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up

제주 바다로 뛰어든
해양생태계의 수호신 디프다제주 변수빈 대표
제주도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해조류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해안가로는 연간 수만 톤의 쓰레기가 밀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 변수빈 대표는 주저 없이 두 팔을 걷었다.
에메랄드 빛깔의 제주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변수빈 대표는 바다로 향한다.

글. 조수빈 사진. 김범기 영상. 이덕재

우리의 놀이터를 아끼는 일

한낮의 태양이 뜨거웠던 어느 날, 무더위를 잊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변수빈 대표. 물놀이를 하다 모자나 선글라스, 신발 등이 파도에 휩쓸려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변 대표의 친구가 이날 잃어버린 다이빙 마스크도 한낱 ‘분실물’이 될 뻔했다. 하지만 이틀 뒤 파도에 밀려온 다이빙 마스크는 변 대표의 환경 정화 활동에 신호탄이 되었다.

물놀이를 워낙 좋아하던 터라 바다를 자주 갔는데, 사실 그때까지는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잃어버린 마스크를 이틀 만에 찾았는데 곳곳에 물고기들이 쪼아 먹은 흔적이 있더라고요. 더 이상 마스크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죠. 불현듯 ‘뭔가 잘못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쓰레기들을 해양 생물들이 먹게 되는 구나, 싶자 그제야 바닷가에 널린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날 이후 바다에 갈 때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한두 개씩 주워왔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보호’라는 거창한 사명감과 의무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나만의 놀이터를 깨끗하게 유지해 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활동이 지금의 ‘디프다 제주’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음 해양 정화 활동을 할 때에는 직장 생활과 병행을 했어요. 평일에는 직장 생활을, 주말에는 바다에서 쓰레기를 줍는 식이었죠.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환경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그 관심을 더 큰 영향력으로 이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디프다 제주’ 활동에 더 힘을 쏟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양 정화 활동이 저의 주업이 되었죠.”
올해 6년차에 접어든 환경 정화 단체 ‘디프다 제주’에서는 변 대표를 포함해 6명의 멤버들이 함께 여러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디프다’는 고래별자리 중 가장 빛나는 별인 ‘디프다’에서 따왔는데, 자신들의 활동이 바다에서 가장 빛났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바다에는 법칙이 있다

  • 해양 정화 활동은 자연의 흐름과 박자를 맞춰야 하는 일이다. 간·만조 시간 확인은 필수고, 해류에 따른 쓰레기들의 이동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여름에는 서귀포에, 겨울에는 제주시에 쓰레기가 많이 떠 밀려온단다. 이밖에 지구를 지키는 데 속도를 더 내기 위해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단체인 ‘바다지킴이’ 등과 같은 다른 해양 정화 단체와 활동 지역이 겹치지 않는 것이 좋기에 틈나는 대로 쓰레기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발견한 쓰레기 군집에서 하루에 많게는 1톤 정도의 쓰레기를 수거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보람찬 동시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단다.

    사계해변에 갔던 날이었어요. 모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가 많더라고요. 해안을 뒤덮은 쓰레기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정화 활동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쓰레기를 주워도 계속해서 밀려오더라고요. 허무했죠. 자연을 지키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프다 제주’는 자신들의 환경 정화 활동을 ‘봉그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쓰레기를 줍는 활동인 ‘플로깅’에 ‘줍다’의 제주방언 ‘봉그다’를 합친 말이다. 봉그깅과 플로깅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바로 집게를 쓰지 않는다는 거다. 해양 쓰레기를 주울 때는 집게보다 맨 손으로 해야 쉽단다. 그 이유는 쓰레기의 부피가 크다는 것과 바위틈에 끼인 쓰레기를 빼내기 위해서는 힘을 꽤나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봉그깅을 할 때는 부피가 큰 쓰레기부터 수거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바닷가에서는 부표로 쓰였을 커다란 스티로폼부터 깨진 유리병 등 다양한 쓰레기를 만나게 될 텐데요. 그럴 땐 커다란 것들을 치우는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큰 쓰레기가 부서져 결국 여러 개의 작은 쓰레기가 되는 거니까요.”
    변 대표를 만난 날 제주 서쪽의 해안가를 짧게나마 함께 걸었다. 해류에 따르면 이곳은 쓰레기가 많이 없는 시기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쓰레기들로 마대자루 하나가 금세 가득 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닷가를 찾게 된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다 아래 울창한 숲을 지켜라

바다 쓰레기와 도심 쓰레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도심과 달리 바닷가에는 ‘여행’과 관련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했지만, 변 대표는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바다 쓰레기’라는 특징이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쓰레기가 여기에도 있다고 보면 돼요. ‘바닷가에 버려진 신발’ 하면 슬리퍼가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운동화가 더 많아요. 놀랍겠지만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도 많고요.”
변 대표는 봉그깅 외에도 바다 아래 숨죽인 쓰레기들을 건져 오는 ‘그린다이빙’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가 직접 본 바다 속 풍경은 늘 아름다웠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는 분명 이보다 더 신비롭고 예뻤을 것. “해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40년 전만 해도 물질을 하러 들어갈 때 발에 걸리는 해조류를 걷어내는 데 한참 걸렸다고 해요. 그렇게 들어간 바다 속에는 땅 위의 울창한 숲 같은 풍경이 펼쳐졌대요. 그때 그 바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제주 바다라도 지키고 싶어요. 훗날 이 풍경마저도 ‘그랬었대’ 하며 추억이 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오는 10월 15일 디프다 제주는 KOGAS의 도움으로 제주도 안의 작은 섬 비양도에서 해양 정화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섬들이 있어요. 우도나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같은 곳들은 해류와 관계없이 언제나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에요.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도움의 손길이 더 적게 닿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KOGAS와 뜻을 모아 비양도에서 봉그깅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우리 바다를 지키는데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디프다 제주의 환경 정화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그들의 인스타그램(@diphda_jeju)에 꼭 들러 보길. 자연에게서 많은 걸 누렸으니, 조금 힘을 쏟아도 아깝지 않다는 변 대표. ‘자연에 대한 사용료’라고 생각하면 쉽단다. 이제는 우리가 지구를 위해 ‘연대’를 할 때다. 작은 실천이라도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