두 백신이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이 나왔을 때 코로나19 백신을 반대하는 안티백서처럼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건강한 사람의 몸을 공격할 권리가 없다, 백신 접종 의무화는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이유로 백신 접종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천연두 백신을 실험한 아마추어 과학자의 정체
WHO(세계보건기구)는 1980년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했다.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기까지 ‘면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제너의 공만 있었을까?
1800년 영국의 한 의사로부터 천연두 백신 샘플을 받은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벤저민 워터하우스는 버지니아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과학자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천연두 백신 효과를 각자 실험하고 결과를 공유했다. 버지니아의 아마추어 과학자는 벤저민 워터하우스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악의 목록에서 천연두 같은 사악한 악을 하나씩 지워간다면 인류를 위한 커다란 봉사가 될 것입니다. 내가 알기에 의학에서 이처럼 소중한 발견은 여태껏 없었습니다”라는 쓰기도 했다.
이 아마추어 과학자는 바로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천연두 백신 실험 후 미국 의회는 백신법을 통과시켰고, 잉글랜드에서도 1853년 백신법이 제정됐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의무적인 천연두 백신 접종 지지자로, 그가 발간하는 주간지 <하우스홀드워즈(Household Words)>에 의무적인 천연두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자주 발표했다. 찰스 디킨스의 적극적인 옹호가 있었기에 백신 접종 의무화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WHO 천연두 근절 프로젝트가 시작되다
1960년대부터 WHO의 천연두 근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미국 애틀랜타 질병통제센터(현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근무하던 도널드 헨더슨이 이 프로젝트를 맡았고, 그는 73개국과 협력한 가운데 수십만 명의 의료인을 고용해 백신을 접종했다. 1950년대 이미 냉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30일 동안 보관이 가능한 내열성 백신이 개발됐기 때문에 백신 접종이 용이했다.
전염병학자 윌리엄 페이지는 라이베리아의 오비르푸아 마을에서 천연두 확산을 막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천연두 백신은 주민 모두에게 접종할 수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이때 그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천연두 바이러스라고 가정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가족을 늘리려면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 그들이 찾은 답은 ‘번식을 계속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나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우선 접종하는 ‘포위 접종’을 실시하면서 천연두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자동차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1869년 8월 31일, 아일랜드의 과학자 메리 워드는 남편, 사촌과 실험용 증기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속 6.5km로 달리던 메리 워드가 한 교회 근처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자 그녀는 자동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뒷바퀴가 목을 짓눌러 메리 워드는 결국 사망했다. 검시관은 사망 원인이 목 골절이라고 발표했지만 진짜 사망 원인은 다름 아닌 기계, 즉 자동차였다. 그렇기 때문에 메리 워드를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최초의 인간으로 여긴다.
미국에서는 1913년 이후 100년이 조금 넘는 동안 400만 명 이상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여기에는 1955년 불과 24살에 숨진 배우 제임스 딘도 포함된다.
1955년 가장 많이 팔린 가정용 자동차 쉐보레 벨에어에는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안전벨트가 없었다. 머리받침대도, 백미러도 없었다.
당시 자동차 회사는 철판으로 만든 상자를 시속 80km로 운전하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만 생각했고, 안전장치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행기·자동차 사고로
죽을 뻔한 발명가가 발표한 논문
1942년 휴 데헤이븐이 <15m부터 45m까지의 높이에서 추락하고도 생존하는 경우에 대한 기계적인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종사 훈련 학교 훈련생이었던 그는 1917년 비행기를 몰다 상대방 비행기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1933년 자동차 계기판 조절기가 두개골을 관통하는 끔찍한 사고를 한 번 더 겪었다.
그 후 휴 데헤이븐은 달걀 낙하 실험을 시작했고,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도 살아남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인간의 몸이 지상에서 작용하는 일반적인 중력보다 200배나 강한 중력가속도까지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기적적으로 생존한 8명의 사례의 중력가속도를 계산해 논문에 담았다.
논문의 결론은 “구조적으로 충격을 줄이고 압력을 분산하는 조건이 갖춰지면, 항공기와 자동차 사고에서 상당한 정도까지 생존율을 높이고 부상률을 낮출 수 있다는 합리적인 가정이 가능하다”였다.
1947년 미 육군항공의학연구소 사무관인 존 스태프는 <급감속이 인체에 미치는 힘에 대한 인간공학적 문제들>이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하며 시속 160km로 달리던 물체가 수초 내에 0km까지 급격히 속도를 줄일 때 인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 발표에 그치지 않고 존 스태프는 1954년 소닉윈드 1이라는 로켓 썰매를 만들어냈다. 소닉윈드 1은 순간 최고 속도로 시속 1,010km를 달린 뒤 1.4초 만에 급정거할 수 있었다. 1955년 5월, 존 스태프는 자동차 산업 관계자 26명을 초청해 로켓 썰매 작동을 보여줬고, 이를 계기로 ‘스태프 자동차 충돌 회의’라는 자동차 안전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
삼점식 안전벨트 개발과
‘전국 교통 및 자동차 안전법’ 제정
휴 데헤이븐과 존 스태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업계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새 돌파구는 항공공학자 닐스 볼린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브(SAAB) 항공우주부에서 자동차 회사 볼보로 자리를 옮긴 닐스 볼린은 군 조종사들의 안전장치를 참조해 아래쪽 두 곳, 위쪽 한 곳을 고정하는 삼점식(three-point) 안전벨트를 개발했다.
볼보는 1959년부터 삼점식 안전벨트를 기본 장착한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삼점식 안전벨트 하나만으로도 자동차 사고 사망자가 75%나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닐스 볼린은 삼점식 안전벨트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면서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닐스 볼린의 삼점식 안전벨트는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8가지 특허 기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언론인이자 법률가였던 랠프 네이더가 1965년 발표한 책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 자동차의 설계상 위험>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이 책의 영향으로 1966년 미 상원은 ‘전국 교통 및 자동차 안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의해 교통부가 설립됐고,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에 안전벨트 장착이 이뤄졌다.
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의 기대수명은 1년가량 줄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서는 그 두 배가 줄었다. 그러나 1918년 이후로 인류가 한 세기 동안 이뤄낸 발전을 가감 없이 증명하기도 한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2020년 전반기는 팬데믹이 창궐한 초기라서 많은 실수가 있었음에도 공공의 개입으로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언젠가 어떤 바이러스가 어린이와 청년층을 무지막지하게 죽음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스티븐 존슨은 수십억 명의 목숨을 구한 혁신으로 △화학비료, △화장실/하수도, △백신을 꼽았다. 또한 수억 명의 목숨을 구한 혁신은 △항생제, △수혈, △염소소독법, △저온살균법 등,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혁신은 △에이즈 치료를 위한 칵테일 요법, △마취, △혈관 성형술, △말라리아 약, △심폐소생술, △인슐린, △신장투석, △안전벨트 등이라고 분류했다.
이러한 혁신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븐 존슨은 인류 생존의 법칙으로 ‘네트워크의 힘’을 제시했다.
에드워드 제너, 닐스 볼린은 혁신을 발견한 사람이었고,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찰스 디킨스, 랠프 네이더 등은 혁신을 전파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릴 때 항상 이 아이디어를 들여오는 ‘연결자(connector)’가 있고, 자신의 영향으로 이 아이디어를 알려지게 하는 ‘증폭자(amplifier)’가 있다.
스티븐 존슨은 혁신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를 지지하고 퍼뜨리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아이디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참고도서]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