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
키우던 반려동물이 하늘나라에 먼저 가면 훗날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날 때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말이 사실이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글 평택기지본부 안전환경부 김지현 직원]
펫로스 증후군
나나와 코코, 미미는 나의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 시절을 지나 첫 직장 퇴사, 그리고 지금의 KOGAS 입사까지도 지켜보며 내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가족이다.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초여름, 우리 집에 온 생후 3개월 시츄(견종) 나나. 2년 뒤인 2004년에 나나는 집에서 새끼강아지 다섯을 낳았고 우리 가족은 이 아가들을 손으로 직접 거두었다. 그중 두 딸인 코코, 미미. 이렇게 시츄 셋은 그때부터 우리 가족으로 일생을 함께했다. 작년 가을에 미미를, 올해 가을에 나나와 코코를 나란히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이들은 적어도 15년은 살았고 인간으로 치면 100세가 넘게 장수한 셈이다. 가끔 자기네끼리 물어뜯고 싸우고, 산책하러 가자며 대문을 긁으며 협박(?)하거나 사람 음식을 뺏어 먹곤 했다.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어두신 사이 단체로 집을 나가 온 가족을 혼비백산하게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말괄량이 시츄들은 음식을 훔쳐 먹지도 않고, 식구 중 누군가 귀가해도 요란하게 맞이하는 대신 눈알만 굴려 힐끔 쳐다 볼뿐이었다. 사지에 힘을 전혀 쓸 수 없어 사료를 일일이 손으로 먹여줘야 하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고 네뷸라이 저(의료용 분무기)를 끼고 살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이 인생의 무게를 버텨내고 동생과 내가 바쁘게 성인이 되어 가는 동안, 이렇게 세 녀석은 제각각의 아픈 몸으로 오랜 시간 우리 가족의 간호를 받았다. 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며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는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여야 했다. 되지도 않는 마음의 준비를 억지로 했어도 막상 이별하게 되자 사랑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교감할수도 없는 현실이 견딜 수 없게 힘들었다. 집을 가득 채운 적막함과 허전함에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반려동물을 잃은 충격과 깊은 슬픔,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참 힘들었다. 죽음 때문에 맞는 이별을 다룬 책을 읽으며 우리의 상황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반려동물을 잃은 같은 아픔을 가진 주변 사람들과 교감해보기도 했다. 내가 슬픔을 이겨낸 게 맞는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일과 중에도 갑자기 터지곤 하던 눈물이 잦아들고, 하는 일에도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에 온 가족이 모일 때면 강아지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이들의 귀여운 에피소드도 재미있게 주고받았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남겨진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펫로스 증후군을 이겨내고 있었다.
새 식구를 맞이하다
나나와 코코, 미미를 떠나보낸 우리는 최근에 유기견 '장득춘'을 입양해 새 식구로 맞이했다. 어린이가 반려동물을 떠나보냈을 때 즉시 새로운 반려동물을 데려와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동물을 인형을 새로 사듯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여 존엄성 교육에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떠난 세 시츄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게 아닐까? 먼저 간 아이들이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어떤 강아지도 우리가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나 그들 자체를 대신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떠난 강아지들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좁은 케이지에서 씻지도 못하고 누군가 입양해주기만 기다리던 강아지 '장득춘'은 이제 우리 집의 새로운 장난꾸러기 막내로 거듭나 실컷 사랑받으며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겪었던 아픔을 잊고 사랑받으며 일생을 보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득춘에게 넘치는 사랑을 쏟아붓고 있는 동안 마음 한편이 서서히 따뜻해지고 있었다.
새로 이루는 가정에 대한 다짐
우리 가족과 세 시츄는 이별했지만 그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중한 가족이자 우리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변함없기에 오랫동안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을 수 있다. 긴 시간 속에 스쳐 인연이 되고 가족이 되는 건 기적이고 더없이 소중한일이기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영원한 만남도 헤어짐도 없다는 막연한 깨달음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인연을 맺고 주어진 시간을 만끽할 준비를 한다. 글을 쓰는 2019년 12월은 나에게 더욱 특별한 달이다. 이 글을 쓰는 날로부터 한 주 뒤면 사랑하는 이와 결혼식을 올리고 새 가정을 이루게 된다. 10년, 20년 전엔 2019년의 내가 어떨지 상상도 안 됐고 30년 전에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평생을 약속하는 숭고한 일인 만큼 먼 미래까지 언급하며 잘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와 함께이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마음을 다하며 후회 없는 나날을 만들어가고 싶다. 올해 새로 맞이한 나의 가족들과 아주 오랫동안, 그때그때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싶다. 한해와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가족의 화목과 건강을 기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2020년 연중에도 내내 그러했으면 한다.
다음 필봉계주 주자는 인천기지본부 공정기술부 서자영 직원입니다.