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인도 북부의 삶은 다채롭고 낯설다. 종교, 민족, 언어 등 모든 게 이질적이다. 히말라야 기슭에 기댄 사람들은 경계를 넘어 다른 풍경 속에 공존한다. 인도 북부에서는 '또 하나의 인도'를 발견하게 된다.
[글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티베트의 망명정부 다람살라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는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황토색 가사를 걸친 승려와 티베트 전통 의상의 여인들이 골목을 채우는 인도 속의 다른 세상이다. 티베트 난민들의 망명 정부인 다람살라는 안개가 자욱한 산기슭에 아련하게 들어서 있다. 캉그라 공항에서 1시간 30분쯤 산길을 굽이굽이 버스로 오르면 비탈진 산자락에 외딴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히말라야의 끝자락, 망명정부의 첫 인상은 상처를 보듬은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람살라는 20세기 초 영국인들이 인도의 폭염을 피해 만든 휴양지였다. 1906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짐승만 뛰놀던 황무지에 1959년 달라이 라마가 망명하며 티베트 망명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온 난민들이 정착한 지 60년, 현재 4,000여 명의 티베트인들이 자국의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간다. 중앙 사원인 냠걀 사원과 달라이 라마의 망명궁전인 쭐라캉은 템플로드에 들어서 있다. 템플로드 초입은 승려와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족들의 세상이다. 승려들은 환전도 하고 노점상에서 기념품도 구입하며 일상의 한 단면으로 존재한다. 골목 사이로는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하고 인터넷 전용카페가 곳곳에 불을 밝힌다. 승려와 배낭족이 노천카페에 마주 앉아 정겹게 차를 한잔 마시는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템플로드 좌우로는 좌판대가 늘어서 있는데, 좌판대의 주인은 티베트인들이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현지인들과 승려, 이방인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달라이 라마는 각국의 수행자를 대상으로 사원에서 설법을 펼치고, 중생들은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쭐라캉을 가운데 두고 순례길인 코라를 돌며 참배에 나선다. 길을 돌며 걷거나 시계방향으로 원통을 돌리는 행위는 이곳에서 경건한 의식에 속한다.
1,800m 비탈에 들어선 산악마을
다람살라에서 마주한 티베트인들의 삶은 언어와 문화를 지켜내려는 노력과 함께한다. 그들은 여전히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와 칼국수 '툭빠'를 즐겨 먹고 전통 놀이를 고수하며 일상을 채워나간다. 도심 광장에서 박수나트 폭포나 다람코트까지 이어지는 길은 히말라야 하이킹의 짧은 묘미를 선사한다. 하이킹 코스를 따라 바라보는 마을의 단상은 애잔하다. 티베트 주민들이 거주하는 대부분의 가옥들은 비탈진 벼랑에 들어서 있다. 해발 1,800m을 넘나드는 이곳에서 사실 평탄한 거리는 템플로드 뿐이다. 비탈에 의지한 형형색색의 가옥과 골목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다람코트로 가는 숲길은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길목을 채운다. 티베트 독립의 상징인 색색의 타르초도 군데군데 걸려 있다. 설산 인드라하르 아래로 이어지는 숲길은 조국을 등지고 다람살라로 향했던 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길이기도 하다.
동아시아가 에워싼 고원도시 '실롱'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 메가라야 주로 연결된다. 인도의 거대한 땅덩이가 동북쪽에서 닫히는가 싶더니 네팔과 방글라데시 사이로 호리병처럼 연결된다. 메가라야 주는 북으로는 부탄, 티베트와 가깝고 남쪽으로는 방글라데시와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중국이 지척인 곳에 위치했다. 메가라야 주의 대표 도시인 실롱은 해발 1,500m 고원에 들어서 있다. 외딴 고지대의 도시치고는 꽤 강건한 규모다. 지역 분쟁으로 1972년 메가라야 주로 갈라지기 전 실롱은 100여 년간 영국이 장악한 아삼 주의 주도였다. 매끄럽게 뻗은 비탈길에 균일하게 들어선 건물들은 유럽의 산악마을마저 떠올리게 한다. 도시의 정체된 현실을 반영하듯 건물 외관은 죄다 빛이 퇴색됐다. 완연한 동아시아에 둘러싸인 까닭에 실롱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다르다. 실롱 주민들은 카시족이 주를 이룬다. 먼 조상이 몽골계로 언뜻 보면 우리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카시족의 언어는 캄보디아어하고도 유사한데, 마을 사이에 언어가 서로 안 통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콰이'라는 허브 잎을 우적우적 씹고 다닌다. 시내 중심에 힌두사원이나 이슬람 옛 사원이 아닌 세인트 대성당이 들어서 있고, 마을 곳곳에서 십자가를 목격하는 것도 독특한 풍경이다. 도심에서 떨어진 고지인 실롱 피크에 오르면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도시의 윤곽이 제법 운치 있게 다가선다. 문명이 비켜간 외딴 마을들은 가옥과 차림새는 남루해도 행복한 미소들이 골목 곳곳을 채운다.
코뿔소 뛰노는 세계유산 국립공원
메가라야 주 북쪽 아삼 주는 들어설수록 풍경이 낯설다. 이곳에는 코뿔소와 코끼리가 뛰노는 카지랑가 초원이 자리한다. 카지랑가는 야생동물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자연유산이다. 카지랑가 국립공원에는 멸종위기의 인도산 외뿔 코뿔소 1,800여 마리가 서식한다. 세계 70%가 이곳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호랑이 밀집지역중 하나이고 물소, 사슴, 몽구스, 긴팔원숭이도 같이 뛰논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기로 분류한 15종의 동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새벽녘 초원 위에 펼쳐지는 장면은 반전의 연속이다. 인도의 오지 끝에 고급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 것도, 이방인들이 새벽부터 코끼리에 오르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것도 예상 밖이다. 카지랑가에서는 코끼리를 타고 코뿔소를 보러 간다. 카지랑가 국립공원은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린 브루마푸트라강의 남쪽에 매달려 있다. 공원의 넓이는 430㎢, 66%가 초원으로 형성돼 있다. 유러피언들 사이에서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생동물 서식지로 소문난 곳이다. 국립공원 초입의 코호라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은 순박하다.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장면도 정겹고 아침이면 짜이한잔을 마시는 모습도 친근하다. 계급 차이에 상관없이 인도인들은 전통차인 '짜이'를 공유하며 일상의 평화를 함께 나눈다. 인도식 부침개인 로띠 한 장까지 곁들이면 꽤 훌륭한 '인도식 브런치'가 완성된다. 상상했던 인도의 모습 외에 또 다른 낯선 단상들은 여행자의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인도 북부에서의 '낯섦'의 명제는 긴 꼬리표같다. 먼지 가득한 비포장길을 달려도 어제와 다른 풍경들이 선명하게 잔영을 남긴다.
[TIP] 지구를 생각하는 인도 북부 여행
공정여행 실천의 장
다람살라는 여행자들이 공정여행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다람살라 광장에는 인도인들의 상점이 밀집돼 있지만 뒷골목에서는 티베트 현지인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의류, 기념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티베트 상인들은 황당한 가격을 부르지 않으니, 지나친 흥정보다는 제 가격을 주고 물건을 사면 현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물건에는 'made in tibet' 표시가 새겨져 있다.
지구를 위한 도보여행
다람살라 안에서는 도보로 이동하는 게 좋다. 다람살라는 수 행자들과 배낭족들이 몰려들어 도심 광장 일대가 극심한 혼잡을 빚기도 한다. 박수나트까지는 세 바퀴 달린 오토릭샤 등이 오가지만, 도로가 좁고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많아 소음과 매연 방지를 위해서도 걷는것을 추천한다. 비탈진 경사로는 경관 좋은 산책로를 겸하고 있다.
멸종 위기 동물을 위한 마음
카지랑가 국립공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장 인원수는 철저하게 제한된다. 성수기에는 한 달 전에 관람 예약이 마감되기도 한다. 인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국립공원 안에서는 플라스틱 비닐 등의 사용이 제한되며, 쓰레기도 되가져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